정갈하게 차린 치즈 함박과 연어 아스파라거스 크림 파스타
전 도시락 싸왔습니다.
파견 첫날, 함께 식사를 하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가 건넨 말이었다. 그의 손에는 베이글과 크림치즈 그리고 바나나가 들려 있었다. 그 뒤로도 쭈욱 그의 점심 메뉴는 크게 변함이 없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청바지에 체크남방, 트렌치코트와 어깨엔 맨 백팩 그리고 눌러쓴 헌팅캡이다. 파견을 오고 며칠 뒤 그는 팀의 막내인 내게 이제부터 복사용지가 떨어지거나 정수기의 물이 떨어지면 본인에게 꼭 말해 달라고 부탁했다. 적당히 힘쓰고 젊은이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절대 엄청 무거운 건 부탁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어쩌다 복사용지를 날라다 주실 때면 적당히 생색도 냈고, 부탁해줘 고맙다고도 했다.
난 단번에 그가 마음에 들었다. 큰 목소리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종종 잔소리와 조언이 섞인 꼰대적 발언을 하긴 했지만 '이럼 너무 꼰대인가?'라고 스스로에게 반문하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코칭 교육을 받았다는 그는 조언을 할 때면 늘 "내가 조언을 하나 해도 될까?"라고 상대방의 의사를 묻곤 했다.
퇴사를 하고 5개월이 지나고 나서야 그와 연락이 닿았다. 그는 나를 통해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브런치에서 스타트업 관련 코칭 글을 쓰고 있다. 요즘 내가 브런치에 밥 먹은 얘기를 쓴다니 본인과도 밥을 먹자고 했다. 콧노래가 나오는 반가운 만남이었다. 뭘 하고 지내시냐는 내 물음에 늘 '여행' 한다는 기분으로 서울-진천을 번갈아가며 출근을 한다고 했다. 사무실을 매일 바꿔 출근하면 불편하겠다는 내 말에 오래 머물지 않아서, 계속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어 좋다고 답했다.
서교동에 있는 일본 가정식 파스타와 식사를 파는 식당이 떠올랐다. 트레이 하나에 한 사람 몫의 식사가 콤팩트 하게 차려 나오는 그곳. 깔끔한 맛에 정갈한 비주얼이 음식은 '맛'보다 '눈'으로 먹는다는 멋쟁이 그에게 잘 어울릴 것도 같았다. 떠도는 그에게 한 끼 가득 그 시간을 담아낼 수 있는 적당한 식탁이 되리라 생각했다.
메뉴판을 보고 함박스테이크를 고른 그는 망설임 없이 치즈 토핑을 선택했다. 정말 '그'다운 선택이었다. 난 연어 아스파라거스 크림 파스타를 골랐다. 평소에 먹던 메뉴가 아닌 새로운 메뉴를 골랐다. 그와 나는 다르다. 성별도 연령대도 살아온 경험도 모두 다르다. 하나 같은 점이 있다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데 망설임이 없다는 것과 그 도전의 과정을 무척 즐기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를 '떠도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젊다 못해 어린 나는 '떠도는 삶은 즐겁지만 이렇게 평생 떠돌까 두렵다고 했다.' 이제야말로 젊은이의 축에 끼었다고 주장하는 그는 '적당한 위험이 때론 가장 큰 안정을 가져다 줄 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에이, 안정된 환경에서 이룰 것 다 이뤄 놓으시고 갈 길이 먼 저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면 신빙성이 떨어집니다."라고 받아치면서도 50이 훌쩍 넘어서까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는 게 즐겁다고, 도전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웃는 그를 응원하게 된다. 책을 쓰고, 강의를 하고 그리고 코칭을 하면서 인생의 2막을 열어가는 그가 행복하게 남은 생을 떠돌 수 있길 마음 다해 기도하게 된다.
술을 잘 하지 않던 그와 샘플러 맥주를 두 판이나 갈아치운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깨끗하게 비워진 접시를 보니 어쩐지 불안함에 엉켜있던 마음이 조금은 덜어진 것도 같았다. 나는 가르쳐 드린 SNS를 제대로 하고 계신 것 같지 않다고 괜한 타박을 하며 장난을 쳤다. 이런 내게 그는 앞으론 열심히 하겠다고 웃어 보였다. 우리는 다음번에도 만나 맛있는 식사를 하자고 말하며 손을 흔들었다. 이렇게 편하게 만나 편하게 투정 부릴 수 있는 그가 있어 내 떠돌이 생활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갈 수 있을 것도 같다.
배가 너무 불러 한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
띵동! 다음 날 메신저로 책 출간 소식을 깨알 홍보하는 그가 감히 귀여워 여러 군데 링크를 뿌려 조금의 보탬이 되어본다. 이를 빌미로 떠돌다 허기지면 든든한 밥을 사달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