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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Apr 15. 2017

오늘, 에로스를 말하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 후기 

아주 오래전, 프시케라는 공주가 살았다.
그녀는 먼 나라의 사람들도 칭송할 만큼 우월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인간인 프시케에게 질투를 느껴
아들인 에로스에게 프시케를 혼내주라고 부탁한다.
사랑과 미의 여신마저 질투하게 한 프시케가 궁금했던 에로스는 깊은 밤 그녀를 찾아간다. 
갑자기 잠에서 깬 프시케에게 놀란 에로스는 실수로 자신에게 큐피드 화살을 쏘고 만다. 


1. 부메랑 

둘만의 여행을 떠난 다프네와 파리스

어두운 밤, 골목을 지나던 여자가 남자 둘에게 습격을 당한다. 그런 그녀를 구해주는 한 남자. 악몽 같은 밤이 지나고 다시 날이 밝았을 때, 남녀는 재회한다. 보통의 경우, 여자가 자신을 구해준 그에게 먼저 다가가겠지만 다프네는 다시 자신 앞에 선 남자를 경계한다. 


"파리스, 제 이름은 파리스예요."


액정이 깨진 다프네의 핸드폰을 돌려주며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파리스는 시리아 출신의 이민자다. 상승하는 범죄 증가율과 하락하는 경제 성장률의 원인으로 지목되며 존재 자체만으로 긴장감을 조성하는 존재. 다프네는 무의식 중에 그를 피하지만 상냥하게 다가오는 파리스에게 마음을 연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진다. 그리스어를 모르고 영어도 잘 하지 못하는 파리스는 다프네를 위해 그리스어를 배우고, 다프네는 파리스를 위해 아랍어를 배운다. 서툰 언어에도 둘은 깊은 마음을 키워간다. 


그리스의 극단적 보수주의자인 안토니는 사람들을 모아 이민자들 소탕에 앞장선다. 국가에서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삶을 이민자들이 망쳐놓았다며 울분을 토한다. 처음엔 윽박을 지르고 주먹질을 하고 나중엔 손에 피까지 묻히게 된다. 분노는 극에 치닫고 분노의 화살은 엉뚱한 곳을 향한다. 


프시케를 사랑하게 된 에로스는 그녀와 함께할 계획을 세운다.
결혼할 나이가 되어도 청혼받지 못하는 프시케는 신탁을 넣어보지만,
인간과 결혼할 운명이 아니라는 절망적인 소식만 듣게 된다. 
절망에 찬 그녀는 '괴물' 남편을 찾아 숲으로 가지만 그곳에는 에로스가 기다리고 있다.
에로스는 밤에만 프시케를 찾았다.
자신의 얼굴을 보면 프시케가 무서워 도망칠 것이라며 자신의 얼굴을 보지 말 것을 당부한다.
그럼에도 그 둘은 서로 사랑에 빠진다.
이 황홀한 사랑이 '일상'이 되어갈 무렵 프시케는 언니들의 꼬임에 넘어가
에로스의 얼굴을 확인하려다 에로스에게 들키고 만다.
화가 난 에로스는 "사랑과 의심은 함께할 수 없다"라며 프시케를 떠난다. 


2. 로세프트 50mg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지오르고와 엘리제

아버지와 아들이 소파에 앉아 게임을 한다. 


"아빠, 다른 집들도 엄마와 아빠가 다 따로 자?"


멀쩡한 직장에서 15년을 근무하고 건강한 아들과 아내가 있는 지오르고는 항우울제인 로세프트를 매일 밤 11시에 복용한다. 매일 밤 침실로 찾아와 그를 옥죈다는 누군가 때문이다.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생각하지 않는다는 엘리제는 위기에 빠진 회사를 정리하기 위해 스웨덴에서 그리스로 긴 출장을 온다.


어둠이 내리고, 두 사람은 가볍게 '원나잇 스탠드'로 몸을 섞는다. 다시 날을 밝아오고 어둠이 내린다. 그저 하룻밤이 자꾸 찾아와 말을 거는 지오르고에 의해 '사랑'이 되어 간다. 본사로부터 모든 권한을 부여받은 엘리제는 해고 대상자인 지오르고를 처리해야 하지만 당연히 분리 가능하다고 믿었던 일과 사랑의 경계에서 자꾸만 길을 잃는다. '멀쩡한 척' 살아가던 지오르고는 하나씩 현실을 받아들인다. 왜 항우울제가 필요한지 모른다던 엘리제는 로세프트 50mg을 복용하기 시작한다. 


프시케는 에로스를 잃고 실의에 빠지게 된다. 하염없이 에로스를 찾아 헤매지만 인간인 프시케는 좀처럼 '신'인 에로스 곁에 갈 수가 없다. 프시케는 시어머니인 아프로디테를 찾아가 용서를 빌고 에로스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처음부터 프시케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아프로디테는 각종 험한 일을 시키며 프시케를 괴롭힌다. 오로지 에로스를 보기 위해 그녀의 명령에 복종하던 프시케는 아름다운 상자를 절대 열어보지 않고 가져오라는 아프로디테의 심부름을 하다가 호기심이 발동해 상자를 열어보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3. 두 번째 기회 

마리아의 로망이 펼쳐지는 슈퍼마켓

마리아는 딱히 살 것이 없지만 습관처럼 일주일에 한 번 슈퍼마켓에 간다. 정확히는 사고 싶은 건 있지만 어려워진 형편으로 사지 않고 그냥 집에 돌아간다. 그리스를 사랑해 은퇴 후 그리스에 왔다는 독일인 세바스찬의 장바구니엔 신선한 과일이 가득하다. 바닥에 흩어진 세바스찬의 물건을 주워주며 두 사람의 인연은 시작된다.


황혼의 나이, 더 이상 나아질 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마리아에게 말도 통하지 않는 이방인은 '두 번째 기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길렀다는 마리아에게 책을 선물하고, 유일한 탈출구였던 마트에서 그녀의 로망을 이루어준다. 아무도 없는 마트의 밤, 마리아와 세바스찬은 함께 춤을 추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저 멀리 구겨두었던 마음을 펴서 서로에게 하나씩 꺼내어 보인다.

아무도 없는 마트의 밤, 두 사람은 그리스어와 독일어로 단어 맞추기를 한다

이제 모든 것이 자기 손을 떠났다고, 돌이킬 수 없는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를 '현재'라는 견고한 울타리에 가두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리아에게 세바스찬은 이제 "마트 밖에서 만나자"며 마리아에게 두 번째 기회를 시작할 용기와 그 용기를 낼 때까지 필요한 시간을 주겠다고 말한다. 


0. 다시 부메랑 

삶의 위기 속에서도 다프네를 떠나지 못하는 파리스와 평생 떠돌아도 파리스와 함께 하고 싶다고 결정하는 다프네

어느 한가한 주말 오후 노부부와 아들 내외, 귀여운 손주 그리고 어여쁜 아가씨가 된 딸이 한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지만 묘한 어색함이 흐른다. 아버지는 아들을 불러 외도를 하는 것은 알겠지만, 절대 들키지 말고 가정을 지키라고 신신당부한다. 절망하는 아들은 지오르고다. 장성한 딸의 미래가 걱정된 엄마는 딸을 불러 위험한 사랑을 멈추라고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도 그를 사랑한다며 절규하는 딸은 다프네다. 


극단적 보수주의자인 남편 안토니는 자신의 삶을 이방인들이 모두 망쳤다고 절규한다. 그리고 이 모든 절망의 순간, 아내 마리아가 없었다며 화를 낸다. 지친 마리아는 소리를 지른다. 아무도 당신의 삶을 망치지 않았다고, 당신의 삶을 망친 건 안토니 자신이라며 죄 없는 사람들을 그만 괴롭히고 어영부영 유지하던 결혼 생활도 끝을 내자고 한다. 밤늦게 울린 전화에 안토니는 다시 집 밖을 나선다. 


죽음의 기로에 선 프시케와 그간 프시케의 모든 행동을 지켜보던 에로스는 자신을 향한
프시케의 마음이 '진심'이었음을 깨닫고 아버지인 제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제우스의 도움으로 아프로디테의 노여움도 풀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신인 에로스와 평생 함께할 수 없던 프시케는 암브로시아란 열매를 먹고 신이 되어
평생을 에로스와 행복하게 살아간다. 


영화 <나의 사랑, 그리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강한 '사랑'의 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극단주의자인 안토니는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이민자들을 향해 폭력을 휘두른다. 그러던 중 익숙한 얼굴에 멈춰 서게 되고, 그의 눈동자에는 사랑하는 딸 다프네가 비춘다. 이민자인 파리스의 손을 꼭 잡은 다프네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다프네는 또 다른 극단주의자 총에 맞아 죽음에 이르게 된다. 


엘리제는 지오르고의 해고를 제 손으로 처리하지 못해 고국으로 돌아가고 지오르고는 엘리제의 후임에 의해 해고를 당한다. 그리고 연극처럼 유지해오던 결혼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 마리아의 책 '두 번째 기회'를 발견하게 되고, 당신에게 두 번째 기회를 주겠다고 쓴 세바스찬을 찾아가 책을 건넨다. 세바스찬은 다시 마리아를 찾아간다. 


세바스찬의 내레이션에 의하면 에로스는 두 가지 뜻을 동시에 가진다. 하나는 갈등이고 하나는 협력과 우정이다. 그리스, 한 가정에서 일어난 에피소드들은 오늘날 '에로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담아내고 있다. '적'이라고 믿었던 누군가와 '하나'가 되고,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의 장벽을 뚫어낼 '마음'이 생긴다. 결코 선택할 수 없던 것들을 선택하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들이 뒤바뀐다. 편견은 허물어지고, 묵묵히 지켜오던 것들은 마음속 깊은 꿈을 옥죄는 쇠사슬이 된다. 


영화는 그저 달달하기만 한 로맨스를 담고 있지 않다. 난민의 문제를 다루고, 경제위기와 지역주의, 극단주의를 다룬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감히 이 모든 것들을 감싸도 될까 싶다가도 '사랑'이기 때문에 우리 모두 두 번째 기회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작은 희망을 품게 된다. 마음은 결코 혼자 버려지지 않는다. 다시 부메랑이 되어 나에게 돌아오기 마련이다. 그 마음에 갈등을 담을 것인지, 사랑을 담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마음을 던지는 자, 바로 우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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