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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19. 2015

방황의 이유

방황에 대한 몇 가지 진실 

방황 (彷徨)
1.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2. 분명한 방향이나 목표를 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함.


방황은 '헤매다' 혹은 '갈팡질팡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진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방황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라는 말은 학창 시절 내내 집과 학교에서 꾸준히 들었고, "괜히 방황하지 말고 어서 자리  잡아."라는 말은 사회에 나오는 순간부터 귀에 딱지가 내려앉도록 들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방황'  대신해야 하는 많은 일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이미지 출처 : weheartit.com

난 늘 방황하는 이들을 동경해왔다.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진 것이 부러웠다. 해야 할 일에 속박되고, 주변의 시선에 나를 맞추며 자리를 지키는 일에 지쳐갈수록 자유롭게 세상을 헤매는 사람들을 동경했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갈팡질팡 하면서 이것들을 꼭꼭 숨긴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었다. 


상근 프리랜서를 하면서 회사에 출퇴근을 하고, 밤에는 다른 업체의 원고 작업을 소일거리로 받았던 때가 있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린 것도 힘든데, 저녁도 거르고 업체에 가서 미팅을 하려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었다. 설상가상 혈압이 떨어져 어지러움증에 시달렸다. 잠깐 앉았다 가려고 근처 서점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가장 적은 코너에 앉아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방황의 기술' 

이미지 출처 :weheartit.com

원래 심리학 서적이나 자기계발서 같은 책을 구매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 날은 그냥 그 책이 사고 싶었다. 어쩐지 그 책을 사는 것만으로도 자유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을 사고 나와 어지러움증을 참아가며 회의까지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씻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기 시작했다. 무슨 내용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다 좋은 말이었다. 날 위로하는 말들. 심지어 학문적으로, 논리적으로 내가 무너지는 것을 합리화시켜 줄 수 있는 그런 말들. 그냥 이렇게 생각했다. 


이대로 살면 안 되겠다.

어차피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인데, 그리고 이미  마음속은 매 순간 요동치는데 아무 일도 없는 척 자신을 속이면서 '일상'을 지킬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정말 성실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성실의 조각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다. 지금의 내가 싫은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내면의 소리를 외면할 수 없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이미지 출처 : weheartit.com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야 할 일'이 있었던  지난날을 접고, 주말에 하루 시간을 냈다. 아무도 만나지 않고, 스마트폰 전원도 꺼놨다. 평소 난 '연락이 참 잘 되는 사람'으로 통했고 난 그것이 일을 하는데 있어 신뢰를 준다고 생각했다. 언제든 '일'을 할 수 있는 상태의 사람 즉 준비된 사람이란 인상을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쉴 틈 없이 울리던 스마트폰 전원을 꺼두니 세상은 고요했다. 좋아하는 카페도 가지 않고 그냥 집 소파에 누워 이리저리 뒹굴었다. 내면의 소리를 듣겠다는 강박(난 늘 전투적으로 '다짐'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목표가 생기면 자연히 강박증이 찾아왔다)도 버렸다. 하루 종일, 밥을 먹고 차를 마시는 일 밖에 하지 않았는데 어쩐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작은 바람에도 잘 흔들렸다. 


나 아직 마음이 건강하구나!

라고 생각했다. 이미 굳어버린 줄 알았던 마음이 정처 없이 흔들리는 것을 확인하니 마음이 편했다. 나도 방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기 자신이 흔들리고 있음을 알고 인정하는 사람은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다. 오히려 갈팡질팡하는 마음을 숨긴 채 외부의 압력에 따라, 세상의 '순리' (도대체 그 순리는 누구를 위한 거야?)에 따라 삶을 살게 된다면 영영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은커녕 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할 것이다. 


방황의 가치는 자신이 방황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순간부터 발현된다. '아, 난 흔들리고 있구나.', '내 마음이 이곳에서 멈춰있구나.', '다른 방향을 보고 있구나.' 등 진짜 '나'의 모습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순간 방황은 현재를 정체시킨 '결과'가 아니라 인생에서 자신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변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weheartit.com

친한 사람들을 만나 차를 마시면서 선언했다. 나는 방황하고 있는 중이니, 당분간 내가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모범'의 표준이자, 엄숙한 삶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하니 주변 사람들은 옳다구나 반겨주었다. 그동안 너무 갑갑해 보였다고. 배 부른데 미련하게 계속 무언가를 먹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그렇다. 난 소화도 다 시키지 못하면서 주는 대로 모두 받아먹으며 나 자신을 집어 삼키고 있었다. 방황 선언 이후 진행하던 몇 가지 일을 마무리했고 새로 들어온 일들은 모두 거절했다. 


방황은 '정체'로부터 시작되지만 다양한 가능성의 '발견'으로 끝이 난다. 모든 것을 멈추고 이리저리 흔들리다 보니 나의 인생 계획표는 줄줄이 지연되거나  삭제되었다. 멈춘 기간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일부 사람들은 어서  빨리 일상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미안하지만 난 계속 갈팡질팡 내 안의 세계를 헤매고 다녔다. 하기 싫은 건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도  종종하지 않았다. 평소에 하지 않았던 일을 했고,  매일 해 오던 일을 그만뒀다. 스멀스멀 불안이 올라오기도 했지만 잘 참아냈다. 익숙했던 불안의 향기는 곧 잊혔다. 


마치 중2병에 걸린 아이처럼 세상으로부터 귀를 닫고 '나'의 동굴로 가서 나만의 소리를 들었다. 동굴 밖으로 나오자 세상은 달라져 있었다. 현실로 돌아갔지만 그 현실은 이전의 것과 달랐고 난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었다. 스스로를 속박하던 것들, 내가 갈망하던 것들은 이미 빛을 잃고 버려져 있었다. 단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대신 새로운 빛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로 뒤덮여 보이지 않던 것들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미지 출처: weheartit.com

물론 인간인지라, 사회적 기준에 있어 날 충족시켜줄 기회를 잃은 건 땅을 치고 후회할 만큼 아까웠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잡을 수도, 잡히지도 않는 기회였다. 그렇지만 씁쓸한 마음 끝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면의 소리를 듣기 위해 놓친 이 기회는 다시 오지 않겠지만, 내가 들었던 소리에 어울리는 더 나은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까'라고 말이다. 지나치게 긍정적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방황의 끝에 우리가 해야 할 또 다른 일은 타인의 말처럼 그 시간이 '낭비'된 것이란 인식을 버리는 것이다. 설령 진짜 '낭비'만 했다고 하더라도 스스로를 다독여줬으면 좋겠다. 수고 많았다고.  


방황을 통해 '성장'하는 것은 맞지만 방황의 결과가 '성장' 혹은 '발전'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위험하다. 천 번을 흔들린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한 번을 흔들렸다고  어린아이로 정체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방황이 삶을 막아서는 게 아니고, 삶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방황을 마치고 굳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아니지, 방황을 마쳤으면 아마 당신은 헤매다가 발견한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 그 변화의 과정에 자유로워지는 순간, 우리는 꽤 낭만적으로 방황할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weheartit.com

난 이번 방황을 통해 새로운 꿈이 생겼다. 늘 '해야 할 일'만 잔뜩 적어두었던 다이어리에 '하고 싶은 일'을 적을 수 있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다시 가슴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멈춰있던 생각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마 난 또 방황을 하게 될 것이다. 침체되고 정체되며 또 기회를 잃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굳이 '방황'하고 싶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활짝 열어두고 싶다. 방황이 알 수 없는 우리 인생에서 순간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며, 막아서는 것이 아니라 마주할 때 더 가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당신이 방황하는 이유를 굳이 변명하지 않길 바란다. 그냥 그건 어쩔 수 없는 방황의 속성이며 곧 우리 인생의 과정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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