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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31. 2017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

[KAFA FILMS 2017] 싹수 있는 장편 데뷔전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의 조종덕 감독과의 대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KAFA FILMS 2017 싹수 있는 장편 데뷔전]은 1984년 한국 최초로 설립되어 봉준호, 최동훈, 장준환, 허진호 등 한국영화의 거장들을 배출한 한국영화아카데미의 작품 기획전입니다. 



가끔 아주 특별한 음식을 먹고 싶은 것처럼, 가끔 새로운 작품을 만나고 싶은 충동이 든다. 

[KAFA FILMS 2017] 싹수 있는 장편 데뷔전 작품 중에서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를 보러 간 것은 그런 맥락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조종덕 감독의 2016년 작품으로 포스터를 보자마자 색감에 홀딱 반했고 정겨운 그림체 덕분에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 


<우리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 포스터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의 이야기는 경상남도 통영시의 198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인공 재영의 집에는 두 마리의 개가 있다. 한 마리는 족보까지 있는 진돗개로 이름은 진진이고, 또 다른 한 마리는 일본에서 인정받는 견종 아키다로 이름은 아키다다. (아키다도 진진과 같은 이름인 줄 알았는데, 감독과의 대화에서 견종의 이름을 그냥 따온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영화는 두 마리의 개에 얽힌 에피소드를 통해 한 소년의, 한 가족의 그리고 한 시대의 성장을 그려내고 있다. 



소년의 성장 


재영의 아빠는 요즘 시대로 말할 것 같으면 가부장제의 끝판왕이자 꼰대 그 자체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깨우는가 하면,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아내를 힘들게 한다. 재영의 엄마는 삶이 버거운 중년 여성이다. 거친 남편과 바람 잘 날 없는 삼 남매도 버거운 마당에 남편이 자식보다 애지중지하는 개 두 마리를 건사하느라 퍽퍽한 삶을 살아간다.  


아빠의 오토바이에 올라탄 재영


이 집의 둘째이자, 장남인 재영은 초등학생 꼬마다. 아빠가 무섭고, 엄마의 관심이 필요하다. 하지만 엄마는 늘 바쁘고 아빠는 집을 지키는 개, 진진과 아키다에게만 사랑을 쏟는다. 재영이는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개들이 싫다. 특히 가족들은 맛도 못 본 갈비를 밥으로 먹는 진진이 꼴도 보기 싫다. 어린 마음에 재영은 진진의 목줄을 풀어 집 밖으로 내쫓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아주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닫게 된다. 


사납게 마을 아이들에게 돌진하는 진진


평소 사납기로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건 아키다인데 이웃집 순영이의 동생의 무차별 공격에 화가 난 진진은 그대로 아이의 엉덩이를 물어 버린다. 진진이가 벌인 사건으로 동네는 한바탕 난리가 나고 아이를 문 개를 처분하겠다는 경찰의 결정에 재영의 아빠는 진진이가 아닌 아키다의 목줄을 넘겨준다. 


재영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아키다가 죽음에 이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아빠를 찾으러 나서는 이웃집 순영이와 함께 부산으로 향한다. 



가족의 성장


재영의 가족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불통 가족'이다. 누구도 대화하지 않는다. 일방적인 말은 오고 가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전무하다. 80년대에는 흔한 가족의 모습이었을지 모르지만 2017년을 살아가는 내게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터억 막히는 가족의 모습이다. 


앞집에 이사온 순영과 사나운 아키다를 진정시키는 재영


진진 습격 사건으로 아키다를 보낸 재영의 집에는 진진 혼자만 남는다. 아키다를 찾아 부산에 간 재영은 새살림을 차린 아빠를 목격하고 상심한 순영에게 위로를 해주려고 호떡을 훔치게 되고 결국 경찰서에 붙잡힌다. 실종된 재영을 찾아 헤매던 재영의 가족은 호떡을 훔친 재영을 혼내기보다는 무사하게 살아있는 재영을 끌어안는다. 물론 재회의 감동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외할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오는 재영의 가족


외할머니의 죽음으로 재영의 가족은 또 한 번 위기를 맞는다. 상심에 빠진 엄마는 아빠의 거친 행위를 참지 못하고 가출을 한다. 아내를 찾아 처가에 간 재영의 아빠는 술을 마시고 외삼촌과 싸우게 된다. 외삼촌들에게 꼼짝도 하지 못한 아빠를 구하기 위해 달려든 건 재영뿐이다. 뒤이어 늙은 노모를 골방에서 외롭게 죽게 만든 오빠들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재영의 엄마 목소리도 높아진다. 재영의 가족은 알 수 없는 일체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온다. 



시대의 성장 

 

조종덕 감독의 첫 장편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는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의 그림체와 다르게 1983년 한국 어촌의 정서가 담긴 선이 굶고 정감 가는 그림체가 인상적이었고 애니메이션이라는 특수한 장르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진행되는 스토리 전개가 감독이 단편에서 못다 말한 이야기를 성실하게 펼쳐내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쉽게 공감할 수 없는 캐릭터와 시대상이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기도 했고 캐릭터를 이해시키기 위해 빼곡하게 이어지는 부가적인 이야기가 관객의 피로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다. 


1983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우리 집 멍멍이 진진과 아키다>는 2017년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있을까?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 타이밍

영화의 초반, 진진이 이웃집 아이를 물어 다치게 했을 때 최근 이슈가 되었던 최시원의 프렌치 불독 사건(http://www.ekn.kr/news/article_lab.html?no=320450)이 떠올랐다. 영화의 엔딩에서 죽은 줄 알았던 아키다는 살아서 주인공 아빠의 오랜 친구 집에서 재영과 재회한다. 오늘날 다소 민감할 수도 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해 감독님께 그 의견을 물었다. 


영화의 후반부, 아빠의 지기 집에서 아키다를 다시 만나는 재영


감독님은 멋쩍게 웃으시며 최근 최시원 사건을 보면서 적지 않게 당황하셨다고 했다. 영화는 꽤 오래전부터 구상했던 것이고,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끌려간 개는 어떻게 될까?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정착한 결론일 뿐 사람을 다치게 한 개를 살려야 한다 등의 의견이 들어간 건 아니라고 하셨다. 그리고 감독님은 아키다를 아버지란 존재를 대변하는 역할로 그렸다는 말을 덧붙였다. 집을 지키는 개와 같이 가정을 지키는 어떤 존재로 아버지는 개에 자신의 처지를 이입했을 것이라고 했다. 


감독과의 대화에서 감독님이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 본인이 아버지가 되고 가정의 경제적인 부분을 간과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비로소 무뚝뚝하고 가부장적이던 자신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고 이런 유년 시절의 기억을 단편으로 담아내기에는 부족함이 있어 장편으로 이어가게 되었다고. 감독님의 머릿속에 남아있는 몇 개의 기억들은 단편적인 장면으로 남아 2017년 오늘날 관객에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남긴다. 우연치고는 절묘한 타이밍에 관객의 오해를 살 수 있겠지만 감독님이 그려낸 영화의 방점은 부성애와 가족애에 있다. 


#어쩌면 여전히 불통

극심한 가부장제는 사라졌지만 2017년 오늘, 많은 가족들은 여전히 불통 가족이다. 시선은 스마트폰에 고정되어 있고 대화는 여전히 부족하다. 더 자주 연락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이로 인해 느껴지는 상대적인 외로움 또한 극대화된다. 누구의 기억에서든 '가족'은 꽤나 묵직한 존재다.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안다고 해서 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상대를 잘 안다고 확신할 수 있겠지만 그런 생각이 바로 오해를 낳고 서로가 서로를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진진과 아키다는 말을 할 수도, 그럴싸한 행동을 할 수도 없지만 언제나 외롭게 귀가하는 재영의 아빠에게 위로가 된다. 가족들에게 표현하지 못하는 재영의 아빠가 새삼 안쓰럽게 느껴진다. 마냥 진진을 질투하게 만든 아빠의 호의 뒤에는 진진의 임신이 있었음을 어린 재영은 미처 알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나 어른이 된다. 그리고 시대는 변하겠지만 '가족'이라는 미묘하면서도 묵직한 공동체는 여전히 난제로 남는다. 영화를 통해 우리는 난제에 대한 약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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