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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May 22. 2018

노동의 본질

북저널리즘 <노동 4.0>을 읽고

지난 17일 발표된 LG경제연구소의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AI 자동화가 빠르게 실현되고 있어, 정부차원의 경제 구조 변화 대응책 및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제고를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고서에 적힌 객관화된 수치가 위기감을 주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자동화에 의한 일자리 위기론이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노동

1. <경제>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
2.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사전적 의미만 살펴보더라도 '노동'은 생계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어른들이 '배곯아 죽지는 않는 세상'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지만 청년들은 사상 최대의 취업난을 겪고 있으며, 국민 모두가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 듯하다. 노동이 곧 생계인 이 사회에서 인공지능이 일자리를 대체하게 된다는 무수한 전망은 실업자가 되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연상시키며 막연한 공포를 조성하기도 한다.  정말 머지않아 모든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까?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


노란색 띠지의 <노동 4.0>의 페이지는 단숨에 넘어갔다. 원래 책을 빨리 읽는 편이기도 했고 단 한 번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내용의 조합을 '활자'로만 인식해 더욱 물리적인 속도가 빨라진 것이다. 어찌 보면 실패한 책읽기였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마음을 가다듬고 책이 주목하는 시대적 배경에 먼저 집중하기로 했다.


바야흐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다. 나에게는 정부 차원에서 미래 성장 동력, 미래 유망 사업 등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리고 각 기업에서 인공지능,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에 투자를 하는 시기로 간략하게 인식된 시대.


p.10  4차 산업혁명과 노동 4.0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은 독일 정부가 추진한 인더스트리 4.0에 기원을 둔다. 독일은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노동력 감소와 제조 경쟁력을 위협하는 미국 주도의 디지털화에 대응해 몇 년 간의 논의와 준비를 거쳐 전 국가적 전략으로 인더스트리 4.0을 추진하고 있다. 고도의 자동화에 대응한 인더스트리 4.0이라는 사회적 논의의 결과가 바로 노동 4.0이다             


저자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이 가상 물리 시스템(Cyber Physical System)이며 이 시스템과 시뮬레이션을 이해할 때 디지털 혁명이 완성되는 새로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18p) 몇 페이지 넘기지 않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복잡다단하게 우리의 일상과 연계되어 있었다.


독일 인더스트리 4.0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국가의 스마트 공장화를 통한 제조 경쟁력 강화다. 독일 정부는 <노동 4.0 녹서>를 내놓고 미래 노동에 대해 논의할 사항을 국민 토론의 주제로 상정했다. 이 토론의 최종 결과물로 <노동 4.0 백서>가 발간되었고, 백서의 목적은 미래 디지털 시대에 '좋은 노동'은 무엇인지, 이를 위한 조건은 무엇이고 대응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독일은 이미 사회 전반에서 '노동'에 대한 사회적 동의를 얻는 긴 여정을 시작한 셈이다. 새로운 시대에서 '좋은 노동'이 어떻게 유지/ 강화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나에게 노동은 어떤 의미인가?


어떤 것을 직업으로 삼을 것인가에 대한 혹은 무엇으로 밥벌이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 멈춘 적이 없는 것 같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전공에 대한 흥미를 살피기보다는 졸업 후 이 전공으로 어떻게 먹고살 수 있는가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노동’ 그 자체에 대한 생각은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다. 이는 비단 나에게만 해당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독일에서 노동은 기본적으로 신성한 것이며 인간에게 주어진 소명으로 여겨진다. 독일은 디지털화로 인해 당장 실업자가 되어 경제적 곤란에 처할 것을 대비하는 것에 앞서 '좋은 노동'을 지속하기 위한 여러 대책들을 논의한다는 점에서 국민 기본소득에 열을 올리는 우리나라의 노동 정책과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현실에 떠오른 문제를 해결하는 정책을 발표하고 홍보하는 것에 시간을 쓰기보다 노동자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방점을 둔다는 점에서 독일의 행보는 주목할 만 하다.


저자는 독일 노동자들이 노동에 대해 가진 일곱 가지 가치 체계를 통해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해진 노동자들의 삶의 모습과 선호도를 보여준다.(pp37~pp40)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노동을 생계의 수단으로만 치부하기엔 시대가 변했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구성원의 생각 또한 다양화되었다.


1. 노동에 대한 걱정 없이 살고 싶은 유형 (28%)
- 노동이란 누리고 싶은 삶의 본질과 비슷한 것으로 보고, 예측 가능한 삶을 영위하고 싶어 함
2. 열심히 일하여 풍요로운 삶을 이루고 싶은 유형 (15%)
- 노력하는 만큼 보상받는 사회를 원하지만 현시점의 보상체계에 만족하지 못함
3. 일과 삶의 균형을 찾고 싶은 유형 (14%)
- 가정생활, 자아실현, 사회생활과 유지 병행할 수 있는 노동을 원함
4. 일 외의 영역에서 의미를 찾고 싶은 유형 (15%)
- 생계를 위한 노동에서만 삶의 의미를 찾지 않고,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데 국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봄
5. 자신의 역량을 총동원해 일하고 싶은 유형 (11%)
- 노동의 핵심가치가 책임, 효율성, 역량 발휘라고 생각하며 빠른 변화를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
6. 일 속에서 자아실현을 하고 싶은 유형 (10%)
- 일 속에서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새롭고 재미있는 경험을 많이 하는 것
7. 유대감이 강한 공동체 내에서 일하고 싶은 유형 (9%) 
 - 노동자의 개인 상황을 일에 능동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국가와 기업이 마련해주기를 기대


같은 세대의 독일 노동자들의 유형을 보면 나는 5번의 유형을 지나 6번의 유형으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있는 상태다. 물론 머지않아 1번 유형처럼 내가 할 노동이 없어진다는 걱정 없이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서울에서 혼자 생활하면서 월세, 생활비 등의 높은 '고정비용'이 발생했고 노동은 곧 생계를 위한 주요 수단이 되었다. 또한 일을 통해 내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강했던 시간이 길었던 만큼 생계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닥치는 대로 나의 노동력을 투하하곤 했다. 내 정체성을 발현하기 위해 투여한 노동력만큼 내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게 되자 노동의 의미는 조금씩 변하게 되었고, 새로운 경험이나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자아실현의 기회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물론 기본 소득 즉 생계에 대한 조건은 가장 기본이 되었지만 그것만을 충족시키에 노동은 내게 너무 큰 의미로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깨달은 것은 '노동'을 비단 자신만의 생각, 자신만의 문제로 치부할 때 사회적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어떻게 '노동'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기준은 나의 기준과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일까? 작년 발생했던 강원랜드 채용비리는 썩을 만큼 썩은 조직의 단면을 드러낸 사건인 동시에 돈이 많은 집에서조차 자식의 잉여로운 노동력을 어찌하지 못해 불법을 감행하는 혹은 '생계'로의 노동을 위협하면서라도 생계의 문제와는 거리가 먼 자신의 자식을 노동의 장에 편입시키려는 모순적인 사회구조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컨센서스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 인식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도 같다.


디지털 노마드, 뉴칼라 등 새로운 환경을 주도해가는 스마트 워커들이 생기며 노동에 있어 다양한 실험이 진행되는 것을 자주 목격하는 동시에 여전히 노동 시간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과 대우를 받는 이야기를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혹자는 능력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고 혹자는 업계의 차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책을 읽은 뒤 이 상황이 사회 구성원 전원이 서로의 '노동'에 대한 이해 없이 단편적인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춰 나의 노동에 대해, 그리고 이 사회 구성원이 생각하는 노동에 대해 점진적으로 생각하고 격렬히 토론하며 더 많은 구성원들이 이해하고 이해받을 수 있는 노동의 모습을 그려간다면 '디지털화'에 의해 일자리를 잃고 당황하는 수동적인 모습보다, 디지털화 된 사회에서 우리의 노동 가치를 명확히하고 이를 컨트롤할 수 있는 능동적인 모습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직업은 안전할까?


문화 콘텐츠를 기획하던 나는 올해 초 모바일 서비스 기획으로 직무를 변경했다.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4년가량의 커리어를 손바닥 뒤집듯 바꾼 건 아니었다. 이유를 말하자면 복잡다단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라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난 직무 변경을 통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더욱 가까워졌다.


인공지능/ 딥러닝/ 자연어 처리/ 빅데이터 등등 유망하다고 여겨지는 모든 단어가 회사 소개에 포함되어 있기도 하고 이 기술을 배우고 익힐 수밖에 없는 위치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 또한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오히려 인공지능의 동향을 빨리 접하기 때문에 종종 구체적인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조직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스타트업에서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환경에 대한 고민도 점차 많아진다. 시대가 원하는 직무를 맡고 있다고 해서 노동에 대한 고민이 사라지는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는 것이다.


책에 언급된 중국 알리바바Alibaba의 CEO 마윈의 말을 살펴보면 인간이 대대적인 변화를 겪는 것은 결코 처음이 아니다.


1차 기술 혁명은 인간의 체력을, 2차 기술 혁명은 인간의 거리를 해방시켰다. 3차 기술 혁명은 인간의 뇌를 해방시킬 것이다. 한 차수의 기술 혁명엔 50년이 소요되며, 과거 20년이 기본적으로 순수 기술 기업 간 경쟁과 발전으로 진행됐다면 앞으로의 30년은 기술의 응용이 핵심이다. 1차 기술 혁명은 1차 세계 대전을 몰고왔다. 2차 기술 혁명은 2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됐다. 다가올 기술 혁명은 인류가 유지해 온 사상으로부터의 해방이나 새로운 지혜의 개발일 것이다. 이로 인해 제 3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수도 있다. 공통의 목표가 없다면 인류는 스스로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 이번 기술 혁명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빈곤의 문제이자 질병의 문제요, 환경과 지속 발전의 문제다 - p96


기술이 변하는 것을 막을 길은 없다. 기술이 우리의 삶을 더욱 편하게 하는 것 또한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다만 이 변화에 대한 우리의 선택이 변화의 결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노동 후에 즐기는 맥주와 함께 휴일에 다시 읽는 노동 4.0


저자는 노동의 역할을 새롭게 모색하고 있는 독일의 사례를 통해 노동을 모르는 노동자인 내가 어떤 방식으로 노동에 접근할 수 있는지 그 실마리를 제공해주었고 인공지능이 과연 나를 실업자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앞서 적극적으로 노동에 대한 토론을 이어가는 것이 먼저라는 숙제 또한 안겨주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내 삶이, 내 노동의 가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노동의 본질은 결국 노동자, 나 자신임을 알게 되었다. 내일이면 다시 노동의 현장으로 돌아가 여느 때처럼 일을 하고 일을 마치면 퇴근을 하겠지만 분명 조금은 다른 노동자가 되어있지 않을까.



<노동 4.0> 보러 가기 

*이 책은 스리체어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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