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케이크 메이커>(2017) 리뷰
오피르 라울 그레이저 감독이 8년 만에 완성했다는 영화 <케이크 메이커>(2017)는 '먹는' 행위 혹은 '음식' 안에 정치, 종교, 사랑 등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를 함축해낸다. 군침이 흐르는 달콤한 디저트부터 유대교의 엄격한 규율에 맞춰 만든 코셔 인증 요리와 샤밧 식사까지 영화에 등장하는 다채로운 음식 안에는 단숨에 읽어내기엔 어렵고 복잡한 관계들이 녹아져 있다.
예루살렘 출신의 남성 오렌과 베를린 출신의 남성 토마스가 그 관계의 시작이며, 오렌이 죽자 오렌을 잊지 못해 그 흔적을 찾아 예루살렘으로 떠나게 된 토마스가 오렌의 부인 아나트와 오렌의 가족들을 만나면서 관계는 더욱 복잡해진다. 오렌과 토마스는 서로 사랑했다. 하지만 오렌의 죽음은 그들을 갈라놓았고, 그 죽음을 시작으로 토마스와 아나트의 알 수 없는 관계가 시작된다.
두 사람 아니 세 사람의 관계는 다양한 음식을 매개로 현실과 가상, 규율과 일탈 사이를 넘나 든다. 영화는 손에서 입으로 입에서 다시 몸속으로 스며드는 소화의 과정처럼 사랑의 감정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배신을 당한 상실감이 충격에서 일상으로 체화되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그려낸다.
현실, Berlin 크레덴츠 카페
영화의 배경이 되는 베를린의 크레덴츠 카페는 실제 베를린에서 영업 중인 빈티지풍 카페다. 지극히 현실 속인 이 장소에서 영화는 시작된다. 베를린 출장이 잦은 유대인 남자 오렌은 크레덴츠 카페의 케이크 맛에 반해 베를린에 올 때마다 카페에 들러 케이크를 먹는다. 카페의 주인은 직접 달콤한 디저트를 만드는 베를린 남자 토마스다.
베를린에 올 때마다 케이크를 먹으러 온다고 밝힌 오렌은 곧 토마스와 뜨거운 사랑을 시작한다. 토마스가 만든 케이크처럼 두 사람의 사랑은 달콤하지만 오웬이 베를린 출장을 마치고 아내와 아들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리면 토마스는 베를린에 혼자 남게 된다. 베를린은 두 사람의 사랑이 물리적인 현실이 될 수 있는 장소다.
가상, Jerusalem 코셔 인증 카페
베를린의 실제 하는 카페 크레덴츠와 달리 오렌의 아내 아나트가 운영하는 예루살렘의 카페는 영화에서만 존재한다. 아나트는 코셔* 인증을 받은 카페를 운영한다. 코셔Kosher는 '적당한', '합당한'이라는 사전적 의미로 전통적인 유대교 율법에 따라 식재료를 선택해 조리한 음식을 일컫는다. 규율에 맞춰 음식에 사용되는 재료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국적, 종교 등이 제한된다.
샤밧은 '멈추다', '중단하다'라는 뜻으로 안식일을 일컫는다. 금요일 해 질 녘부터 토요일 해 질 녘까지를 말하고 이 시기에는 샤밧 의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함께 한다. 빵의 조리법이나 식사법에도 엄격한 규율이 지켜지기 때문에 매주 샤밧 의식을 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규율을 몸에 익히게 된다. 토마스는 예루살렘에 가면 율법에 속하지 않는 철저하게 소외된 이방인이 된다. 자신의 카페를 운영하던 토마스는 함부로 오븐을 쓸 수도 없고, 그가 만든 디저트는 코셔 인증에 어긋난 음식이 되고 만다. 그동안의 삶에선 상상하지 못했던 세상이 존재하는 것 같다. 마치 그를 혼자 남기고 세상을 떠난 오렌의 존재처럼.
규율 (혹은 관습)
식탁에 할라빵 2개, 소금, 포도주, 두 개의 초와 촛대, 성경 그리고 만찬이 차려진 샤밧 식사에는 많은 것이 응축되어 있다. 빵과 토라 돌판의 개수부터 시작하여, 빵에 뿌리는 소금과, 포도주에 담긴 의미는 샤밧 식사가 단순한 식사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신의 은혜로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는 것이 오렌에게 주어진 삶의 정답지였을 것이다. 그의 아내 아나트와 여섯 살배기 아들은 그가 정답대로 살아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같은 문화권에서 자란 아나트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에서 태어나 철저하게 유대교의 규율을 따라온 오렌은 평범한 가장인 동시에 케이크를 좋아하는 케이크 애호가이다. 또한 달콤한 케이크를 굽는 독일 남자 토마스와 사랑에 빠져 그를 이루던 모든 규율과 관습을 깨뜨리고 베를린에서 토마스와의 새 삶을 시작하겠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는 성소수자이기도 하다. 오렌의 결정으로 아나트는 깊은 배신감과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일탈
아내와 아들을 버리고 자신의 근간을 이루던 율법을 외면하고 베를린에서 토마스와의 새 삶을 준비하던 오렌에게도 분명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오렌의 시점을 보여주지 않지만 오렌의 흔적을 찾아 예루살렘에 온 토마스가 겪는 문화의 격차 그리고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을 통해 오렌이 겪었을 내적 갈등을 보여준다.
남편을 잃은 아나트는 혼자 생계를 꾸리고 아들을 키우는 이 상황이 서툴고 어렵다. 날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규율은 내 가정을 지켜주지 못했고, 앞으로 무엇도 그녀와 아들을 지켜줄 것 같지 않다. 그래서일까 그녀는 규율은 지키되 규율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편견에는 자유롭다. 이방인 토마스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고, 그의 베이킹에 반해 코셔 인증이 위태로워져도 그가 만든 디저트를 카페에서 판매한다.
영화에서 주인공 토마스가 만든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는 보는 이들의 식욕을 강하게 자극한다.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의 독일어 이름은 슈바르츠밸더 키르쉬토르테Schwarzwälder kirschtorte로 초콜릿 스펀지 케이크 층 사이사이를 생크림과 체리로 채운 뒤 케이크 겉면을 생크림으로 덮은 후 그 위에 얇은 초콜릿 조각과 체리 장식을 얹은 케이크다.
혹자는 흩뿌려진 초콜릿 조각 때문에 검은(Schwarz 슈바르츠) 숲(wald 발드)이란 이름이 생겼을 것이라고 하기도 하고 혹자는 이 케이크의 모양이 슈바르츠발트란 지역 여성의 전통 의상을 연상시키기 때문에 유래한 이름이라고도 한다. 생크림은 하얀 블라우스, 초콜릿은 검은 드레스, 체리는 모자에 달린 빨간 방울을 상징하는 재료라는 것이다. 무엇이 정확한 어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케이크가 베를린을 대표하며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디저트라는 것이다.
아나트의 일상에 스며든 토마스와 토마스가 만든 디저트는 상처받은 아나트의 마음을 움직인다. 규율에 따르면 오븐도 사용할 수 없는 이방인이자 남편이 사랑한 남자와 너무 많은 것이 겹쳐지는 토마스와의 사랑은 전반적으로 어두운 색감을 가졌지만 하얗고 빨간 위의 장식이 시각적으로 입맛을 돋우고 겹겹이 느껴지는 각 재료의 풍부한 맛이 포크를 내려놓을 수 없이 만드는 블랙 포레스트 케이크처럼 두렵지만 달콤하다.
남편이 사랑한 남자, 자신이 사랑한 남자의 아내가 서로 떠나간 이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이 자칫 아침드라마의 불륜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이질적인 일상의 장소를 오가며 인간의 본능인 식욕과 성욕을 아주 담담히 다루고 있다.
꺼내먹어요, 위로
사실 <케이크 메이커>에서 토마스는 아나트를 위로하지 않는다. 아나트 또한 토마스를 위로하지 않는다. 그들은 아주 충실히 자신의 삶을 위로한다. 마치 디저트로 사다 놓은 케이크를 꺼내 먹듯이 자신에게 닥친 상황과 관계들 가운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간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다른 성향의 음식이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이 영화는 '먹는다'는 것에 함축된 인간의 본능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식구食口 - 한 집에서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을 일컫는 '가족家族'과 달리 '식구'는 함께 음식을 나누는 행위의 반복 만으로도 혈연관계의 끈끈함을 넘어서는 유대를 의미하기도 한다. '먹는다'는 행위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면, '함께 먹는다'는 행위는 관계에 깊은 연관이 있다.
토마스와 아나트는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누가 누구를 위해 만든 음식인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먹는 순간의 달콤함에, 음식을 건네는 이의 다정함에 조금씩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 과정은 누군가를 위로하는 것에 서툰 내가 본 가장 자연스러운 위로의 장면이었다. 내가 본 <케이크 메이커>는 말한다.
시간은 조금 오래 걸리겠지만 아주 천천히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만 꺼내먹어요,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