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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un 24. 2018

선전, 메이드 인 차이나

북저널리즘 <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을 읽고

도시 곳곳엔 CCTV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덕분에 범법자 및 범죄 용의자 검거와 실종자 수색이 쉬워진다. 전기차가 도로를 달리고 운전은 더 이상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노점상에서도 QR코드와 핸드폰만 있으면 결제가 가능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지문을 센서에 스와이핑 하면 결제가 가능하다. 점원이 없는 무인 편의점, 무인 자판기에서 24시간 물건을 살 수 있다. 집에서 쓰는 아주 작은 생활용품(이를테면 칫솔, 체중계)과 전자제품(가스레인지, 에어컨, 보일러, 텔레비전, 스피커 등)이 하나로 연결되어 집 밖에서도 핸드폰 하나로 조정할 수 있고 디바이스를 통해 건강을 관리하거나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 영화나 소설 어디선가 본 듯한 미래도시의 모습이다.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사실 현재 중국의 몇몇 도시에서 실제 일어나는 일이며 향후 몇 년 안에 우리 삶에도 자연스럽게 스밀 도시의 모습이다.





얼마 전 읽은 블로터 기사에 따르면 베이징은 개찰구에서 손바닥 지문을 인식해 결제하는 방식을 올해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에 구축한 실시간 영상 감시 시스템 '톈왕(天網, '하늘의 그물')은 개개인을 식별해 범죄 용의자를 추적하고 실종자를 찾아내는데, 이 시스템의 정확도는 최대 99.8%에 달한다고 한다. 중국 공안은 지난 2년간 이 시스템을 통해 2천 명 이상의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중국엔 현재 1억 7600만 대의 감시 카메라가 작동 중이며 2020년 최소 4억 5천만 대에서 약 6억대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항저우 출신 H가 들려준 항저우의 모습은 직접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발전되어 있었다. 결제는 모두 위챗 페이나 알리페이로 이루어지며, 샤오청쉬(위챗의 미니앱)를 활용해 앱을 깔지 않고도 맛집의 대기인수 파악부터 시작해 음식 주문/결제를 한 번에 할 수 있다. 택배를 보낼 때도 위챗 페이와 알리페이로 빠르게 접수할 수 있고, 배달음식을 시키면 음식이 조리되는 시간부터 배달원의 실시간 위치까지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항저우가 알리바바의 도시기 때문에 알리페이를 쓰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지만 중국 전역 어디를 가든 모든 사람이 위챗 페이와 알리페이를 사용해 결제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다고 했다.


중국은 놀라운 나라다. 잘 생각해보면 도시에 설치된 수많은 CCTV와 범죄 감시망은 심각한 인권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고, 지문인식 결제 시스템 또한 개인의 권리 혹은 생체 데이터의 보안 문제 등을 야기시킬 수 있다. 알리페이와 위챗 페이 그리고 각종 핀테크 시스템이 보편화될 수 있었던 건 중국 당국의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고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실제 <차이나 핀테크>를 읽어보면 중국이 핀테크 사용률 1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건 중국 당국의 정책과 텐센트, 알리바바와 같은 대기업의 긴밀한 협업 덕분이다.


중국의 대표적 핀테크 브랜드 (왼) 알리페이 (오) 위챗페이


이제 핀테크 회사마다 신용시스템을 도입하였고, 대출이나 투자 또한 핀테크를 통해 이루어진다. 국내에 이 문제를 적용해보면 네이버나 카카오의 개인정보 유출 문제를 떠올리게 되고 핀테크 영역 또한 쉽게 도입되긴 어려운 문제처럼 보인다. 하지만 중국은 비교적 쉽게 핀테크 도입을 통해 신용문제를 해결했다. 도시 전문가들 사이에서 베이징은 법규 도시(Code City)라고 불린다. 엄격한 도시관리 계획법이 존재하고 이는 시민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상해는 정부의 계획에 따라 세 차례 큰 변화를 겪었고 도시 곳곳 그 흔적이 남아있다. 중국 당국의 확고한 도시 개발 계획은 50여 곳의 유령도시(중국의 도시 중 개발이 되어있지만 비어있는 도시를 일컫는 말)를 만들며 사회경제적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다.


상해 ⓒwww.burgessyachts.com
중국의 유령도시  ⓒGreg Baker


그렇다면 <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에서 다루고 있는 중국의 도시 선전은 어떨까? 책을 통해 도시의 이면까지 알 순 없지만 현재 선전의 온도를 비교적 느낄 수 있었는데 선전은 '미래를 사는' 도시였고, 그만큼 철저하게 미래를 준비해 온 도시였다. 그리고 누구보다 빠르게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도시기도 했다.



선전, Made in China


선전은 아주 매력적인 도시다. 실리콘밸리를 능가할 중국의 대표도시기도 하다. <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에서 저자는 선전의 성장배경과 선전의 오늘을 잘 정리하고 있으며 선전이 가진 매력을 크게 세 가지로 짚어낸다. 중국이 만들어 낸 선전의 매력은 무엇일까.


1. 선전시스템 (Shenzhen System)

첫 번째 매력 요소는 선전 특유의 시스템이다. 1980년 8월 26일 덩샤오핑이 선전을 '경제특구'로 지정하면서 300가구 남짓이었던 어촌마을 선전은 유동인구 2,000만의 도시로 성장하게 된다.


덩샤오핑은 개혁, 개방, 근대화라는 세 가지 목표를 위해 경제특구 전략을 세운 중국 집단 지도 체제 2세대의 핵심 인물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을 이야기하며 사회주의든, 자본주의든 경제 발전을 위해서라면 가릴 것이 없다던 추진력이 그의 동상에도 잘 드러나 있다. (p.18)


선전은 경제발전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했다. 화창베이 일대를 샹부 공업지구로 만들자 전자 기업 등이 입주했고 중국 정부는 100여 개의 소규모 전자 기업을 모아 최초의 국영 전자 기업인 '선전 전자그룹'을 만들었다(19p) 이후 해외에서 부품을 수입할 때 절차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펼쳤고 이 결정은 오늘날 전 세계 하드웨어 기업을 화창베이에 모여들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 중국의 파격적인 관행 파괴와 새로운 정책적 도전은 선전의 정체성을 더욱 분명하게 했고, 지속적인 도시 발전 로드맵을 제시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중국 당국의 파격적인 정책은 마치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도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다. 화창베이의 전자부품, 기술 시장이 성장하자 세계 최대 물류도시로 나아가기 위해 2013년부터 웨강아오 대만구 계획의 청사진을 그렸고 여러 정책을 통해 이를 구현하고 있다.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중국은 큰 그림을 그리고 시간을 들여 완성하는 데 익숙한 나라이기 때문에 그 결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할 수밖에 없다. (물론 유령도시와 같은 실패작도 있지만...)


웨강아오 대만구계획은 선전을 포함한 광둥성 9개 도시와 홍콩, 마카오를 잇는 메가 경제권을 만드는 전략이다. 세 지역은 지리적으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산업 측면에서도 각각의 장점이 있다 (p30)

선전과 홍콩의 경제 통합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5년 자유 무역 지구로 지정된 선전 쳰하이는 홍콩과 선전의 통합을 위한 시범무대다. 쳰하이는 홍콩 국경에서 1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선전 국제공항과도 가까워 홍콩과 중국 내륙 시장을 연결하기 용이하다. 중국 정부는 쳰하이를 2020년까지 글로벌 금융허브로 만들겠다는 계획이다.(p31)

더 많은 글로벌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쳰하이는 파격적인 조세 혜택을 제공한다. (중략) 쳰하이는 홍콩과 선전 정부가 협력해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창업 허브이기도 하다. 조세 혜택이 제공될 뿐 아니라 창업 절차가 간단하기 때문에 중국에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신생 기업에게는 기회의 땅이다. (p32)  


또한 선전은 세계 최대 스타트업 허브로 도약하고자 한다.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이를 이루기 위해 정부, 기업 그리고 구성원들이 긴밀하게 협력하는 선전시스템은 놀랍다. 강력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한 많은 일들이 선전에서 일어나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놓인 스타트업이라면 선전의 이런 행보가 위협(risk)이 아닌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2. 모든 물건은 선전에서 나온다 (Make with Shenzhen)

세상 모든 물건이 중국에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는 한때 개그 코드로 쓰였다. 싸지만 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였고 실제 중국의 야시장에서 짝퉁 바비 인형 시리즈를 사 왔는데 인형을 상자에서 꺼내니 뒤통수가 비어 있거나 팔과 다리가 쉽게 분리되는 등 최악의 상태를 경험했다는 지인을 본 적이 있었고 짝퉁 시계를 사와 일주일도 쓰지 못하고 버려야 했던 친구도 목격한 적 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륙의 실수'는 정말 고마운 일이 되었다.


한 때 맥북과 아이패드 그리고 애플의 전자제품을 애플 전용 가방인 인케이스에 넣고 다니던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애플의 '산자이(모조품)'로 초반 조롱을 받았던 샤오미가 인기를 얻으며 이제 샤오미에서 나온 가방에 샤오미 보조배터리와 전자제품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샤오미의 전자 체중계와 공기청정기 또한 대륙의 실수 목록에 오르며 큰 인기를 끌었다. 다이슨을 표방한 차이슨 또한 메이드 인 차이나란 단어의 뜻을 바꾸는데 큰 몫을 했다.


중국인들은 산자이를 단순히 모조품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수호지>의 도적들이 악당이 아니라 의로운 협객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것처럼, 산자이는 글로벌 브랜드에 대항하는 중국 무명 브랜드의 반란을 뜻하는 긍정적인 말로 쓰인다. (p42)


그렇다 책에서 서술한 대로 제품을 만들 때 모방을 하는 것은 그리 창피한 일이 아니다. 단지 산자이에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깜짝 놀랄만한 기술력과 경쟁력을 갖춰 세상에 새로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화창베이의 기술자들은 도면만 가져다주면 무엇이든 만들어준다고 말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기술을 구현해주는 것이 단순히 노동력과 기술력만을 제공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와 새로운 기술이 그들을 끊임없이 성장하게 하는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하드웨어 스타트업은 선전 지역으로 반드시 와야 한다. 빠르고 저렴하게 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있고, 신속하게 비즈니스를 확장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더불어 물류와 유통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하드웨어 스타트업에게는 취적의 장소다. 제조 공장들도 하드웨어 스타트업과 협업하는 것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선전 핵스의 벤자민 조프 (pp50-pp51)


벤자민 조프의 말대로 하드웨어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선전은 꿈의 도시일지도 모른다. 제작 인프라, 물류와 유통 시스템 그리고 노련한 기술자란 삼박자를 갖춘 도시는 전 세계를 통틀어 아직은 선전 밖에 없을 것이다. 갑자기 모든 공대생의 졸업작품은 을지로에서 완성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생각났다. 을지로에 도면만 들고 가면 뭐든 만들어주는 것처럼 누군가 아이디어와 도면만 들고 가면 선전의 공장이 그것을 만들어주고 전 세계로 빠르게 유통해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되어준다는 것이 아닌가.



3. 스타트업의 기본값은 실패다


20대에 사장이 되지 못하면
대장부가 아니다.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창업은 두려운 것이 아니다. 초등학생의 꿈을 물어보면 '공무원'이라고 답하는,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해볼 때 중국 젊은이들의 창업의지는 다소 과장된 것 같다. 하지만 선전에는 한 해에만 80만 개의 스타트업이 생긴다고 한다. 선전의 기업 수는 중국 전체 1위에 육박한다. 중국 정부는 창업을 하는 이들에게 체계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스타트업 직원들에게 주거를 제공하기도 하고 넉넉한 투자자금을 지원하고 가능성 있는 기업에게는 집중적으로 투자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각종 창업 지원정책이 쏟아지는데 왜 우리나라 젊은이의 대다수는 창업을 두려워할까. 아마도 창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때문이 아닐까. 누구나 아는 것처럼 우리나라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 실패해서 실패자로 낙오하는 것보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다고 강요받는다.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창업을 하기 위해 정부 기관의 문을 두드리면 제일 먼저 묻는 것이 '수익 모델' 유무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충분히 창업이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실패를 하는 것은 스타트업에게 너무 당연한 일이다. 텐센트가 위챗을 만들기 전에 수많은 실패작은 만들었던 것처럼 중국에서 '실패'는 더 나은 선택을 위한 여러 가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지, 한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지 않는다. 지금은 유니콘 기업이 된 여러 중국 기업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그들이 선전에서 펼치는 액셀러레이팅 과정을 보면 선전에서 '실패'는 너무 당연한 양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은 분명 변화하고 있다. 선전은 그 중국의 변화와 중국에서 변화의 물결을 일으키려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기회의 땅이 되고 있다. 올해가 가기 전에 선전을 방문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는 선조들의 말처럼 직접 한 번 선전에 가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결론이 되지 않을까 싶다. 선전의 발전사를 읽으며 이건 정말 '중국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긴 했지만 성장을 위해 규제를 풀거나 장기적인 관점의 치밀한 정책을 설정하는 정부의 노력과 실패에 관대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우리나라도 조금은 더 많은 젊은이들이 도전하며 조금은 더 빨리 우리만의 미래도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창업을 준비한다
스타트업 문화에 관심이 많다
중국 시장(고객/하드웨어/소프트웨어 등)에 관심이 있다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위 경우 중 하나라도 해당한다면 <미래를 사는 도시, 선전>의 일독을 권한다. 그리고 위 경우에 해당하지 않더라도 일독을 권한다 한 번 경험해보면 좋을 새로운 세계가 책 속에 펼쳐지고 있을테니깐.



*썸네일 사진 - China is the next silicon valley ⓒKevin Hua 

**이 책은 스리체어스에서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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