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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Jun 30. 2018

떠나요, 무주로

무주산골영화제를 200% 즐기는 방법

2018년 6월 21일 제 6회 무주산골영화제의 막이 올랐다. 3년 전부터 가고 싶었지만 멀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던 무주산골영화제에 드디어 참석하게 되었다. 3년 전과 마찬가지로 난 여전히 뚜벅이지만 3년 전과 다르게 새로운 환경에서의 색다른 경험이 갖는 매력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금요일 오후 반차를 냈고, 서울-무주행 시외버스를 예매했다.



무주산골영화제에 대한 오해 세 가지


1. 무주는 매우 먼 곳이다

무주는 멀다. 서울에서 무주까지 시외버스로 2시간 30분. 서울에서 강릉이나 속초를 가려면 그 정도 시간 혹은 그 이상을 가지만 무주만큼 먼 느낌은 아니다.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무주는 낯선 지역임이 분명하다. 막상 무주에 와 보니 별로 멀지 않았다. 친구는 기차를 타고 대전역에서 내려 시외버스를 타고 왔는데 2시간 남짓 걸렸다고 한다. 무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리면 영화제 장소가 코앞이다. 그곳에서 영화제의 거의 모든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결코 가깝진 않았지만 결코 먼 곳도 아니었다. 


2. 시골이라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무주는 시골이라 뭐든 없을 것 같았다. 분명 지도 앱을 봤을 때 주변에 상가가 있었지만 별로 멀지도 않은 거리가 괜히 멀게 느껴지고, 음식 배달을 안 해주면 어쩌지 쓸데없는 걱정이 많았다. 이상하게 후기를 보면 다들 먹을 것 이야기가 없어서(... 그렇다... 나에겐 먹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괜한 걱정을 했다. 사실 숙소도 걱정이었다. 향로산 자연휴양림. 마치 고등학교 수련회장 같은 느낌이라 너무 외진 곳은 아닐지, 영화제 쪽의 셔틀을 놓쳐 밤중에 고생하는 건 아닐지. 이래저래 걱정이 많았다. 물론 1도 쓸모없는 걱정이었다. 



가자마자 날 반긴 건 행사장 안(카드결제 가능)에서 파는 닭강정, 핫도그, 김밥, 떡볶이 등등의 음식과 맥주, 콜라 등의 음료였고 행사장 근처엔 편의점과 하나로마트가 있어 필요한 모든 것을 구매할 수 있다. 밤엔 피자를 배달시켜 피크닉 매트에서 피맥을 하며 영화를 봤고 영화제 사진을 인스타에 업로드하자마자 배스킨라빈스 무주점에서 내 계정을 팔로우했다. 모든 걱정이 1도 의미 없었던 순간이었다. 


3. 영화제에서 원하는 영화를 못 보고 오면 어쩌지?

영화제에 가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은 당연히 보고 싶은 영화를 고르는 것이었다. 사전 예매에도 꽤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무주산골영화제엔 사전 예매가 없다. 원하는 영화를 선택하고 선착순으로 영화상영장에 가면 볼 수 있다고 쓰여 있는데 걱정이 많은 내겐 그 상황이 더욱 불안했다. 게다가 라인업도 좋아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엔 괜히 사람이 많을 것도 같았다. 하지만 원하는 영화를 모두 봤고, 사전 예매를 하지 않아서 자유롭게 보고 싶은 영화를 더 보거나 컨디션에 맞춰 영화 스케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장점까지 발견했다. 



무주산골영화제에 가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 가지


1. 영화

무주산골영화제에서 영화는 모두 무료로 볼 수 있다. 앞 서 설명했듯이 미리 예매를 할 수 없는 대신에 시간에 맞춰 상영장을 찾기만 하면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 국내의 유명 영화제들(전주, 부산, 부천 등)과 달리 무주산골영화제에서는 예매에 실패해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오지 못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실내 상영작의 경우 선착순 입장이기 때문에 적어도 영화 시작 15분 전엔 입장하는 것이 좋다.(어떤 영화는 20분 전에 객석이 다 차기도 했다) 무주라는 지역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함인지 모르겠지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다양한 영화가 준비되어있다. 서울에서 이 정도 라인업이라면 사전 예매 제도가 필요했겠지...


피크닉 매트에 누워서 본 <지구: 놀라운 하루>


브런치 시사회를 통해 봤던 영화가 꽤 많아서 난 <지구:놀라운 하루>, <판타스틱 우먼>, <뉴턴> 이 세 개의 영화를 골랐고 체력이 되면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을 볼 예정이었다. 보고 싶었지만 미처 보지 못했거나 처음 들어본 영화를 선택 기준으로 두었는데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 무주산골영화제에선 자유로운 상영 시스템과 화려한 라인업 그리고 (두구두구) 밤중에 피크닉 매트에 누워 영화보기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편하게 영화를 즐길 수 있다. 



2. 자연

무주산골영화제는 캠핑의 로망을 실현해준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저 멀리 산이 있다. 눈이 편안해진다. 푸릇한 운동장에 커다란 몽골텐트가 설치되어 있다. 알전구와 가랜드가 산골의 색과 잘 어울리고, 몽골텐트 안도 아기자기 잘 꾸며져 있다. 이곳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 '정말 잘 왔다'라고 생각했다. 



가방을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편안한 마음으로 행사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딜 가든 풀냄새가 따라다녔다. 더울까 봐 걱정했는데 해가 지고 나니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사실 이건 백 번 이야기를 해도 그 느낌을 완벽하게 전달하긴 어렵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자연 속에 있으면 어느 정도 피로회복이 된다. 하늘색과 초록색을 한껏 보고 왔더니 마음이 조금 청량해지는 느낌도 들었다. 머릿속을 맴돌던 걱정거리가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 덕분에 조금은 잊히는 기분이랄까. 



3. 낭만

무주산골영화제는 캠핑의 로망을 실현시켜준다. 자연 속에서 예쁜 텐트를 치고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밤 중에 프로젝터를 연결해 영화를 보거나. 이런 캠핑의 로망을 모두 실현시킬 수 있는 곳이 바로 무주산골영화제다. 피크닉 매트를 깔고 앉아서 책도 읽고 이것저것 간식도 먹고 공연도 즐기고 영화도 본다. 


약간 습하긴 했지만 분위기가 다한 등나무운동장 메인 텐트


아이들은 마음껏 뛰어다니고 사람들은 저마다 편한 자세를 찾아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잔다. 둘째 날엔 그늘 밑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점심을 먹은 뒤 늘어지게 낮잠을 잤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개운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 옆 그늘에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아이들 뛰노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푹 잠들었다. 


산골놀이터에서는 볼링과 골프 그리고 대형 젠가를 즐길 수 있었다


어릴 적 해봤던 놀이들을 즐길 수 있는 산골 놀이터도 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괜히 한 번 해보면 별 것도 아닌 게 그렇게 재미있을 수 없다. 아마 산골이기 때문에 더욱 재미있게 느껴졌을지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노는지 구경하는 것도 꽤 흥미롭다. 가끔 기발할 정도로 멋지게 휴식을 즐기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니깐. 


해가 지면 산골을 배경으로 음악이 흘러나온다 (에디킴의 무대와 정인의 무대)


해가 지면 음악이 흘러나온다. 에디킴의 팔당댐을 무주에서 들으니 이렇게 좋을 수가. 정인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도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조정치와 딸도 함께 즐기러 왔단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흐뭇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들은 이 산골에서 행복한 추억을 쌓겠지?


밤 중에 사람들이 저마다 편한 형태로 영화를 본다


밤에 야외에서 맥주와 함께 즐기는 영화는 정말 낭만의 절정을 찍게 해주었다. 이 시간을 위해 긴소매의 옷을 챙겼고 담요도 준비했다. 물론 모기 퇴치제도 샀다. 모기 퇴치제를 거의 뿌리지 않은 나는 모기를 하나도 안 물리고 모기 퇴치제를 아주 많이 뿌린 친구는 모기를 잔뜩 물린 걸 볼 때 그 효과는 잘 모르겠으나 모기 윙윙 거리는 소리는 하나도 듣지 못했던 매우 쾌적한 시간이었다. 


다큐멘터리 <지구: 놀라운 하루>를 봤는데 갓 태어난 이구아나들이 뱀을 피해 바위산으로 오르는 장면이 나올 땐 아이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나 또한 숨을 죽이고 이구아나의 무사한 탈출을 기도했다. 어두워서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새어 나오는 함성만으로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연 속에서 보는 자연 다큐멘터리라니. 정말 멋졌다. 다른 야외상영장에서는 <라이프 오브 파이>를 상영했다고 하는데, 그 또한 멋졌을 것이다. 



무주산골영화제를 200% 즐길 수 있는 세 가지 방법


1. 될 수 있으면 '함께'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것도 좋지만 무주산골영화제는 '함께' 가면 더욱 좋다. 우선 피크닉 매트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노는 것도 즐겁고, 이런저런 음식을 나눠 먹는 것도 좋다. 추억을 쌓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 친구, 연인, 가족과 함께 즐긴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평소 아이들을 볼 일이 없는 나로서는 아이들이 많은 장소에 가면 나도 모르게 예민해지는데,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밤에 <지구:놀라운 하루>를 볼 땐 옆자리에 있던 아이들의 리액션이 더해져 더욱 재미있었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누군가와 함께 기억한다면 매년 이 맘 때쯤이면 서로 마주 앉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2. 될 수 있으면 '가볍게'

무주산골영화제에 피크닉 매트가 빠질 순 없다. 한낮에 그늘을 찾아 피크닉 매트를 펴고 도시락을 먹거나, 야간 야외 상영 때 피크닉 위에 앉아 치킨과 함께 맥주를 마시는 것은 무주산골영화제에서 누릴 수 있는 최대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차가 없는 사람은 짐이 많아지면 부담이 된다. 그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피크닉 매트는 근처 편의점에서 구매(3,000원)했고, 실내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보러 가거나 다른 프로그램을 즐길 땐 등나무 운동장 초입에 있는 물품보관소를 이용했다. 만약 무거운 짐을 다 가지고 다녔더라면 이만큼 재미있진 않았을 텐데 친절한 물품보관소 스태프들 덕분에 가볍게 즐길 수 있었다. 


3. 될 수 있으면 '여유 있게'

거리가 꽤 있는 만큼 마음을 최대한 여유 있게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다. 무주산골영화제 측에서 마련한 셔틀을 이용하거나 셔틀 운영시간(서울에서 아침 10시 출발, 무주에서 저녁 8시 30분 출발)이 스케줄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수시로 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물론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무주에 가는 시외버스는 오후 2시 35분이 마지막 차라 부담스럽긴 하지만 무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시외버스는 오후 5시 45분이 마지막이니 컨디션에 따라 셔틀과 시외버스를 조합해 적절히 계획을 세우면 마음이 한결 편해질 것이다. 영화제를 즐길 때도 빡빡한 스케줄보다는 여유롭게 자연도 즐기고 공연도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는 것이 좋다.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보통 떠나고 싶을 땐 바다를 찾아가곤 했는데, 이번에 영화가 있는 산골을 찾아오니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바다의 파도소리만큼이나 바람에 잎사귀가 흔들리는 소리, 각종 풀벌레 소리와 새소리가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게다가 이 곳엔 내가 사랑하는 영화가 있었고, 편하게 그 영화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그저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이곳에서의 추억은 아주 부지런히 쌓여 있었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함께 본 영화와 휴대폰 전등에 의지해 풀밭을 지나 영화 상영장에서 숙소로 돌아가던 그 밤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혹시 무주산골영화제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가보지 못했거나 색다른 추억을 쌓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년엔 가볍게 떠날 용기를 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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