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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Dec 13. 2015

딸아 딸아, 개딸아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


부모님이 거의 20년 간 운영하던 가게를 부동산에 내놓으셨다. 아빠는 거의 3년 전부터 허리 통증이 심하셨고, 지난겨울엔 무릎 수술도 받으셔서 가족들 모두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부모님의 가게 정리가 딱히 놀랄 일은 아니다. 오히려 가족들은  하루빨리 일을 쉬시라고 권유했지만 정작 가게 정리를 미룬 건 아빠였다.


자식들 앞길이 구만리인데, 본인이 아프다고 일을 그만둘 순 없다는 것이 아빠의 지론이었다. 두 딸이 성인이 되어 돈을 벌기 시작했는데도 아빠는 여전히 맘을 놓지 못하셨다. 아예 가게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잠깐이라도 쉬는 건 어떠시냐는 자식들의 걱정 섞인 권유에도 무슨 일이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도 모르는데 가장이 돈을 벌지 않으면 집안이 어떻게 돌아가냐며 걱정에 걱정을 하셨다.


다행스럽게(?) 올해가 가고 나면 큰 딸은 결혼을 하고, 학업을 병행한다며 계약직과 프리랜서를 전전하던 둘째도 직장에 들어갔다. 내년 겨울이면  막내아들은 수능 시험을 끝내고, 대학 원서를 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아빠는 올해를 기점으로 가게를 정리해야겠다고 결심하셨다. 부동산에 가게를 내놓고, 누군가 가게를 보러 올 때마다 엄마와 아빠는 가게를 정리한다는 것을 실감하는 모양이었다. 괜히 헛헛한 마음에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는 둘째 딸에게 '김장 김치'를 배달한다는 이유로 평소엔 질색을 하던 서울 나들이를 자청하시기도 하셨다.


친구 같이 지내는 엄마와는 하루에 한 번 통화하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최근 들어 부쩍 횟수가 늘어난 안부 전화는 무뚝뚝하고 거칠던 아빠로부터 걸려왔다. '밥은 먹었는지', '옷은 따듯하게 입고 다니는지' 이 두 마디면 끝나는 통화를 통해 아빠가 얼마나 허전해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었다. 며칠 전에 상견례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결혼을 준비하는 큰 딸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헛헛함이 더해지는 느낌이신가 보다. 무슨 말만 하면 "왜, 너도 시집 가버리려고? 얼른 가라."라고 말씀하신다. 남자 친구도 없는 둘째 딸에게 이런 장난(?)을 치실 정도면 아빠의 마음도 여간 심란한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딸아 딸아, 개딸아.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성동일, 이일화 부부가 자주 쓰는 표현이다. 금지옥엽 귀하디 귀한 자식한테 '개딸'이라고 부른다. '개'는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억양으로 쓰인다. '개망함', '개털림' 등등. 아, 물론 '개귀염', '개예뻐', '개좋아' 등 최근 들어 매우 긍정적인 표현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개'는 비속어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기도 하고, '빛 좋은 개살구'란 말에서 알 수 있든 '가짜'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드라마에서 사용된 '개딸'의 의미를 살펴보면 개딸은 하나의 의미만을 가지지 않는다.


먼저, 거침없고 철없는 선머슴 같은 딸이란 의미로 부모의 속을 썩일 때 주로 '개딸'이란 표현을 쓴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거듭되면서 성동일의 '개딸'의 특성을 비교하는 기사 도 등장할 정도로 '개딸'은 한 성깔 하는 '딸'의 대명사가 되었다. 거친 말투와 헤드락 정도는 가벼운 애정 표현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응답하라의 '딸'들은 그야말로 '개딸'이라는 단어가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어울린다.

이미지 출처 : http://www.tvreport.co.kr/

다음으로 '개딸'은 우리네 부모들이 자식들을 귀여워하고 애처로워할 때 '똥강아지'라고 부르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쓰인다. 토니오빠와 같은 학교에 간다고 들떠서 짐을 싸는 시원에게 '개딸'이라며 눈을 흘기는 성동일의 말투엔 철없이 날뛰는 딸에 대한  미움보다는 부모 떠나 혼자 살아갈 자식에 대한 걱정과 염려가 더욱 크게 담겨 있다. 허리 디스크가 부모 탓이라며 발악하는 나정에게 '개딸'이라고 부르는 이일화의 눈빛 또한 한 성깔 하는 딸내미에 대한  원망보다는 아파서 내내 고생하는 딸에 대한 애처로움이 더욱 크다.


응답하라 1997에서 엘리트 검사로 성장한 윤윤제(서인국)는 성시원(정은지)에게 모두가 자신을 부모를 여읜 불쌍한 아이로 대할 때, 성동일과 이일화가 잘못된 행동에는 혼을 내고, 일상 속에서 다양한 태클을 걸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고 고백한다. 사회에서는 존경받는 '검사'지만, 집에서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욕을 한 바가지 들어먹는 그저 '자식'일 수밖에 없는 이 일상적인 상황이 윤제로 하여금 '부모'의 사랑을,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느끼게 한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도, 세계 제일의 부자라고 할지라도, 세계 최고의 미남, 미녀라고 할지라도 그들은 분명 사소한 습관 하나에 꾸사리를 먹어야 하는 누군가의 '자식'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에서 '개딸'은 성동일, 이일화 부부가 마주하는 가장 솔직한(그렇기 때문에 가끔 매우 격하고 극단적으로 보이는) 모습의 '딸',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중한 '딸'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 같다.



스무 살이 되면서 부모님은 내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 부모님은 본인들이 '고졸'이기 때문에, '대학교'의 삶은 잘  모를뿐더러 성인이 된 딸의 인생에  왈가왈부하는 것은 본인들의 교육관에 어긋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스무 살 이후 정말 난 거의 모든 선택을 혼자 해내야 했다. 종종 중요한 결정 앞에서 '여태껏 그랬듯, 네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부모님께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겪어내야 했던 대학생활, 사회생활의 어려움에 부모님은 그저 응원과 격려를 보낼 뿐이었다.


'선택'에 관여하지 않으시는 부모님이셨지만, 나의 '일상'에는 늘 관심이 많으셨다.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자고 다니는지, 어디가 아픈 건 아닌지, 학교든 직장이든 맡은 일은 잘 하고 있는지. 매일 같은 대답을 하는 딸에게 매일 새로운 것처럼 질문하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뒤섞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죄송한 마음을 걷어내기 위해 잠깐 변명을 하자면, 난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씻고 출근하기 바쁘고, 출근 후에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간다.  퇴근하고서는 학교에 가서 작성하던 페이퍼를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다. 부모님이 1순위로 묻는 질문인 '집밥을 잘 챙겨 먹는지'에 대한 대답은 '아침을 챙겨  먹기는커녕 일주일 넘게 냉장고 문 한 번을 열지 못했다.'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모님은 날 '개딸'이라 부르지 않지만, 부모님에게 난 예민한 상황에서 '성깔'을 죽이지 못하는 그저 부족한 자식이다. 내가 학문적, 사회적으로 어떤 성과를 이루던 부모에게는 그저 '밥'이나 잘 챙겨 먹고 다니면 다행인 '아이'가 된다. 물론 성장하는 모습에, 사회에서 자리 잡아 가는 모습에  대견해하시기도 하지만 그것은 부모님에게 크게 중요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가만히 지켜보면 부모님에겐 내가 까맣게 속을 태우고 부모 속에 생채기를 내더라도, 품 안에 끼고  이리저리 살펴야 안심이 되는 그런 존재인 것 같다. 성격이 좀(?) 지랄 맞아도 내 속으로 낳은 내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님은 나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따듯하게 안아주시기도 한다.

이미지 출처 : 박소정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따듯한 일이다. '자식'으로 살아간다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내가 가치 있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마법 같은 일이다. 요즘 부쩍 자신감이 사라진 나를 발견할 때마다 난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한껏 응석을 부리다가 괜히 별 것도 아닌 일에 꾸사리를 듣고 입이 저만치 나오지만, 그래도 엄마의 잔소리 덕에 몸과 마음을 짓누르던 걱정은 어느 정도 사라진다. 내가 밥만 잘 챙겨 먹어도 칭찬을 해주는 부모님 덕분에 한껏 들었던 자괴감이 어느 정도 사라지는 느낌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늘 서툴고 부족한 '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었는데, 부모님의 품 안에서 언제나 부족하고 모자란 '나' 덕분에 난 세상으로 나갈 용기를 얻는다. 부모님의 허한 마음을 알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벌써 몇 달째 집에 내려가지 못하고 있는 무정한 딸이고, 직장과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굳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칭얼칭얼 늘어놓고 괜한 짜증을 부리고 나서야 직성이 풀리는 '개딸'이지만 난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 죄송한 마음이지만 앞으로도 쭉 이런 '개딸'로 살아가고 싶다.



부모님이 이제 곧 제 2의 인생을 시작하신다. 아빠는 자식들 먹여 살린다고 어깨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으시고 엄마는 20여 년을 지속해 온 일 때문에 피로감이 가득 차 있으시다. 이렇게 생각하면 부모님이 일단 쉬실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지만, 누구보다 허전함을 느끼고 계실 부모님의 마음이 걱정된다. 나만 하더라도 집 보다 부모님의 가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연말이 지나면 더 이상 부모님의 '가게'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이 어색하고 믿어지지 않는데, 가게의 주인이셨던 부모님은 어떨까. 부모님 생각에 마음이 먹먹하다. 새삼 그들의 인생에 기대 살아온 나의 삶에 감사함을 느낀다.



주말이 가기 전에 전화를 드려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저녁은 꼬옥 밥을 지어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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