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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Dec 25. 2015

직장인 장래희망 '연애'

나는 일부가 아니라 전부이고 싶다.


딱 연애할 타이밍이네!



대학원에 입학하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극심한 외로움을 느꼈다. 살면서 '외로움'이라는 감정을 이렇게 본격적으로 느껴본 건 처음이었다. 향수병일까? 아니다. 학부시절부터 집에서 나와 기숙사를 전전하며 살았기 때문에 '향수병'을 느끼는 건 분명 아니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학원 입학 초기에는 대학원 사람들과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의 이야기를 공감해 줄 사람이 없었다. 수업을 마치고, 교수님 일까지 끝내고 나면 함께 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렇다. '외로움'은 거기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루는 연구실에서 교수님 일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선배 한 명이 대학원 생활은 어떤지 물었다. 무슨 정신이었는지, 난 "어쩐지 좀 외로운 것 빼고는 괜찮아요."라고 대답했다. 선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엄청 힘든 거네. 이제 연애할 타이밍이야." 선배는 소문난 사랑꾼이었다. 


스스로도 사랑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다고 말하고 다니는 사랑꾼. 그래서 난 모든 외로움을 '연인'의 부재로 돌려버리는 선배의 말을 그저  흘러들었다.


각종 생계형 알바와 학업을 병행하느라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입학 초기만큼 외롭진 않았다. 새로 이사 온 동네에 친구들이 생겼고,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친해진 작가들의 개인전, 단체전 오프닝만 전전해도 시간은 금세 흘렀다. 


홀로 외롭게 일하던 교수님 프로젝트를 나왔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일을 진행했다.  외롭기는커녕 나를 둘러싼 모든 관계들이 종종 버겁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루의 끝, 동네 친구와 가볍게 맥주 한 잔을 하기도 하고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하루하루는 빠르게 지나갔고, 심심하거나 외로운 감정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논문은 논문대로 일은 일대로 너무 바쁘고 연말이라 여기저기 부르는 곳도 많은 요즘, 문득 외로워졌다. 그것도 아주 많이.


대학원에 처음 들어갔을 때 느꼈던 '본격적인 외로움'이 또다시 나의 일상을 엄습해왔다. 본격적 외로움의 가장 큰 증상은 혼자가 외로워 누군가를 만났는데, 혼자 있을 때보다 더 큰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다. 밥을 먹다가도,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다가도, 친구들을 만나 웃고 떠들다가도 외로웠다. 그 외로움은 점점 더 날 외롭게 했다.


"오늘도 수고했다."는 말을 해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운 것도 아니고, 토닥거려줄 사람이 없어서도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눌 동네 친구도 있고, 퇴근 후 함께 술잔을 비워낼 동료들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채울 수 없는 공허함이 있다. 언제나 결정적일 때, 내 곁에는 사람이 없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극명하게 그어놓은 선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있지만, 사람들이 없다. 항상 따듯하게 친절하게 날 챙겨주는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에게 많은 걸 기대하는 건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일 일지도 모른다.


나는 일을 성취해내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프리랜서를 하거나, '나'의 작업을 할 땐 그 일이 나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외롭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생활을 하면서 분명하게 느끼는 어려움은 내가 이 조직의 일부, 아주 작은 점 같은 존재라는 점이다. 


매일 마주치는 사람들, 매일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그리고 매일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이 내 삶의 전부가 되기 어렵듯, 나도 그들 삶의  일부일뿐 단 한 번도 전부인 적이 없었다. 사실 전부일 필요도 없지만, 늘 '일부'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날 외롭게 만드는 것이다.


문득 사랑꾼 오빠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때는 너무 대수롭지 않게 흘러들었던 그 말이 선명히 떠올랐다.


모든 직장인들의 장래희망이 뭔 줄 알아?
 '연애'야.
그건 늘 어떤 일의, 누군가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는 거야.


그렇다. 난 이제 더 이상 어떤 일의, 누군가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가 되고 싶다. 직장에서 몸이 아픈 티를 내면 나약한 모습을 들키는 것 같고 다른 누군가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  병가는커녕 반차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다. 

하지만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투정을 부리는 것이 오히려 사랑스럽고 측은해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나에게 그런 일은 부모님 혹은 애인에게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님에게 그런 말을 하기엔 내가 너무 커버린 감이 있기 때문에, 난 연애를 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내 온 신경을 곤두 쓰며 챙겨주고 싶은 누군가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진 '나'의 삶, '나'의 일, '나'의 이야기만 중요했는데, 이제 다른 누군가의 삶에, 다른 누군가의 일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깊숙하게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더욱 마음의 여유를 만들 어떤 정당한 변명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놀라운 일이다.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 마음이 결국 타인에 대한 마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니.


지난 1년을 돌아보며, 나를 스쳐간 많은 사람들을 떠올린다. 너무 감사하고 따듯했던 사람들. 그렇지만 여전히 마음의 문을 꽁꽁 닫고, 상처받을까 봐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사랑'을 하고 싶다. 누군가의 '전부'가 될 수 있는 '연애'를 하고 싶다. 


오로지 '나'에 갇혀있던 시간들이 누군가에 의해 나눠지고, 확장되는 소중한 경험을 하고 싶다. 난 누군가의 전부가 되고 싶어 연애를 꿈꾸고, 전부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일련의 과정들을 모두 극복할 만큼의 '사랑'에 빠질 기막힌 행운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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