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크노크 Nov 16. 2015

미대를 나오면 뭐하나

프로젝트그룹 '3셋'   <위 내용과 같이 신청합니다>

미대 나오면 다 예술가인가요?

수업시간에 누군가 예술가의 범주 및 자격 요건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누구 하나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질문자는 한 번 더 물었다. "제가 정말 궁금해서 그런데, 미대 나오면 다 예술가인가요?"  가만있어보자, 예술가가 뭐하는 사람이었더라. 미대 안 나오면 예술가는 못 되는 건가? 수업의 구성원 중에 미대를 나온 사람은 5명, 미대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날 포함해서  3명뿐이었다. 수업은 MFA(Master of Fine Art) 과정으로 이 여덟 명 모두가  이러나저러나 '예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날 수는 없었다. 


미대를 나오고 작가로 오래 활동하신 현직 작가분이 입을 열었다. "네, 미대 나오면 예술가 됩니다. 질문자는 미대를 안 나왔지만, 대학원 학위 받고 나가시면 예술가 됩니다." 너무 단호하게 말해서 우리는 모두 당황했다.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교수님이 웃으시며 물으셨다. "미대 안 나오면 예술가 못 됩니까?" 단호하게 미대 나오면 예술가가 된다고 대답했던 작가분이 대답했다. "미대 안 나와도 예술가 됩니다. 그렇지만 미대 나오면 조금 더 빨리 됩니다." 



어찌 보면 완벽한 자기만족이다. 이기적이고 자기만족적인 이 행위가 때론 세상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오늘날 우리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기도 한다. 이 행위는 예술이다. 무엇 때문에 예술은 인류의 역사를 지탱하는 요소가 되었을까. 이 예술을 지속하는 예술가는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는가.


지난 9월 8일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는 80년대에 태어나고 자란 예술가(신병준, 정새해, 한다희)들이 모인 프로젝트 그룹 ‘3셋’의 전시가 열렸다. 예술가라는 직업군에 대한 고민,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에 도달하기 위한 여러 과정과 사회 제도들에 대한 여러 질문들을 함축했다는 이번 전시는 오래 머물기 좋은, 다양하게 해석하기 좋은 한 켠의 아늑한 다락방 같았다. 

천공용지처럼 구멍이 뚫린 커다란 백색 종이들이 전시장 가득 드리워져 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의 전시 공간에 도착했다. 천장에서부터 드리워진 하얗고 커다란 종이들이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모든 종이에는 그리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구멍들이 뚫려 있었고, 그 구멍들 사이로 안개와 빛이 넘나들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감상을 해야 하는 걸까. 잠시 망설여진다. 여느 전시장의 동선과 같이 좌측 벽면에서부터 우측 벽면으로 점점 중앙을 향해 가야 하는 걸까. 그냥 종이가 놓인 방향을 따라 걸어보기로 한다.

종이에 뚫린 구멍을 통해 빛이 오간다

입구에서부터 시작해 중앙으로 간다. 천장 중앙에 설치된 조명을 따라 걸음을 옮긴 것이다. 빛이 통과하는 구멍들, 그 구멍의 잔해는 바닥에 흐트러져 있다. 둥글고 하얀 종이 조각들을 잠시 응시한다. 하얀 종이들에 구멍이 뚫리지 않았더라면 전시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폐쇄증을 유발했을지도 모른다. 그 공간을 숨 쉬게 한 구멍의 잔해들은 바닥에 떨어져 방관된다. 문득 작가들이 제기한 의문이 떠오른다. 예술지원제도에서 낙오된 이들의 ‘예술’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실현되지 못한 채 문서 몇 장으로 평가되고 낙오된 그 많은 종이뭉치들은 예술의 장에 진입하지 못하고 경쟁력 상승에만 이바지 한 체 조용히 사라지고 마는 것일까. 


가만히 서 있다 보니 멜로디가 들려온다. 벽면으로 갈수록 선연 해지는 오르골 소리. 공간 벽면 가까이에 오르골 장치가 설치되어 있다. 손에 든 전시 팜플랫을 오르골에 넣어보라는 안내에 따라 상당히 길이감 있는 팜플랫을 오르골 장치에 넣고 손잡이를 돌려 본다. 작지만 선명한 사운드에 놀란다. 악보가 끝날 때까지 손잡이를 잡은 손은 저마다의 리듬에 맡겨진다. 빠르게 돌렸다가 다시 느리게 돌린다. 다른 악보는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해 입구에 비치된 다른 두 종류의 악보도 챙겨온다. 내가 만드는 소리가 전시장에 머문다.

천공용지처럼 제작된 팜플랫은 오르골의 악보가 된다

오르골은 구멍이 뚫린 천공 용지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천공 리더식 오르골이었다. 악보에 따라 다른 소리를 내는 천공 리더식 오르골은 입구에서 별 생각 없이 집어 든 천공 용지 형태의 팸플릿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습관처럼 들고 들어온 종이가 오르골을 연주하는 악보가 된다니 다른 악보의 연주도 듣고 싶어 다시 입구로 달려가 다른 종류의 악보도 챙겨오게 된다. 오르골을 설치하는 것보다 천공 용지의 구멍을 어떻게 얼마나 뚫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작품의 핵심이었다는 작가의 말에 '예술지원제도'라는 오르골을 연주하게 하는 것은 결국 선택 혹은 선택받지 못한 우리 시대의 예술작품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기실 예술지원제도는 소외되거나 형편이 어려운 예술가들을 돕기 위한 제도인 동시에, 예술지원'제도'라는 행정적인 절차에 걸맞은 '성과'를 도출할 수 있는 작품들을 발굴해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예술'이라는 모호한 영역에 있어서 '성과'는 굉장히 주관적인 지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작품 채택의 기준을 확언할 수 없지만 '성과'라는 지표 때문에 낙오할 수밖에 없는 작품들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위 내용과 같이 신청합니다>는 '예술가'로서의 삶을 살아가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들이 들죽날죽한 예술지원제도에 던지는 출사표인 동시에 낙오할 수밖에 없었던 지난 작품들에 대한 되묻기의 과정이라고 해석해 볼 수 있다. 

얼굴과 발 그리고 보이지 않는 몸통 

이 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는 누구일까? 작가들은 묻는다. 누가 그들이 예술가임을 인정해주며, 그런 인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예술가는 예술가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까? 커다랗고 하얀 종이에 뚫린 작은 구멍 사이로 안개와 빛이 오간다. 구멍 사이로 전체를 조망해본다. 오히려 또렷하고 분명한 시야가 펼쳐진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미대를 나온다고 다 예술가가 되는가?" 사회적인 관점에서 볼 때, '미대'라는 제도적인 절차는 예술가를 배출하는 가장 안전한 선택일 수 있겠다. 하지만 미대를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예술가가 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예술지원제도에서 선택을 받는다고 좋은 작품인가? 좋은 작품일 수 있다. 잠재력을 인정받고 작품의 일차적인 가치를  보장받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술지원제도에 낙오했다고 좋은 작품이 아닌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낙오한 작품들 덕분에 예술은 균형을 이루며, 빛과 안개를 통과시키는 숨구멍이 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위 내용과 같이 신청합니다>는 질문하는 예술가들을 만나는 전시였고, 질문을 함으로써 '예술가'라는 위치에 부합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였다. 예술, 예술가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사회 제도에 대한 '질문'은 아마도 예술가의 삶을 시작하는 젊은 작가들에게 좋은 출발점이 되어주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시를 잘못 읽어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