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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Nov 15. 2015

나는 시를 잘못 읽어왔다

김민정 <그녀가 처음 , 느끼기 시작했다>

# 첫 번째 수업 - 각주를 달아 읽는 시는 시가 아니다  


어린 시절, 시를 참 좋아했다. 짧기도 하거니와 시를 읽을 때마다 암호를 푸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아무리 다시 읽어도 도무지 하나의 글처럼 느껴지지 않는 시가 참 좋았다. 암호 해독자가 되어 시어를 탐색하는 즐거움은 중학생이 되고 완전히 사라졌다. 수업 시간에 시를 배웠다. 먼저 시를 외웠다. 운율을 찾아내고, 함축적 시어에 형광펜을 그었다. ‘나’라는 혹은 ‘임’이라는 시에 숨겨진 의미를 선생님이 불러주는 그대로 받아 적었다. 다시 시를 외웠다. 내가 읽은 시는 더 이상 시가 아니었다.  


수능에서 벗어나면서 다시 시가 좋아졌다. 대학에 들어가 폼을 잡으려고 읽었던 기형도의 『입속의 검은 잎』이나 유하의 시집은 멜랑꼴리 하면서도 ‘어른스러운’ 느낌을 주었고, 설레는 봄이 되면 이정하의 시를 읽었다. 각주를 달아 읽는 시가, 시가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 난 첫 번째 수업을 마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난 조금 더 자유롭고 싶었다. 조금 직설적 이어도, 조금 모자라더라도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수다스러운 시를 만나고 싶었다. 김민정의 시를 처음 보고 미친 듯이 웃었다. 시의 민망한 제목도 제목이지만 적나라한 묘사도 충격적이었다. 이게 ‘시’  맞나?라고 물음표를 붙인 순간 물음표는 나의 상상력을 간질이고, 자유롭게 그리고 강력하게 나의 마음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 두 번째 수업 - 시는 결코 엄숙하지 않다


  ....(중략) 
더러운 팬티를 수치스러워하기보다 
낡은 팬티를 구차해하기보다 
고무줄의 약해진 탄성을 걱정하는 데서부터 
시라는 것을 
나는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김민정의 두 번째 시집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의 뒷면에 나오는 시의 일부다. 이걸 보고 웃었다. 그리고 조금 놀랐다. 시의 도입에 등장하는 예식장 계단에서 어깨 너비로 다리를 벌린, 그 다리 사이로 팬티가 걸린 여자를 보고 김민정은 ‘팬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예식장의 그녀가 정신병자일까, 혹은 누가 보지는 않을까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고무줄의 약해진 탄성을 걱정한다는 김민정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히 성性적인 시어(그들은 시어라고 생각지 않는다.), 묘사 등이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 시를 읽고 한용운의 시를 찬양하며 누구보다 많은 각주를 달아주던 고등학교 문학Ⅰ선생님이 떠올랐다. 칠판에 한용운의 시를 모두 필사하고 알록달록 분필을 바꿔가며 은유, 비유, ‘임’의 의미, 시의 특징을 적어주시던  그분이 김민정의 「젖이라는 이름의 좆」을 수업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보았다. 김민정의 시는 일단 이런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고려해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이렇게 시에 대한 엄숙 주의를 웃음으로 걷어낸 후 두 번째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의 테마는 ‘안경’이다. 시인은 누구보다 안경이 많아야 한다. 세상을 다르게 볼 수 있는 안경. 김민정의 안경은 빨갛다. 그리고 검다. 때때로 순결한 하얀색이다.  김민정은 새로운 안경 쓰기에 열을 올린다. 「陰毛라는 이름의 陰謀」, 「젖이라는 이름의 좆」, 「아내라는 이름의 아, 네」, 「복수라는 이름의 악수」, 「시, 시, 비, 비」 등의 제목만 보더라도 그녀가 기존의 가장 ‘관습적인’ 혹은 ‘일상적인’ 무언가를 다르게 명명命名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종의 반항이며, 창의력이다. 그 반항 속에 사회에 대한 비판, 완전한 자유로의 갈망 혹은 좌절이 들어있다. 시를 처음 읽을 때, 서정적이라기보다 서사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콕콕 박힌 감정들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머리털 나 처음으로 돈 내고 다리 벌린 날, 소중한당신 산부인과에는 다행히 여의사만 둘이었다 어디 한번 볼까요? 자궁경부암 진단용 초음파 하면 가득 잘 익은 토마토의 속살이 비릿한 붉음으로  클로즈업되어 있었다 깨끗하네요, 그런데 자궁 모양이 좀 특이해요, 뾰족하다고나 할까 거웃 나 처음으로 내 아기집을 구경한 날, 어쩌다 뾰족한 자궁이 된 나는 콘헤드의 아이 하나 고깔 쓴 제 머리꼭지로 내 배를 콕콕 찌르는 상상만으로도 아 따가워 애라면 애초에 버르장머리를 싹둑 잘라버릴 참이었는데 제모 어떠세요? 내 아랫도리를 헤집다 말고 얼굴을 쳐든 여의사가 코끝까지 밀려 내려온 안경테를 추켜올리며 묻는 것이었다 레이저 기계 새로 들여 행사 중이에요. 겨드랑이 털과 패키지로 하세요, 휴가철인데 비키니 라인 신경 쓰셔야지요 머리털 나 처음으로 거창까지 상가에 조문 가는 날, 안성휴게소 화장실에 쪼그려 오줌을 누는데 문짝에 덕지덕지 이 많은 스티커는 누가 다 붙여놓은 것일까 여성 희소식, 당신도 아름다워질 수 있다! 여성 무모증 빈모증 수술하지 않고 완전 해결! 02-969-6688 마르크스도 이런 불평등은 미처 예상치 못했을 거다. 

‘나’의 산부인과 첫 경험수기 같은 서사 속에 음모陰毛에 대한 음모陰謀가 있다. 언뜻 사건의 나열 같지만 같은 여자로서 시 속 화자가 느꼈을 감정을 찾아 공감해본다. 여성들이 가장 싫어하는 병원은 산부인과라고 한다.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상상만으로도 싫다. 꾸역꾸역 벌린 다리 사이를 들여다보는 이가 여의사라는 것에 안도한 ‘나’는 처음 ‘나’의 아기집을 구경한다. 한 없이 낯설게 느껴지는 자궁은 ‘여자’로서의 ‘나’보다 ‘엄마’로서의 ‘나’를 새삼 진지하게 생각하게 한다. 이런 마음이 드는 것도 잠시, 여의사는 ‘제모’를 권한다. 


이제 그저 여성으로서의 여성이다. 비키니 라인을 관리해야 한다는 여의사의 말과 안성 휴게소에서 쭈그리고 앉아 볼일을 보다가 발견한 무모증 여성을 위한 희소식이  제모해야 하는 ‘나’의 음모陰毛 만큼이나 풍성하게 붙은 광고 스티커는 오직 sex로서의 여성만을 강조한다. 보이기 위한-도대체 누구에게- 음모는 방향을 잃는다. 수많은 남성을 유혹할 땐 음모를 제거하고, 한 남자와 뒤엉켜  섹스할 땐 음모가 필요한 것인가. ‘나’는 성性 앞에서 길을 잃고 헤매게 만드는 사회의 음모陰謀를 보며 불평등하다고 느낀다. 


물론 지상 최대의 로맨티시스트이자 이상주의자였던-인간이 잉여시간에는 자기를 계발하기 위해 독서를 할 것이라고 믿은- 마르크스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김민정의 ‘서사’가, 서사가 아닌 이유는 그 안에 꼼꼼하게 묶어둔 감정의 실마리가 서사를 따라가는 동안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풀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그게 무엇이든 익숙해져 버린다. 익숙함은 지루함을, 지루함은 나태를, 나태는 곧 죽음을 향해간다. 프로이트는 원래의 것으로 회기 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죽음 본능이라 명명命名한다. 


김민정은 그 나태의 안경을 벗어내고 더 자극적인 안경을 쓴다. 어쩌면 아무 안경도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날것 그대로의 인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인간을 원고지에 뭉텅뭉텅 올려놓는다.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는다. 다만, 검은 핏덩이가 흰 종이 위에서 글자의 구실을 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불편’하다고 말했던 그녀의 시 「젖이라는 이름의 좆」은 말 그대로 불편하다. 다듬어지지 않았고 다소 억지스럽기 까지 하다.  

네게 좆이 있다면
내겐 젖이 있다
그러니 과시하지 마라
유치하다면
시작은 다 너로부터 비롯함일지니
(중략) 

나는 이 시를 페미니즘이니, 남근 파괴주의 따위로 묶어두고 싶지 않다. 어차피 불편한 거 그냥 있는 그대로 자극받으면 안 되는 것일까. 과연 시인은 남녀평등을 주장하기 위해 이 시를 썼을까.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그저 그렇게 느꼈을 뿐이라고 믿어버렸다. 

...(중략)...
어쨌거나 우리 쥐면 한 손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빨면 한 입이라는 공통점
어쨌거나 우리 썰면 한 접시라는 공통점
(아, 난 유방암으로 한쪽 가슴을 도려냈다고! 이 지극한 공평, 이 아찔한 안도)  

친절하게 공통점을 나열하고 있지만, 절대 같을 수 없는 이 괴리를 커다란 침대에 벌러덩 누워 곱씹지 않았을까. ‘사랑’을 제외한 ‘육체적 관계’로서의 성性이 별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시인의 희망까지 느낄 수 있다면 나의 상상력은 지나친 것일까. 삭막함 속에서 혹은 좌절 속에서 재미를, 애환을, 사랑을 찾아내는 것으로 난 두 번째 수업을 마쳤다.  


#세 번째 수업- 시도 수다스러운 대화가 된다 


시에서 ‘형식’은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감정’의 최고 집합이라는 시에서 우리는 왜 그렇게 운율에, 형식에 집착하게 되는 것일까. 아마 그 집착의 시작은 ‘재미’가 아니었나 싶다. 김민정의 시는 다소 ‘글’ 위주의 빽빽한 느낌을 준다. 시 안에 물음도 있고 답도 있다. 쉼표도 있고 느낌표도 있다. 너와 나만 아는 비밀도 있고, 엿듣는 타인에게 던지는 힌트도 있다. 말 그대로 대화를 한다. 현실에서 무의식으로 자유롭게 넘나 든다. 그 경계 사이에 시가 있고, 운율이 있고, 마음의 자극제가 있다. 마치 칼럼 같은 느낌의 시 「어떤 절망」은 김민정 특유의 리듬감을 잘 보여준다.

강남 신세계백화점 1층 시세이도 매장에서 여승하나가 화장품을 고르고 있다 링클 케어 제품에 수분마스크를 죄다 늘어놓는 것까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자외선 차단 크림은 어찌 감당하려 그러실까 어디까지가 이마이고 어디부터가 뒤통수인지 스스로의 가늠 앞에 저 혼자 붉어진 매장 아가씨가 여승의 머리통에다 크림을 짜 발라주는데 목탁이 예 있었나 탁탁 소리 꽤나 야물어서 그 몇 번의 박자 속에 나도 헛기침 같은 웃음을 섞고 나는데 여승과 눈이 딱 마주친다 이봐요 아가씨, 혹시 이거 써봤어요? 정말 군살빠집디까? 바디 크리에이터를 쥐고 신용카드에 5 퍼센트 백화점 할인 쿠폰을 죄다 챙기는 것까지야 그렇다손 치더라도 구매 금액별로 상품권을 준다는 이벤트 할인장을 찾아 서둘러 매장을 빠져나가는 여승의 뒷내가 향이 아닌 샤넬 No.5 임을 아는 순간 시인이랍시고 나도 어쭙잖은 어떤 메모 중에 놓이는데 저기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오르는 여승 뒤로 봉투에 봉투를 든 채 끊을 줄 모르는 수다처럼 줄을 잇는 여자들이라니......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김수영 아저씨, 그러고 보니 이미 44년 전 다 해먹고 토끼셨구나 

도저히 중략하고는 실을 수 없는 시다. 숨 한 번 쉬지 않고 어제의 5분을 50분으로 늘여 말하는 우리네 엄마의 호흡이다. 목탁이 예 있었나 ‘탁’, 탁 소리가 꽤나 야물어서 그 몇 번의 박자 속에 나도 ‘헛’ 중간에 들어간 추임새는 서사의 흐름에도, 감정의 자극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강남의 백화점 시세이도 매장에서 고급 화장품을 사는 여승 그러면서도 5퍼센트 할인은 꼼꼼하게 챙기는 여승의 모습, 여승의 샤넬 향수 뒤로 줄줄이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는 여자들을 보며 ‘나’는 44년 전의 김수영 아저씨를 원망한다.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고, 졸렬과 수치가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는 걸, 44년 후의 ‘나’도 적을 줄 아는데, 김수영 아저씨는 이미 다 해먹고 토끼신 것이다. 아니, 여전히 그 절망이 계속되고 있음에 ‘나’는 지금 당장 토끼고 싶다. 


김민정 시의 운율은 ‘상호성’, ‘인과’가 있는 대화다. 굳이 시구를 맞추지 않아도, 대구법을 쓰려 애쓰지 않아도 친구와의 대화는, 가족과의 대화는, 연인과의 대화는 가장 안정된 호흡을 가지는 것처럼 김민정의 시도 자연스럽게, 그렇지만 개성 있게 이야기를 건넨다. 대화의 소재도 물론 어렵지 않다. 한없이 관념적인 사랑을 읊조리지도 않고, 회한을, 삶을, 조국을 부르짖지도 않는다. 


단지 뒤엉킨 남녀의 몸을, 여승이 머리까지 바르는 선크림을, 산부인과에서 엉거주춤 벌린 두 다리를  이야기한다. 마치 잠이 오지 않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는 중년의 부부처럼, 시덥지 않은 이야기로  두세 시간을 금세 채우는 수다쟁이 친구처럼 혹은 날카로운 공격자처럼 이야기를 건넨다. 심드렁하게, 담담하게, 혹은 시답게.  


#네 번째 수업 - 시는 이미지다  


숨길수록 궁금하고, 살짝 보일수록 확 벗겨버리고 싶은 심리는 누구나 같은 것이다. 한 번 엿보기 시작하면 더 과감한 부분까지 ‘목격’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차라리 ‘볼 테면 봐라’라고 내놓는 것이 새삼 건전하게 느껴진다. 시는 이미지다. 단어 하나로 여러 가지를 떠올린다. 김민정이 시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자극적이다. 숨기지도, 살짝만 맛을 보게 하지도 않는다. 애초부터 벗어버리고, 내숭도 떨지 않고 이미지를 드러낸다. 혹자는 이 직구에 당황하며 시가 아니라고 한다. 


그렇지만, 김민정이 대놓고 드러낸 이미지 안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이미지가 생성된다는 것이 그녀 작품의 특징이다. 가랑이 사이에 팬티를 걸친 여자는 탄성이 잃은 고무줄을, 여승의 반질반질 대머리에서 풍성하게 자라난 욕망을, 제거할 수도, 심을 수도 없는 여성의 음모陰毛에서 사회의 음모陰謀를 줄줄이 연상시킨다. 그 이미지 안에 또 꼬리를 물고 다른 이미지,  이미지마다 알알이 박힌 감정, 그리고 이 모든 것이 ‘시’라는 집합의 원소가 된다. 


김민정은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첫 시집에서는 정말 경계 없이 썼지만 두 번째 시집에서는 이를 설명할 장치들을 끊임없이 마련했다고 했다. 그녀가 만든 장치 덕분에 사람들은 그녀가 내보인 파격적 시를 시로 서서히 받아들인다. 마음대로 하되, 읽는 이의 마음도 고려한 것이다. 나는 시원스럽게 섹스며, 젖이며, 좆을 이야기하는 그녀가 멋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음흉스럽게 독자를 자신의 감정으로 안내할 장치들을 마련하는 그녀가 섹시하다고 생각한다.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게 사회의 풍경을 비판하는 그녀가 세련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시를 읽으며 호탕하게 웃어버린 내가 기특하다.


아침 7시 15분 졸린 눈을 비빈 후, 화장실에 앉아 힘을 주며 김민정의 작품을 읽는다. 졸다가 자칫 몇 행을 건너뛸 수도 있다. 다시 몇 줄 앞으로 가서 읽는다. 퐁! 시원한 배변의 쾌락과 함께 그녀의 시가 완성된다. 



*이미지 출처 : blog.ninefacto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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