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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Nov 08. 2015

다시 읽는 <나이트오브컵스>

'인생'이라는 텍스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

창작의 자유는 존중될 필요가 있고, 창작자는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평가 또한 존중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창작물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으며, 그 해석의 자유 속에서 독자들은 창작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한다.


다시-읽기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다
 -롤랑 바르트 『S/Z』


서론이 길었다. 오늘은 영화 <나이트오브컵스Knight of Cups>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컵의 기사' 어색하면서도 어딘지 익숙한 이 단어는  '타로카드'에서 쓰인다. 일반적으로 관능, 수용, 책임을 의미하고, 연애운에서는 종종 백마 탄 왕자를 뜻하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스스로에게 '위로'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즐겨하는 나는 타로카드를 '운'을 점치기 위해  보기보다 타로카드를 해석하는 이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보곤 한다. 타로카드야 말로,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다양한 해석의 열쇠가 되는 창작의 모티브라고 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나이트오브컵스>

영화 <나이트오브컵스>는 타로카드가 보는 이의 상황에 따라,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는 것처럼 '한 남자의 인생'이라는 카드를 내밀며 보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보통 영화들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개연성 있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몇 장의 타로카드를 제시되고, 관객 스스로가 등장인물의 행위 그리고 그 행위의 맥락을 해석하도록 한다. (물론 이 부분은 강렬한 내러티브나 스펙터클에 익숙한 관객들로 하여금 졸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가 단순히 '내러티브'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 영상미 등 다양한 표현의 범위를 수용하는 복합 매체라는 점에서 <나이트오브컵스>가 가진 매력은 빛을 발한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나이트오브컵스>

내가 기억하는 대사는 딱 세 마디다. "아들아", "일부를 잃었다고, 모든 것을 잃는 것은 아니란다." 그리고 "일어나요." 공교롭게도 이 세 마디로 영화 <나이트오브컵스>의 줄거리를 설명할 수 있다. 무언가를 강하게 열망하지만, 그것이 무엇인 줄 모르고 인생을 살아가는 작가 '릭', 릭은 어린 시절 아빠가 해줬던 왕자의 이야기를 기억한다. 릭의 아버지는 음성으로 등장해 릭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이미지 출처 : 영화 <나이트오브컵스>

릭은 큰 혼란 속에 있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릭은 새로운 혼란 속에 빠진다. 사랑을 하며 행복과 위안을 얻지만, 그 또한 새로운 혼란으로 이어진다. 고통 속에서 릭은 쉽게 현실을 외면한다. 동시에 그의 내면은 꿈에서 깨 현실로 돌아오라고 속삭인다.


영화 중간중간, '릭'이라는 인생에 대한 타로카드는 던져진다. 고통과 심판과 죽음 그리고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순간 찾아오는 진정한 자유. 관객들은 타로카드를 열쇠 삼아 릭의 삶 속으로 다가간다. 영상은 릭의 꿈을 몽환적이고 아름답게 하지만 어쩐지 차갑게 그려낸다. 영화 전반에 들리는 사운드는 관객들을 더 강렬하게 릭의  꿈속으로  흡입시킨다. 좀처럼 깰 수 없는 릭의  꿈속에서 우리는 인생이라는 텍스트를 조금 더 세밀하게 읽어내리기 시작한다.


아름다운 영상과 몽환적인 사운드에 쓰여진 '인생'을 읽어볼 수 있는 영화 <나이트오브컵스>  어떻게 읽어내리 든 상관없다. 인생이란 텍스트이기 때문에 여러 갈래로 읽히고 해석되는 것이 당연하다.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해석이 단 하나라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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