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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16. 2015

빨간 구두의 욕망

다시 읽는 동화  <빨간 구두>

바람이 차다. 아직 낮은 따듯한데, 태양을 벗어난 음지에 들어서면 몸에 으슬으슬 찬기운이 든다. 밤에는 서늘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된다. 10월의 중반, 어느 덧 가을의 끝에 서 있다. 금세 겨울이 올 것이다.


삶에도 계절이 있다면, 내게 '겨울'은 참회의 계절이다. 파릇파릇함도, 싱그러움도, 무성함도, 아름다움도 없이 그저 '인내'만이 남은 계절. 삶의 겨울을 기다리면서 동화 한 편을 떠올렸다. 바로 '빨간 구두'다.


느닷없다 생각할지 모르지만, <빨간 구두>는 참회의 계절에 나를 투영시켜 생각해보기 참 좋은 동화다. 다들 <빨간 구두>는 알겠지만, 그 주인공 이름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빨간 구두> 주인공은 '카렌'이다. 어릴 적 읽었던 동화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욕망을 가진 인간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카렌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카렌은 무척 가난해서 늘 맨발로 다녔다. 어느 날, 그녀가 가여웠던 이웃이 그녀를 위해 빨간 천으로 신발을 만들어준다. 신발이  하나뿐이던 카렌은 어머니의 장례식에서도 그 신발을 신는다. 지나가던 노파는 그런 그녀를 가엽게 여겨 집으로 데려와 좋은 옷, 신발을 사주고 교육도 시키며 보살핀다. 어느 날 카렌은 지나가던 공주의 행렬을 보게 된다. 그리고 공주가 신었던 아름다운 빨간 구두가 갖고 싶어 눈이 어두워진 노파를 속여 빨간 구두를 사서 신는다. 구두가 맘에 들었던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고 성당에 간다. 사람들은 성당과 어울리지 않는 구두라며 카렌을 타이른다. 교회 문 앞의 붉은 수염을 한 상이용사는 카렌의 구두를 닦는 척 하며 저주를 내린다. 카렌은 점점 기도를 잊어가고, 사람들의 조언도 무시한다. 노파도 카렌에게 빨간 구두를 신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카렌은 빨간 구두를 신고 무도회장에 가서 춤을 춘다. 그리고 그 춤을 스스로 멈추지 못한다. 계속 춤을 추며 성을 지나, 교회를 지나, 숲으로 가던 카렌은 목수에게 자신의 다리를 잘라달라고 한다. 그리고 참회한다. 카렌이 진정으로 참회하자 하늘이 감동하여 하늘문이 열리고 천국의 빛이 카렌을 인도한다.


사람들은 왜 카렌에게 빨간 구두를 신지 말라고 당부했을까? 동화를 해석할 때는 어느 정도 상징적인 차원에서 접근해 볼 필요가 있다. 빨간색은 자극적이며, 도발적인 이미지를 가진다. 성(sexual)적인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카렌이 신었던 것은 그냥 구두가 아니라 댄싱슈즈로 춤을 출 때 신는 신발이었다. 종교적 관습이 막강했던 시기에 엄숙하고 성스러운 성당에서 카렌의 빨간 구두는 분명 '거슬리는 존재'였을 것이다. 성당 앞에 살던 붉은 수염을 가진 상이용사는 카렌의 구두를 닦아주는 척 하며 저주까지 내린다. 상이용사의 붉은 수염은 '경고' 빨간색의 또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추고 싶은 만큼 춤을 추어라, 너의 그 빨간 구두를 신고 춤을 추어라.
네 몸이 창백하고 싸늘해질 때까지. 네 피부가 오그라들어 뼈, 가죽만 남을 때까지.

그렇다면 카렌은 왜 이런 저주를 받으면서까지 빨간 구두를 고집했던 것일까? 카렌의 유년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그녀의 고집을 이해할 수 있다. 너무 가난해서 자신의 것이라곤 하나도 없던 그녀에게 이웃이 만들어 준 빨간 천의 신발은 처음으로 가져본 '자신'의 물건이었다. 노파의 눈에 띄었던 것도 검은 장례 행렬을 따라가던 카렌의 빨간 구두 때문이었다. 카렌에게 빨간 구두는 처음으로 실현된 그녀의 욕망이었다. 그런 그녀의 욕망은 노파의 보살핌으로 잠잠해져 있다가 공주가 신었던 빨간 구두를 보고 되살아난다. 온전한 '나'의 것, 그리고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에 대한 욕망은 가난하고 보잘 것 없던 카렌의 마음을 활활 타오르게 만든다. 


예로부터 '신발'은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결혼식 때 반지 대신 신발을 주기도 했었다고 하니, 신발은 신체적으로 속박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기도 한다. 카렌의 몸은 이미 성숙해 여성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나이와 마음은 아직 노파의, 마을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이다. 카렌의 빨간 구두는 마음보다 먼저 성숙해져 버린 몸과 거기에서 오는 매력을 뽐내고 싶어 하는 카렌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자신을 표출하고, 사회적 가치에 부합하지 않는 행동을 지속하던 카렌은 결국 스스로 다리를 잘라낼 만큼 큰 상처를 입힌다. 카렌은 참회한다. 참회하고 인정함으로써 속죄를 받고 자유를 얻는다. 


동화라고 하기엔 너무 슬프고 잔인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표출하는 것이, 나의 '욕망'을 가지는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저주를 받고, 손가락질을 받고, 다리까지 절단해야 하나 싶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욕망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게 세월을 낭비하는 일로 치부되지 않는가. 물음표를 들고 '나'라는 얼굴의 카렌을 마주한다. 나는 무척 치명적이고 위험하지만 매력적이어서 절대 어떤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는 '빨간 구두'를 가지고 있는가? 의 질문보다는 시간과 인내를 통해서만 얻어질 수 있는 그 무언가를 조금 더 빨리 얻기 위해 종종 거리며 위험한 모험을 하고 있진 않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참회의 계절이다. 내가 관여하는 모든 것에서 딱 열 발자국만 물러나 본다. 내가 보인다. 


욕망하는 것이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난 늘 꿈을 꾸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가질 수 없는 어떤 것, 시간과 인내가 필요한 어떤 것에 대한 잘못된 욕망의 표출은 경계하고 싶다. 열심히 살지만, 순리대로 살고 싶다. 젊음이 아깝지 않냐는 질문에 나는 기꺼이 젊음이 주는 여유를 만끽한다고 말하고 싶다. 나는 젊어서 바빴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서도 늘 바쁘고 여유가 없는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기 때문이다. 되도록이면 난 적절한 장소에서 최고의 타이밍에 매력적인 빨간 구두를 꺼내 신고 싶다. 그리고 우아하고 매혹적인 춤을 추며 무대를 누리고 싶다. 


당신도 늘  마음속의 빨간 구두를 빛나게 닦아두길 바란다. 그리고 아주 적절한 장소에서, 기막힌 타이밍에 그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빨간 구두를 신고 무대를 누비길 바란다. 누구도 저주하지 않고, 누구도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다. 카렌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던 공주의 당당한 워킹처럼 말이다. 



*커버 사진 출처: www.theawl.com

*동화 해석 : <옛 이야기의 매력>, 사랑하는 마리아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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