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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Nov 21. 2015

블랙박스 안 화이트 큐브

로베르 르빠주 <바늘과 아편>을 보고 

아니, 르빠지를 모른다고?!

어떤 분야든 당대에 알아야 할 '대가'들이 있다. 이전 시대의 대가들을 거슬러 올라가면 해당 분야의 역사를 마주할 수 있듯, 업계든 학계든 당대에 알아야 할 대가들은 언제 어디에나 있기 마련이다. 나는 전공을 쉽게 바꾸는 편이다. 사실 난 '바꾼다'기 보다는 새로운 걸 추가로 더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남들 눈에는 자주 바꾸는 걸로 보인다고 하니, 아무래도  상관없는 내가 많이 '바꾼 셈' 치자.


 2013년 미술 하는 사람들이랑 어울리면서 미술학원 근처도 안 가본 내가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들을  인터뷰하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우왕좌왕 힘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올해는 어쩌다 보니 공연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한 명이다.)과 어울리게 되어 2년 전의 전철을 밟게 되어 버렸다. 다니던 직장 일과도 애매하게 엮여 있는 터라 '공연'을 아예 외면하기도 어려운 상황. 자꾸 내게 무용에 대해, 연극에 대해 혹은 공연계의 숙명에 대해 조잘거리는 고마운 직장 선배의 이야기를 흘려 듣는 척 하면서 대화가 끝나기 무섭게 이야기 나왔던 작품을 찾아보거나 기사를 검색해보곤 했다. 왜? 재미있으니깐! 해당 분야를 뒤흔드는 당대의 대가를 알든 모르든 일단 재미있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미지 출처 : https://www.york.ac.uk

공연장을 우리는 '블랙박스'라고 표현한다. 갤러리를 '화이트 큐브'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난 그 컴컴한 공연장이 참 좋다. 영화관도 그렇고. 사실 화이트 큐브의 고고함도 좋아하긴 하지만, 편안함을 느끼는 건 아무래도 어두운 블랙박스다. 캄캄한 블랙박스, 무대 위를 환하게 비추는 핀 조명 그리고 그 무대를 장악하는 배우의 연기는 나의 시선을 완전히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를 완성하기 위해 백스테이지에서 애를 쓰는 다양한 직군을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무대 그리고 무대 뒤의 사람들 나아가 공연 전체에 대한 애정이 상승하는 느낌이 들었다. 막상 관심이 생기자 이런 저런 경로로 티켓을 얻거나 좋은 공연에 대한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무지했던 나는 블랙박스에서의 경험치를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술자리에서 직장 선배와 그날 동석한 무대 연출님이 르빠지(?) 어쩌고 저쩌고 이런 이야기를 했다. 사람 이름인 것 같아 그가 누구인지 물었다. 둘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아니, 르빠지를 모른다고?!" 외치며 날 쳐다 보았다. 난 소주 한 잔을 마시며 담담한 말투로 답했다. "응, 몰라. 유명한 사람이야?" 모를 땐 모른다고 하는 게 상책이다. 어쭙잖게 알아듣는 척 했다간 혼돈의 소용돌이에 금세 빠져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물론 얼큰하게 취해 있던 직장 선배는 "유튜브에서 검색해 봐. 어떻게 르빠지를 몰라!"라고만 답했다. 그래, 원래 검색은 나의 몫이었으니 이름 전체를 알려달라고 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로버트 르빠지'라는 이름을 검색했다. 하지만 이게 무엇인가! 검색 결과가 없었다. 

침착하게 단어를 요리조리 바꿔보았더니 연관 검색어에 '로베르 르빠주'라는 이름이 나왔다. 르빠주... 르빠주?! 아는 사람이었다. 내가 좋아하던 할아버지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실황 영상으로 보여 주신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를 연출한 사람이었다. 그 날 본 <니벨룽의 반지> 연출 중 최고를 외쳤던 그 작품의 연출가! 헛웃음이 났다. 르빠지나 르빠주나.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 자신이 웃겼다. 야호! 꼭 알아야 된다는 그 남자의 이름 정도는 나도 알고 있었다. 기쁜 마음으로 검색된 페이지를 보니 이 엄청 유명한 연출가의 내한 소식이 있었다. LG 아트센터에서 그의 작품 <바늘과 아편>을 한다는데, 공연일은 내가 검색한 날로부터 2주 뒤였다. 실황 영상도 내 가슴을 뛰게 했는데, 직접 그 연출을 보게 된다면 어떤 느낌일까 싶어 부랴부랴 티켓을 예매하러 사이트에 들어갔다. 역시나! 유명한 사람이었다. 전석 매진. 이틀에 걸쳐 겨우 2층 사이드 자리 하나를  예매했다. 

달력에 표시까지 해두고 손꼽아 기다리던 공연 당일. 3월부터 조기 예매를 해 둔 언니가 개인전 준비 때문에 바빠  <바늘과 아편> 티켓을 양도한다고 SNS에 글을 올렸다. 못 보러 가서 아쉽겠다는 말을 전하려고 메시지를 보냈다. 여차저차 언니의 티켓 좌석이 R석이란다. 더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언니에게 티켓 양도를 부탁했더니 언니가 흔쾌히 양도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무척 좋은 자리에 앉아 <바늘과 아편>을 감상하게 되었다. 



로베르 르빠주 연출의 <바늘과 아편>  - 

블랙박스에서 발견한 화이트 큐브, 그 안에 숨 쉬는 블랙박스 

로베르 르빠주(Robert Lepage)는 1957년 영어와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퀘벡에서 태어났다. 르빠주는 일찍부터 연극에 관심을 보여 퀘벡의 연극예술학교에서 본격적인 연극 공부를 시작하였다. 1978년 이 학교를 졸업한 후 파리의 알랭 크납(Alain  Knapp)의 연극학교에서 수학하고 1980년 다시 퀘벡으로 돌아가 곧바로 극단 생활을 시작한다. 1984년 <순환>을 연출하여 그 역량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세계적으로 순회공연을 하며 이름을 알렸다. 1994년 엑스 마키나(Ex Machina)라는 자신의 극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다매체 연극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1997년에는 퀘벡의 한 폐쇄된 소방서에 자리 잡는다. 르빠주는 실험적이고 독특한 공연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다매체에 대한 풍부한 탐구와 고민은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의 접목으로 이어졌다.  <바늘과 아편>은 로베르 르빠주의 두 번째 솔로 작품으로 34세의 나이에 세계 연극계가 주목하는 연출가로 거듭나게 만든 작품이다. <바늘과 아편>은 각 예술적 연극 연출과 르빠주의 자전적인 시나리오 그리고 영어와 불어를 넘나들며 언어의 경계를 오히려 예술의 기법으로 풀어낸다. 

<바늘과 아편>은 프랑스의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장 콕토와 미국의 유명한 재즈 트럼펫터 마일즈 데이비스, 그리고 캐나다 출신의 배우 로베르, 이렇게 세 남자의 사랑과 중독, 예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랑을 잃은 세 남자는 사랑의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술과 약물에 중독되어 간다. 시대는 1989년, 배우 로베르는 프랑스 샹송 가수 줄리엣 그레코와 마일즈 데이비스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녹음을 위해 파리에 와 있다. 이야기는 로베르가 마일즈 데이비스가 약 40여 년 전에 묵었던 호텔방에 투숙하면서 시작된다. 로베르의 이야기인지, 이전에 이 호텔방에서 투숙했다던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야기인지, 실연에 빠졌다는 장 콕토 감독의 이야기인지 잘 구별할 수 없었지만 사랑을 잃고  실연당한 세 남자가 실의에 빠져 약물에 중독되어 가고,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배우의 연기에서 비롯되는 심리묘사 때문이기도 하지만, 극이 전개되는 대형 큐브에 표현된 심리적 공간 때문에 주인공들이 겪게 되는 감정에 관객은 좀 더 몰입하게 된다.  

이미지 출처 : LG아트센터 제공 <바늘과 아편>

이야기의 전개는 어두운 무대에 설치된 대형 큐브(약 2M 남짓의 정육면체를 비스듬히 자른 모양) 안에서 이루어진다. 이야기의 후반 큐브 밖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그 비중이 크지 않아 큐브를 극의 중심 공간으로 볼 수 있다. 대형 큐브는 마치 미술관을 연상시키는 화이트 큐브다. 큐브에는 6~8개 정도의 문과 벽면으로 부착시켜 감춘 소품들이 설치되어 있다. 프로젝션 맵핑을 통해 유동적으로 극의 배경을 변경하고, 벽면 안쪽으로 부착된 소품들을 큐브의 회전에 따라 적절히 배치하면서 극 안의 시간과 공간을 효율적으로 넘나 든다. 마치 화이트 큐브라는 공간이 전시의 주제에 따라, 참여 작가의 작품에 따라 완전히 공간 분위기를 탈바꿈하듯 르빠주가 연출한 무대는 막에 따라 다른 분위기를 연출하며 극적인 효과를 부각한다. 

이미지 출처 : LG 아트센터 제공 <바늘과 아편>

로베르 르빠주의 연극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시각적 효과'와 과도하게 사용하면 자칫 촌스러울 수 있는 '테크놀로지'의 유연한 연출이다. 거대한 큐브가 회전할 때마다 블랙박스는 시간과 공간을 넘나 든다. 그리고 이 같은 맥락에서 르빠주는 무대 위의 '시각 예술가'라는 애칭은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플롯 중심의 연극에서 이미지를 중심으로 관객을 압도하는 르빠주의 연출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연극에 일가견이 있는 것도 많은 작품을 보러 다닌 것도 아니지만, 대형 큐브를 활용한 무대 연출은 그 자체만으로도 입을 쩍벌어지게 했다. 블랙박스 안의 화이트 큐브를, 화이트 큐브 안에서 벌어지는 블랙박스의 연출을 보고 있자니,  <바늘과 아편>은 블랙박스 특유의 폐쇄성과 화이트 큐브 특유의 가변성이 효율적으로 융합된 작품이 아닐까 싶었다. 

이미지 출처 : SBS 제공 <바늘과 아편>

오늘날 미디어아트와 같은 장르에서 '테크놀로지'는 중요한 표현 수단으로 다양하게 실험되지만 신기한 테크놀로지로부터 기인한 스펙터클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작품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얼마나 잘 녹여내는가에 있다. 최근 융복합 콘텐츠를 소재로 작품들이 많이 소개된다. 사실 융복합 콘텐츠의 정의 자체도 불분명하지만 단순히 장르 간 결합을 이루는 것이 융복합 콘텐츠의 목적은 아닐 것이다. <바늘과 아편>은 관객을 압도하는 분위기인 블랙박스 안에 회전하는 화이트 큐브를 설치하여 시간, 공간 그리고 심리묘사까지 극적으로 넘나드는 작품으로 블랙박스의 장점과 화이트 큐브의 장점이 잘 어울려진 융복합 콘텐츠가 아닐까 싶다. 


<바늘과 아편>을 보면서 5월에 봤던 떼아뜨로 시네마의 <사랑의 역사>를 떠올렸다. 애니메이션과 연극 그리고 영화적 요소가 예술적으로 결합된 작품이었다. 아직 연극을, 연출을 모르지만 이 두 작품을 통해 연극의 변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었고, 앞으로의 작품 형태를 기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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