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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Dec 27. 2015

나의 친구에게

내 인생 애니메이션 <Mary and Max>

연말이다. 한참 사람들을 많이 만날 때.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을 볼 수 있는 때.


안타깝게도 연말이 될 때마다 내 마음은 고장이 난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형식적으로 변해가는 모임들에 지루함을 느낀다. 반가운 마음을 무시할 수 없지만, 어김없이 찾아오는 알 수 없는 피로감에 일찍 집으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마음이 고장 난 게 분명하다. 내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인데, 오랜만에 만나 무척 반가운 사람들인데 왜 난 여전히 싱숭생숭 허전한 마음이 드는 걸까. 철부지 아이처럼 작은 말 한 마디에 서운함을 느끼고 별 일 아닌 일에 울컥해버리는 시기, 바로 연말이다.


연말이 되면, 경건한 마음으로 찾아보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바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Mary and Max> 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눈물을 흘리게 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월이 지날수록 흐르는 눈물의 양은 많아진다. 모든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들 때,  타인은커녕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조차 버거울 때 난 늘 <Mary and Max>를 본다. 마음이 따듯해진다. 그리고 다시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가만히 살펴보면 동화의 주인공들은 늘 어딘가 부족하다. 우선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고, 백설공주도 계모에게 미움을 받았더랬다. 인어공주는 인간을 사랑했지만 목소리를 잃고야 물 밖에 나올 수 있었고, 헨젤과 그레텔은 계모로부터  버림받은 가여운 아이들이었다. 빨간 구두도 부모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자라 온 아이였고, 미운 오리 새끼는 형제, 친구들과 다른 모습으로 유년기를 보내며 시련을 겪었다.


<Mary and Max>에 나오는 주인공 Mary와 Max도 타인이 보기에는 어딘가 부족한 아니 어쩌면 비정상적인 캐릭터다. 우선 Mary는 오스트레일리아에 사는 8살 소녀다. 무뚝뚝하고 우울한 블루 칼라 아빠에, 알코올 홀릭으로 도벽이 있는 엄마를 뒀다. Mary는 못생긴 외모로 친구들에게 무시를 당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다. 호기심 많은 Mary는 편지봉투를 훔치기 위해 우체국에 간 엄마를  따라나섰다가 전화번호부의 일부를 찢어오게 된다. 그리고 한 명을 지목해 무작정 편지를 쓴다. 편지엔 조잘조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리고 묻는다. "아이는 어떻게 생기는 거죠?"

황당무계한 Mary의 편지를 받는 것은 뉴욕에 사는 중년 남성 Max다. Max는 초콜릿 샌드위치에 중독된 고도비만이다. 비만이라는 육체적인 병보다 Max의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정신적인 병, 아스퍼거 증후군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대인관계에 큰 어려움을 느끼는 병으로 타인과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자신이 관심을 가지는 한 분야에만 몰입하는 특징을 보인다. 감정 자체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경우가 많다.


 Max는 감정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하고, 바른 길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외관이나, 병으로 인한 많은 부분이 Max를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8살 이국 소녀의 황당한 편지를 받은 Max는 한 마디로 '혼란스럽다' 누군가의 일상 이야기와 고민이 Max에게는 그 어떤 숙제보다 어렵게 느껴진다. 고통스러우면 그냥 무시해도 될 것을 Max는 답장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한참을 고민한다.


Mary는 Max의 편지를 기다린다. 비로소 Max의 편지를 받았을 때, Mary는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처럼 벅차다. Mary는 무척 친애하는(Dear, Dear, Dear) Max에게 초콜릿도 보내고, 자신의 마음 가득 담긴 감정 꾸러미도 함께 보낸다.  어린아이다운 발상에, 쾌활하기까지 한 말투지만 편지의 내용은 한 없이 어둡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코올 홀릭인 엄마와 자신을 둘러싼 암울한 세계에 대한 질문을 아주 천진하게 늘어놓는다. Max는 감정을 건드리는 Mary의 질문들에  힘겨워한다.

미숙한 두 사람이 만나 하나의 견고한 우정을 쌓는다. Mary는 어렸기 때문에 성장한다. 키도, 마음도 모두 자란다. Max는 이미 다 커버린 어른이지만 성장한다.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이 자란다. 둘은 서로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고받는다. Max는 늘 타인에게 상처받는 Mary에게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라'는 말을 해주며, Mary가 온전히 자신을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돕는다. Mary는 자신의 눈물을 병에 담아주며 인간이 느끼는 여러 감정들에 대해 알려준다.

Mary는 자라서 심리학과에 진학한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Max에 대한 순수한 관심으로 아스퍼거 증후군에 관한 연구를 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낸다. Mary의 연구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Mary는 이를 계기로 자신을, 자신의 연구를 사랑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Mary의 책을 받아본 Max는 Mary가 자신의 약점을 이용했다고 착각하며 심하게 분노한다. Mary만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진정한 친구라고 여겼기에 자신의 병을 만천하에 알리며 '연구 대상'으로 삼은 것에 무척 화가 난 것이다. Mary는 자신의 책을 모두 불태워버리고 Max에게 진심을 다해 사과하지만 두 사람의 견고한 우정은 힘 없이 무너지고 만다.


Max의 분노가 지속되자 Mary의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진다. 남편은 새로운 사랑을 찾아 자신의 곁을 떠나고, 오랜 친구를 잃게 된 상실감에 삶의 모든 것에 재미를 잃는다. 그리고 점점 자신이 경계하던 엄마의 모습, 알코올 홀릭으로 변해간다. 삶의 의미를 잃고 죽으려고 하는 순간, Mary는 Max로부터  '네가 완벽하지 않고, 나도 그렇기 때문에 용서를 한다'는 용서의 편지를 받는다. 삶을 지속시킨 편지 한 통 덕에 Mary는 물론 Mary도 모르고 있었던 뱃속의 아이 또한 목숨을 구한다.

비로소 Mary는 Max를 만나러 뉴욕에 가기로 결심한다. 아이를 등에 없고 벅찬 마음으로 Max를 찾아간다. 편지에서 Max 또한 Mary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22년 간의 우정. 처음 보게 되는 '마음의 친구' 두 사람은 설렌 맘으로 만날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Mary가 Max의 아파트에 들어서고, 문 앞에 서서 노크를 한다.


Max? Mary가 왔어요.


고요하다. Mary는 집 안을 돌아다니며 Max를 찾는다. 집 안 곳곳 Mary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거실에 간 Mary는 천장을 바라본 체 숨을 거둔 Max를 발견한다. Mary는 친구의 죽음에 슬퍼한다. 오랜 친구 Max가 마지막으로 바라본 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했던 Mary는 천장을 올려다본다. 천장에는 Mary의 편지가 빼곡하게 붙어 있다. 마지막까지 Mary를 떠올린 Max 덕에 Mary는  큰 감동받는다.

서로의 미숙함과 불완전함을 알고, 그것들을 하나씩 받아들이며 키운 우정. 매일 만나 얼굴을 보지 않지만, 매일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친구. 이들의 우정은 영화의 엔딩에 나오는 자막으로 정리할 수 있다.


"Thank God, We can choose our friend"

"친구를 선택할 수 있게 함을 신에게 감사한다."


Mary와 Max의 우정을 보며 나를 둘러싼 관계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Max의 조언대로 그 관계들 이전에 '나'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된다. "Love yourself first"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그의 조언이 Mary의 인생을 바꾸었듯 내 삶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


관계란 서로 완벽하기 때문에 지속되는 경우보다, 서로 부족하기 때문에 채워가려는 노력들로 지속되는 경우가 많다. 나도 내 마음처럼 되지 않는데, 내가 어떻게 타인을 내 맘처럼 행동하게 하겠는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내가 선택한 친구, 그리고 그 친구와의 관계에 새로운 기준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지나간다.

다가오는 새해에는 모두가 '좋은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후회가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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