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대학, 어떤 학과를 가야 할까?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대부분의 일에 '정답'은 없다. 살다 보면 하나의 문제를 놓고 수많은 정답과 해설지가 쏟아져 나올 것이다. 우리는 그중 하나를 취사선택하거나 본인만의 정답과 해설지를 만들어가야 한다. 대학 생활에 관한 매거진을 만들면서 많은 고민을 했다. 혹시 내가 한 말 때문에 중요한 기로에 선 친구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면 어쩌지? 하지만 이건 분명 기우일 것이다. 생각보다 스무 살은 당차고, 똑똑하다. 내가 스무 살 때 스스로를 그렇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자, 이제 선택의 기로에 함께 서보자. 필요하다면 노크노크표 나침반을 참고해도 좋다. 단, 방향을 정하고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것은 선택의 기로에 선 당신의 몫!
일단 대학 진학을 위해 학교와 학과를 검색하고, 수시 논술 시험을 치르며 원서 접수를 마친 수험생 여러분들께 아주 큰 박수를 보낸다. 여러모로 힘든 일이 많았을 것이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자신의 점수를 들여다보는 일도, 가능성 있는 대학을 찾아내는 일도, 나에게 맞는 학과를 생각하는 일도 고된 일이었을 것이다. 재수에 대한 고민도 길었을 것이고, 반수를 할 생각에 여전히 무거운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 대학 및 전공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으니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최선의 선택을 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 어떤 대학을 가야 할까?
일단 대학 진학을 결정했다면, 내가 '합격한 대학' 즉 내 손에 있는 선택지에서 선택해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지만 막상 대학을 결정하는데 선택지 이외의 것들이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재수에 대해 치열한 고민을 하고 '진학'을 선택했을 테니 일단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지자. 선택지가 하나라면 고민할 필요가 없겠지만, 선택지가 2~3개라면 굉장한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친구들이 고민에 빠지는 세 가지 경우를 정리해 보았다.
첫째, 성적보다 높은 대학인데, 학과가 영 아닌 경우
극단적이지만 본인은 종교(에 대한 관심마저)가 없는데, 본인 기준에서 괜찮은 대학의 신학과/종교학과 등에 합격한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이과가 문과 대학을, 문과가 이과 대학을 교차 지원한 경우도 좋은 예가 되겠다. "일단 들어가서 전과하자!"라는 생각을 했다면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 결심을 이루기 위해 본인이 엄청난 노력과 의지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본인이 딱 꽂히는 전공 분야가 없고 일단 높은 점수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난 이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학부 때 전과하는 친구들을 꽤 봤고, 복수 전공이나 부전공 등으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친구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4년 내내 전과, 복전 이야기를 달고 살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체 졸업한 친구들도 많이 봤다.
대학교 간판은 중요하지만, 인생을 망하게 할 만큼 중요하진 않다. 나는 지방 거점 국립대를 졸업했다. 서울권 상위 대학 혹은 경찰대, 사관학교, 사대, 교대에 진학한 친구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학교였다. 동창 중 한 명은 이런 말도 했다. "너 인생 망하려고 그런 학교 가니?(친구의 동생은 2년 뒤 우리 학교에 입학했다.)" 난 상처받았다. 대학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할 만큼 큰 걸까? 분명 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매우 다르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관련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상세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오늘은 일단 대학 '선택'에 초점을 맞춰보자. 물론 '학벌'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면, 혹은 주변 환경이 그렇다면 난 그 가치를 따라 선택하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본인이 학벌 이외의 다른 것에 가치를 둔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둘째, 하향지원인데 장학금 등 혜택이 많은 경우
우리 부모님은 늘 '대학'에 가면 독립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첫 학기 학비는 '빌려주겠다'고 하셨고, 첫 달 용돈도 '빌려주겠다'고 하시며 자비를 베푸셨지만, 혼자 살아갈 생각을 하니 학비와 생활비는 대학을 선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항목이 되었다. 난 어차피 수능 점수가 엄청 높지 않아서 전공 선택에 큰 의미를 두기로 했다. 부모님의 희망을 담아 선택한 사대를 제외하고 나머지 두 군데는 내가 원하는 전공인 '문예창작' 관련 학과를 지원했다. 사대는 예비 번호 17번(뒤늦게 합격했으나 내 의사가 아니었으므로 패스!)을 받았었고 서울권 사립의 문창과와 지방 거점 국립대의 문창과류의 학과는 제 때 합격했다. 서울권 사립대학의 문예창작학과는 학비도 비쌌고, 서울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들어가는 돈도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집 근처의 대학을 고려하게 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타지 생활에 대한 글도 기회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서술해보겠다)
난 생활고에 시달리며 공부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글을 쓰고 익히는 건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난 망설임 없이(라고 말하기엔 좀 망설였다) 지방 거점 국립대를 선택했다. 장학금도 주고, 기숙사비도 저렴한데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대학에 입학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친구들을 많이 본다. 생활고는 굉장한 악순환 고리를 만든다. 우선 과중한 알바는 학업에 지장을 준다. 학업에 지장을 받은 학생들은 당연히 장학금 대상에서 제외된다. 장학금에서 제외되면 다시 과중한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물론 요즘은 국가장학금이 잘 되어 있어서 집안 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받을 수 있고, 대부분의 장학금이 집안 사정을 기준으로 책정되기 때문에 약간의 노력만 한다면 장학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생활고는 이런 단순한 열정마저 빼앗아가곤 한다. 돈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게 나를 지지하는 대학은 꽤 메리트가 있다.
셋째, 내가 원하는 대학과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이 다를 경우
모두의 가치관은 다르지만 난 이 경우에는 무조건 '내가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스무 살이다. 성인이고, 이제 내 삶을 열어가야 한다. 부모님은 결과적으로 자식이 행복한 삶을 살기 바라신다. 만약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과 학과가 내 삶에 훨씬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 같고, 내 선택에 책임을 질 자신이 없다면 일단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학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 문제에 있어 옳고 그름은 없다. 오히려 부모 말을 들어 잘 되었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봤다. 그렇지만 친구 J군의 이야기를 꼭 들려주고 싶다.
친구 J는 고려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원래 한의대를 생각했지만 점수가 모자라 부모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성적에서 가장 높은 대학, 높은 과를 선택한 것이다. J는 입학하자마자 방황했고, 학과 공부가 잘 맞지 않아서 학고를 맞는다. 늘 일등만 해오던 J는 충격을 받았고, 다음 학기 휴학을 결정했다. 휴학기간은 점점 길어졌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돌아간 학교에 J는 결코 적응할 수 없었다. J는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가 진로를 고민하기로 했고, 스물여섯이 되는 올해 자퇴를 결심하고 실용음악과가 있는 학교의 입학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부모님의 심한 반대 때문에 마음은 무겁지만, 본인은 점점 자신이 생긴다고 했다. 왜 좀 더 일찍 결정하지 못했는지 후회된다고 했다. 무기력하게 살던 지난 삶에 비해 지금은 두렵긴 해도 즐겁다고 했다. J는 고려대학교가 정말 좋은 학교인 걸 알지만, 본인에게는 아픔이라고 했다. 이렇게 사람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한 형태로 살아간다.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선택의 순간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일이다.
□ 어떤 전공을 선택할까?
전공선택은 중요하다. 재수생일 때 친구들이 찾아와 반수, 편입, 전과, 복전 등을 이야기할 땐 화딱지가 났다. 재수생한테는 배부른 고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 덕에 난 '전공'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알았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결정하고 대학에 진학하는 건 엄청난 메리트가 된다. 전공을 선택하는 건 내 삶의 구체적인 그림을 그려나가는 과정과 같다. 이전에는 추상적이던 것들이 현실화되는 과정의 첫 단계라고 보면 된다. 물론 우리나라 대학 교육과정의 특성상 모든 것을 다 습득하기란 매우 어렵다. 하지만 학과에서 주워듣는 것, 학과에서 배우는 것, 학과의 선배들의 경험담은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과 결정은 '나'의 꿈을 실현할 수 있는 가장 큰 지지대가 될 수도 있고, 나의 꿈과 멀어지게 만드는 방해물이 될 수도 있다.
첫째,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이건 대학 전공 선택뿐 아니라 직업선택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나는 잘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향을 가졌다. 당연히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을 선택했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나와 같진 않았다. 잘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하는 친구도 있고, 싫어하더라도 잘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분명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물론 경영학이, 경제학이, 정치학이, 인문학이, 공학이 어떤 걸 배우는지 자세하게 몰라서 이런 것들을 잘 판단하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도 있다. 신중하게 고민해서 갔지만,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수능이 끝나고 친구들과 놀기 바쁘겠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탐구해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카페에 가서 노트 하나 펼치고, '나'에 대해 적어보자.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시험공부를 하고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들고, 문제에 대해 고민해서 문제를 풀고 스스로 점수를 매길 수 있어야 한다.
둘째, 타인의 조언을 외면할 것
조언은 필요하다. 이 시대가 불행한 이유가 '멘토'가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리 사회에 멘토는 많지만, 멘토가 없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건 중요하다. 먼저 그 길을 간 선배들의 의견은 도움이 될 것이고, 지금 여러분이 읽는 이 글도 수많은 조언 중 하나가 될 것이다. 하지만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 한 번쯤은 타인의 조언을 외면할 필요가 있다. 이 학과를 나와야 돈을 잘 번다더라, 그런 학과를 나오면 굶어 죽는다더라, 누가 이런 과를 가서 이런 틈새를 이용해 취업을 엄청 잘했다더라 등 학과 선택에 대한 여러 조언들을 잠시 외면하고 내가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치열하게 혼자 생각하고 난 뒤에 타인의 조언을 귀담아듣는다면 좀 더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발 친구 따라 강남가지 말자. 친구들이 경영학과 많이 간다고 덩달아 경영학과 가서 고생 꽤나 한 친구들을 많이 봤다. 전공은 제발 '스스로' 선택하자.
셋째, 상상의 나라에서 나와 현실을 볼 것
타인의 조언을 외면하고 스스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서 학과를 선택했다면 이제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즉 타인의 조언을 요목조목 대입해보고 적절한 정보를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보자. 동기 녀석 중에 '방송작가'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서 글 쓰는 우리 학과에 입학한 C가 있었다. 입학만 하면 멋들어진 글을 쓰고, 졸업할 즈음 작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다는데 C는 입학 후 C플러스를 맞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소설을 쓰는 과제에 일기를 썼고, 20페이지 이상 써야 하는 소설을 10페이지도 채우지 못했다. 열정은 넘쳤지만 실질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생활을 잘 수행하고 해당 전공에서 본인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은 확인해 보아야 한다. 결국 C는 부사관학교에 재입학해서 현재 멋진 군인이 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라는 꿈에 부풀었던 많은 동기들은 생각보다 이곳의 삶이 고되고, 지루하다는 사실을 알고 많이 좌절했다. 멋진 꿈을 그리는 것도 좋지만 꼼꼼하게 학과 커리큘럼을 확인하고, 관련 진로에 대해 검색하는 시간을 반드시 가질 필요가 있다. 내가 가장 꼼꼼하게 챙겼던 것은 학과의 커리큘럼과 교수의 약력이었다. 나를 가르치는 교수가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어떤 과목들이 개설되어 있는지 몇 번이고 확인하고 비교해봤다. 그리고 이런 사전 조사는 대학 입학 후 큰 도움이 되었다.
대학교를 선택하고, 전공을 선택하면서 난 어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난 학교 홈페이지에 등록된 학과 커리큘럼을 보고 몇 번이나 모의 시간표를 짜보곤 했다. 하고 싶은 공부, 그 공부를 위해 필요한 공부들의 리스트를 적으면서 어느 정도 책임감도 느꼈다. 내가 선택한 대학에서 내가 누릴 수 있는 혜택(장학제도, 기숙사, 지도 교수 등)을 꼼꼼하게 다이어리에 적었고, 그 대학을 선택했기 때문에 내가 놓칠 수밖에 없는 부분(지리적인 위치, 생활적 여유 등)들을 체크리스트로 만들어서 하나씩 대비했다. 남들이 볼 때 유난스러운 이 행동들이 대학에 들어가서는 빛을 발했다. 최고의 선택을 했는지는 결과가 나와봐야 알 수 있다. 아직 결과를 모르는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 과정을 귀찮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당신의 4년을 투자할 곳이고, 당신의 미래의 베이스캠프가 될 곳이기 때문이다.
문화예술 관련 전공을 선택하는데 있어 현실적인 조언이 필요한 친구들은 개인적으로 이메일을 주면 아는 한도 내에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단, 나의 조언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므로 본인에게 필요한 정보만을 수용하길 바란다. 이메일 주소 : organicyouth@naver.com
*배경 이미지 출처 :crmbusiness.wordp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