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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티(Orientation)의 추억

신입생, 오티는 꼭 가야 할까?

by 노크노크
오티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의 준말로 예비 교육이라는 뜻을 가진다. 대학이라는 전혀 새로운 교육 시스템에 첫 발을 디디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도움을 주고자 마련된 교육 자리인 것이다. 학교에 따라 '새터'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대학생 당사자들 사이에서 '오티' 혹은 '새터'란 선배와 후배가 모여 '술'을 마시는 자리라고 인식된다. 실제 오티 혹은 새터에서 음주 강요로 인한 사망 및 부상 사고가 매년 발생한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에 대한 기대가 '음주강요' 및 '강압적 선후배 관계' 때문에 일순간 공포로 바뀌게 될 수밖에 없다. 오티는 꼭 가야 할까?


민족 대명절인 '설', 귀염둥이 사촌동생들 사이에 둘러싸여 피곤하지만 즐거운 연휴를 보내고 있었다. 엊그제까지 기저귀를 갈아준 것 같은 사촌동생 두 명이 올해 대학생이 된다며 한참을 신나게 이야기하는 것을 듣다 보니 새삼 내 나이를 실감하게 되고, 무럭무럭 자라 새내기가 될 사촌동생들이 대견했다. 대견한 마음에 꼬맹이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으며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꼬맹이 중 한 녀석이 내게 물었다.


언니, 오티는 꼭 가야 해? 선배들이 술 많이 준다 해서 나는 좀 무섭다. 막상 안 가면 친구들도 잘 못 사귈 것 같고, 시간표나 학교 정보 같은 것도 혼자만 모를 것 같아서 가긴 가야 할 것 같은데...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대학 시절 오티를 간 적이 한 번도 없다. 새내기 때 오티 일정을 공지받고, 나 또한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한가득 하고 있을 때 진학할 학교의 타단과 대학 오티에서 과도한 음주로 인한 사망 사고가 발생했고, 우리 단대를 포함해 오티를 진행하지 않은 단대의 오티가 모두 취소되었다. 그렇게 난 오티를 경험하지 못한 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오티의 추억'에 대한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처럼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오티의 추억'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하나의 기억이지만 누군가에겐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 되기도 한다.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가장 첫 단계이기도 하고 말이다. 꼬맹이들의 질문과 내가 들었던 경험담을 통해 오티에 대한 몇 가지 가이드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오티는 왜 가야 하는가?

새로운 학교에 진학한다. 설레는 건 당연하다. 12년 간의 수험생활을 하면서 손꼽아 기다리던 대학생활이기도 하고, 학교라는 감옥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던 중학교 고등학교와 달리 캠퍼스 로맨스 및 각종 아름다운 로망을 꿈꾸는 스무 살 꽃다운 청춘의 출발선이기도 하다. 오티는 그 새로운 시작에 대한 정보를 가장 상세하게 얻을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된다. 함께 공부할 교수님, 선배, 동기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유익하기만 하다면 '오티'를 갈까 말까 하는 고민은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학과의 이상하기 짝이 없는 선배 문화나 강압적인 술자리는 '오티 참석'을 망설이게 하는 원인이 된다.

신입생의 입장 : 오티에 가고 싶다. 함께 지낼 사람들도 궁금하고 학교에 대해서, 학교 생활에 대해서 궁금한 것도 많다. 그렇지만 강압적인 자리는 절대 싫다.

학생회의 입장 :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 안 오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선배들의 입장 : 우리들도 신입생 땐 다 저랬지. 어디 한 번 당해봐라. 혹은 쟤들은 지들이 당해놓고도 후배들한테 저러고 싶나? 이거 꼭 안 와도 되는 건데...


2. 오티에서 생긴 일

경험담을 말해줄 수 없으니, 친구들의 경험담을 꺼내보겠다. 가장 충격적인 건 친구 J양의 고백이었다.

"난 세상에서 OT가 제일 싫어. 증오해."

뭐 저렇게까지 오티를 증오하나 싶었는데... 그럴만했다. J는 음대 신입생이었다. 그 과는 신입생들 자기소개를 아주 크고 똑바로 말하게 시키고 발음이 틀리거나 목소리가 작을 때마다 술을 먹였다고 한다. J는 원래 부끄러움도 많았고 목소리도 작았다. 술이라곤 친구들과 맥주 한 잔을 마셔본 게 다였다. 자기소개를 다섯 번 정도 한 것은 기억나는데 그 뒤론 기억이 없다고 했다. 폭탄주를 몇 번이고 들이킨 다음 날 J는 참담한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음대생 모두가 함께 있는 그 숙소 안 거실 옆 계단에서 볼일을 보았다는 것이다. J는 자신이 한 일을 믿을 수 없었다. 인생이 끝난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렵게 들어온 대학을 그만둘 수도 없었다. 그렇게 J에게 오티는 끔찍한 경험이 되었다. 후배 K양의 고백도 안타까웠다. 난생처음 본 선배와 술을 마시고 키스를 해버렸다는 이야기. 그렇게 유야무야 캠퍼스 커플이 되었다가 금세 헤어져 버린 이야기. 오티의 악몽은 대부분 술에서 기인한다.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오티에 가기 전에 자신의 주량을 정확하게 알고 가야 한다. 그리고 약간 긴장을 해서 최대한 술의 기운이 자신을 덮치지 않게 해야 한다. 물론 이렇게 신입생들에게 강압적으로 술을 먹이는 선배들부터가 태도를 바꿔야 한다. 그리고 깨달아야 한다. 인생이란 게 참 재미있어서 한참 괴롭히고 놀려먹던 후배가 어느 순간 직장 상사가 되어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것을.


3. 오티보다 중요한 일

오티에 가지 않으면 왕따가 될까?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있는데, 절대 왕따가 될 리 없다. 신입생 때야 동기들이 우르르 몰려다니지만 3-4학년이 되면 너무 바쁘고 할 일이 많아 스스로 왕따를 자처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보통 선배들이 첫 학기 시간표를 짜 주기 때문에 오티 때 만나지 못했더라도 같은 수업을 들으며 동기간의 정을 쌓을 수 있다. 왕따가 될까 봐 오티를 숙제처럼 생각하진 말았으면 좋겠다. 술을 이길 자신이 없고, 학과가 원래 강압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들었다면 그냥 오티에 가지 마라. 그 시간에 대학에 가서 절대 하지 말아야 할, 반드시 해야 할 자신만의 원칙을 진지하게 세워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오티에 가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너무 걱정하지 마라. 학교 홈페이지를 헤어진 애인의 SNS를 탐독하듯 열심히 활용한다면, 장학 정보, 봉사활동 정보, 기숙사 정보, 커리큘럼, 졸업 요건, 학과만의 혜택, 교환학생 정보까지 알차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난 아직도 대학교의 사이트맵을 눈 감고도 외운다. 게임 알림보다 더 자주 학교 홈페이지의 공지사항을 탐독했는데, 이는 돌이켜 생각해봐도 정말 잘한 일 같다.



누군가 내게 낭만도 없는 대학생활을 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대학생활은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마음껏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향해 한발 한발 내딛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고 싶은 공부를 했고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도 다양한 이벤트와 추억을 만들었다. 오티는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게 하는 지름길이 된다. 중요한 학과 행사기도 하고 잘 다녀오면 유익하고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오티에 강박관념을 가지지 말았으면 한다. 가야만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이기지도 못할 자리에 나가 안 좋은 경험을 추가할 필요는 없다. 모든 일에 적용되는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이것 또한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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