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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딜레마

대입 고민의 필수 항목 : 재수를 할까, 말까

by 노크노크

'도전'이라는 말은 묘하다. 괜히 가슴을 뛰게 하기도 하고, 빨라지는 심장수만큼이나 사람을 압박하기도 한다. 스무 살 혹은 이십 대에게 '도전'은 어쩌면 한 번쯤은 해야 하는 숙제처럼 여겨지며, '도전'하지 않는 인생은 마치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도전'을 굳이 거창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하다못해 식당에 가서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았던 새로운 메뉴를 시키는 것 또한 도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능을 본 친구라면 한 번쯤 '재수'라는 거창한 도전과제를 두고 망설일 수밖에 없다. 나 또한 고민했고, 고등학교 동창의 60% 이상이 재수를 선택했다. 물론 우리 학교가 우리 지역에서 가장 재수를 많이 결정한 학교라 내 경험은 일반적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언급했듯이 재수에 대한 고민을 한 당사자로, 수많은 재수생과 교류하고 재수를 선택한 그들의 대학 생활 그리고 사회생활을 목격한 목격자로 조금 더 상세하게 재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고민을 시작해보자. 재수는 해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이미지 출처 : kuccblog.net 컥군날로먹는지식


1. 재수를 고민하는 이유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한민국의 학생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다. 그간의 시간들이 수능 하나로 평가된다는 건 정말 통탄할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을 무사히 끝낸 학생들에게 우선 박수를 보낸다. 정말 수고했고, 잘 버텨냈다. 이런 통탄할만한 현실에서 '재수'에 대한 고민은 시작된다. 재수를 결정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크게 다섯 가지를 언급해보겠다.


첫째, 지원한 모든 대학에서 떨어졌을 때! 이건 사실 고민의 여지가 없다. 묵묵히 재수를 준비할 뿐. 지원한 대학에서 떨어지는 것은 전국 상위 10% 안의 학생이건, 하위 10% 안의 학생이건 가능한 일이다. 친구 중에 재수 후 연대를 간 친구 H가 있다. 그녀는 정말 운이 없었다. 현역 때도 수능 성적은 매우 좋았다. 다만 원서를 잘못 써서 세 군데 모두 떨어졌을 뿐. 그녀는 얼떨떨한 상태로 재수를 시작했다. 우리 중 아무도 그녀가 재수를 하게 될지 몰랐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원한 대학에서 모두 떨어졌을 때 재수를 선택한다.

둘째, 자신이 만족할만한 성적을 얻지 못했다. 평소 모의고사 성적보다 현저히 낮은 성적을 수능에서 받게 될 때 친구들은 재수를 선택한다. 내가 그랬고, 재수를 선택한 대부분의 친구들이 그랬다. 핑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난 수리영역이 끝나고 직감했다. '이번 시험은 망했다.'고.

셋째, 아주 아쉽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성적이 되지 않을 경우다. 두 번째의 경우 확연히 낮아진 성적을 가지고 좌절하지만, 이 경우 애매하게 부족한 자신의 성적 때문에 울상을 짓는다. 그대로 가도 별 상관없지만 괜히 아쉬움이 남을 것 같아서 재수를 선택한다. 내 동창들 중에는 연대를 가고 싶었는데, 점수가 모자라 서강대를 지원했고 결국 재수를 선택했다. 국립대와 사립대의 한 끗 차이에서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다. 몇 점만 더 받았더라도 국립대를 가는 건데... 싶어 고민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경우 고민의 정도는 더욱 심해진다.

넷째, 부모님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재수를 한다. 고등학교 동창 B군은 현역 때 성균관 대학교, 재수생 때 고려대학교 인문 계열에 합격했지만 B군의 부모님은 B군이 한의학과를 가길 바랐다. 결국 삼수, 사수를 거쳐 대전대학교 한의학과에 입학했다. 부모님의 기대 때문에 이대에서 연대로, 고대에서 서울대로 가기 위해 재수, 삼수를 감행한 친구들이 참 많았다.

다섯째, 개인의 심리상태 및 건강상태 그리고 집안 사정 등의 문제가 발생할 때 재수를 선택한다. 별로 없을 것 같지만 이 경우도 꽤 보았다. 내가 재수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게 된 이유기도 하다.


재수의 다양한 이유를 언급한 것은 자신의 상황에 맞춰 재수에 대해 고민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 또한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분류한 것이니, 해당하는 사항이 없다고 해서 실망하거나 분노하지 않길 바란다. 물론 위의 다섯 가지 이유 중 몇 가지가 혼합되어 재수를 고민하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 두 번째와 다섯 번째 이유 때문에 최종 재수를 결정했었다.


2. 스무 살, 재수는 왜 '거창한 도전'이 될까?


스무 살은 아름다운 나이지만, 재수를 생각하는 사람에게 스무 살은 버거운 나이다. 일단 학창시절 억지로라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던 '경제적인 문제'를 직면하게 되는 나이고, 집에 일찍 가거나 하다못해 화장실 가는 것까지 어른들의 허락을 구해야 했던 어제와 다르게 갑자기 내 '인생'을 그것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는 나이기도 하다. 스무 살에게 재수가 왜 '거창한' 도전이 될 수밖에 없을까?


첫째, 시간의 문제다. 친구들은 다 대학에 가는데, 나만 재수 학원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는 것도 억울할 뿐 아니라 삼포를 넘어 오포를 외치는 헬조선에서 조금이라도 뒤쳐졌다가는 평생 뒤쳐질 것 같은 불안감 때문에 재수는 치열한 고민의 대상이 된다. 힘들었던 수험생활을 다시 할 생각하면 1년이라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질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재수, 삼수를 한 친구들과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건 "생각보다 1~2년은 길지 않다." 사실 난 대학에 입학하고 동기들보다 나이가 많은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 덕에 다양한 동생들과 조금 더 쉽게 어울릴 수 있었다. 학번제를 주장하는 유별난 선배들을 만나 마음고생을 하긴 했지만, 사회에 나가면서 알았다. 아마 학번제를 운운하며 '선배 놀이'를 즐겨하던 친구들도 알았을 것이다. 1~2년 앞선다고, 1~2년 뒤쳐진다고 인생에서 우위를 차지하거나 인생에서 실패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선배 놀이'를 좋아하던 친구들보다 난 졸업을 더 빨리 했다. 치열하게 보낸다면 1~2년은 조금 더 빨리 가기 위한 자양분이 될지도 모른다. 도전을 망설이는 이유가 '시간' 때문만이라면 난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삼수한 친구가 우리 중에 가장 빨리 취업을 해서 취업 턱을 쏠 때, 우린 진심을 담아 박수를 쳐주었다. 그녀가 열심히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보상이니 정말 축하받을 만하다고 말이다. 물론 군대 문제 때문에 남학생들의 고민은 더욱 클 것이다. 삼수를 한 친구 놈은 말했다. 사수까지만 안 하면 그럭저럭 군대도 갈만 하다고.


둘째, 돈의 문제다. 재수를 하면 돈이 든다. 이미 익숙한 일을 1년 더 하는 것인데 돈은 2~3배로 든다. 나의 경우 독서실을 다니며 독학을 한 특수 케이스지만 친구들은 기숙학원, 일반 재수학원 등을 다니며 연간 1,000만 원에서 3,000만 원 정도를 들였다. 국립대를 두 번 졸업할 금액이다. 가정형편이 여유치 않은 경우 재수를 가장 빨리 포기한다. 나 또한 여유롭지 않은 가정 형편으로 재수는 안 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돈이 가장 들지 않는 방향으로 재수를 선택하게 되었다. 부모님이 아낌없이 지원해주신다면 괜찮겠지만, 그럴 수 없을 경우 '돈'의 문제는 재수를 고민할 때 혹은 재수의 형태를 고민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문제다. 특히 서울로 재수를 하러 가는 지방 학생들이 많은데 이럴 경우 학원비, 교통비, 집 값, 교재비, 시험 응시비, 간식비, 식비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tvN<응답하라 1988> 고시 뒷바라지 하는 부모님을 애잔하게 바라보는 보라

셋째, 마음의 문제다. 재수를 한다고 모두 좋은 대학을 갈까? 아니다. 수줍은 고백을 하자면 난 망쳤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쳤던 현역 때의 점수가 더 좋았다. 재수를 한다고 무조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즉 도전을 한다고 그 결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재수를 하면 당연히 개인의 기대도, 주변의 기대도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결과가 보장되지 않은 '도전'에 망설일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마음이다. 사실 시간과 돈의 문제도 친구들과 나를 힘들게 했지만 이 마음의 문제가 재수를 결정하는데, 재수 생활을 하는데 그리고 재수 생활을 끝낼 때 가장 큰 문제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간과 돈의 문제가 마음의 문제를 만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내며 고민의 크기를 키우고 만다.

이미지 출처 :tvN<응답하라 1988> 7수생 정봉이

이래저래 재수는 '도전'이 될 수밖에 없다. 망설이는 건 당연하고, 선택한 뒤에도 고통스러운 건 당연한 일이다. 세 가지 문제는 재수를 하는 내내 수험생을 괴롭힐 것이다. 재수를 할 때, 대학생이 된 친구들이 밥을 사준다면서 종종 독서실 앞을 찾아오곤 했다. 질끈 묶은 머리에 트레이닝복, 삼선 슬리퍼를 신은 내 모습과 달리 샤랄라 원피스에 화사한 화장 그리고 힐을 신고 와서 연애 상담을 하는 친구들을 마주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고, 삼각 김밥과 컵라면 혹은 부모님이 싸주신 도시락을 주식으로 살아가다 보면 삶의 질이 무척 떨어지는 느낌도 들 것이다. 친구가 연애한다는 소식, 방학 때 배낭여행, 해외여행을 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한참 뒤쳐지는 것 같아 좌절감도 들 것이다. 이 모든 것을 견디며 '목표'를 향해 나아갈 의지가 있다면 재수는 정말 해볼 만한 도전이다.


3. 재수를 결정했다면 반드시 해야 할 일


재수를 결정했다면 냉정하게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길고 외로운 자신과의 싸움이 될 것이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수록 이성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첫째, 재수의 명확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 어느 대학 무슨 과를 목표로 그만큼의 성적을 내는 것이 재수라는 '도전'의 주목적이 될 것이다. 만약 정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습득한 경험치를 충분히 활용해서 최대한 구체적이고 성취 가능한 목표를 정해야 한다. 물론 꿈은 높게 잡으라고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꿈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의 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던가. 자신이 목표를 이룰 수 있다는 확신이 들거나 성취가 가시화되면 도전에 성공할 확률은 높다.


둘째, 나에게 최적화된 재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돈의 문제가 있는데 굳이 비싼 기숙학원에 등록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지방의 학생들이 서울로 올라간다고 무조건 재수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친구 J는 재수는 서울에서 삼수는 본가가 있는 대전에서 했다. 서울에서 J는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펑펑 놀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아 놀아줄 사람도 많았고, 서울이기 때문에 놀 곳도 많았다. J는 삼수를 결심하고 나서야 자신이 유혹에 취약한 캐릭터임을 파악하고 본가에서 가까운 학원을 매일 통원하며 공부를 했다. 엄마의 잔소리를 라디오처럼 들으며 1년을 견뎠다고 한다. 삼수의 결과는 꽤 좋았다. 재수는 정말 선택의 문제다. 모두 학원에 갈 필요도 없고, 모두 독서실을 다닐 필요도 없다. 나의 성격, 경제적 환경, 가정환경 등을 모두 고려해서 나에게 가장 최적화된 재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미지 출처 : tvN<응답하라 1988> 절에서 공부해 7수만에 합격한 정봉

셋째, 자율적인 생활을 연습해야 한다. 스무 살이다. 대학에 간 친구들은 시간표도 스스로 짜고, 공부하는 시간도 노는 시간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진다. 여전히 입시 제도에 있지만 재수생들도 이제 스무 살이니 그런 생활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이건 그냥 나이에 따른 책임의 문제라기보다 자율적인 생활을 실천할 때 '나'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고, 내가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더욱 명확해진다. 난 재수를 하면서 전공을 선택하기 위한 고민을 가장 많이 했다. 첫 번째 지침은 실패했지만 (내 기대가 좀 높았다.) 자율적인 생활을 하면서 나는 '나'에게 적합한 학과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공부를 하는 시간 외에 강연을 듣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찾아 헤맸다. 그 일들을 이루기 위한 자율적 생활 그리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연습하다 보니 난 대학에 가서 비교적 빠르고 명확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신념을 가지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굉장한 메리트가 될 것이다. 기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자.


재수를 시작할 때, 재수 선배들은 말했다. '이성친구 사귀지 마라', '일희일비하지 마라', '인강을 잘 활용해라', '여기저기 휩쓸리지 마라' 그렇다 맞는 말이다. 이런 깨알 같은 조언과 꿀팁은 주변에서 내가 가장 신뢰하는 선배에게 확 와 닿게 들으며 그때 그때 마음을 다지길 바란다. 이 부분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 하나를 덧붙이자면, 이런 저런 조언들만 듣다가 재수 생활이 끝날 수도 있으니 조언도 적절히 듣고, 적절하게 수용하시길.


재수는 분명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도전에도 딜레마가 있다.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딜레마는 더욱 커진다. 딜레마에서 가장 현명한 해답은 오직 본인만이 제시할 수 있다. 입시 제도에서는 탈출하지 못했으나, 스무 살이라면 이제 인생에 대한 주관식 정도는 서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 그리고 무슨 선택을 하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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