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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05. 2015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

처음으로 용기 내요. "내 이야기 좀 들어볼래요?"

시간 있어요?



혹시 시간 있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줬음 좋겠다. 시간이 없어 바쁜 사람이라도 그냥 휘리릭 거들떠라도 봤음 좋겠다. 관심병 환자냐고? 아니다. 뭐, 자발적으로 심리 상담을 받고 있긴 하다. 상담 선생님 말론 검사 결과  별문제는 없는데, 사는 게 좀 힘들 것 같은 스타일 이란다. 가장 높게 나타난 가치 두 개가 서로 상충한다나 뭐라나. 


쉽게 말해 이런 거다. 내 본성은 막무가내 미운 7살인데, 나의 사회성은 한참 철든 척 하는 30대 후반인 것이다. (실제 나이는 20대다.) 상담 선생님은 나더러 '화'를 표출하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니 이제라도 가까운 사람 붙잡고 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하란다. 


원래 잘 못하는 일인데 멍석까지 깔아주니 더 어려워서 이렇게 내 얼굴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일상을, 일상에서 느낀 감정을 주절주절  이야기해볼까 한다. 아무도 듣는 이가 없다면 조금 많이 슬플 것 같아서 들어달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수다쟁이다. 말이 적지 않은 편이고, 어색한 것도 잘 참지 못하는 지나치게  사회화된 인간이다.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감정'을 말한다거나,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어렵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늘어가는 것은 나의 감정과 상황을 빠르게 객관화시켜 정리하는 능력. 동네 술친구 말대로 이 말에는 큰 모순이 있다. 


'나'의 일과 감정은 그 자체로 '주관적'인데, 어떻게 '객관화'를 시킬까? 이건 그냥  '자기부정'일뿐이다. 그렇다. 난 '자기부정'을 굉장히 잘하는 찌질한 여성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우아하고 침착한 '어른'으로 성장하고 싶었는데 '좋다', '싫다'도 제대로 말 못하는  '어린아이'로 역행하고 있었다. 그간의 노력이 참 부질없다. 


친한 친구가 내게 "나 너무 정숙하게 살아왔어. 세월이 아깝다."라고 말했다. 난 바로 "나 너무 엄숙하게 살아왔어. 세월이  무섭다."라고 답했다. 친구는 웃었다. 부정하지 않고 나의 엄숙했던  지난날에 애도를 표했다. 


난 엄숙하게 살았다. 모범의 표본이었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날 어른스럽다고 칭찬(?)했다.  그땐 그런 내 삶이 꽤 만족스러웠는데, 요즘 들어 20대의 싱그러움을 재물로 바쳐 할미꽃으로 꽃꽂이를 완성한 것 같은 찝찝한 기분이 든다. 나로 태어났는데, 나로 안 살고 누구로 살아왔는가. 물론 내 삶을 모두 후회하지는 않는다. 


어른스러운 척 사는 것도 나름 나쁘지 않았지만, 이제라도 나답게 표현하면서 살아야겠다 싶은 거다. (과연?)


어쩌다 보니 하루가 참 빨리도 지나간다. 전에는 지루하기 짝이 없었는데, 요즘엔 눈 뜨면 눈 감는다. 도대체 무얼 하면서 사는 건지. 누굴 만나는 건지. 요즘 술을 마셔서 알콜성 치매에 걸린 건지. 나의 소중한 '오늘'이 그냥 여느 하루가 되어 이 우주를 부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의 하루를 잡아두고 싶다. 그리고 나누고 싶다. 내가 느낀 감정, 내가 만난 사람들, 그리고 내가 마주한 '오늘' 




어쩌다 보니 오늘 '하루' 


나의 이야기 속에서 당신이 지나친 과거의 '오늘'을 당신이 마주할 미래의 '오늘'을 그리고 오늘 '하루'를 발견할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솔직하고 싶다. 당신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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