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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크노크 Oct 07. 2015

내 마음인데 어때

오해를 하든 말든 어쩔 거야. 그를 좋아하는 건 '나'의 마음이다.


그 사람이 착각하면 어떻게 해?


낮이 짧아졌다. 여름을 생각하면 어둠이 참 빨리도 찾아온다. 해가 저물 무렵의 연남동. 친한 언니와 양꼬치에 칭따오 한 잔을 하며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워낙 편한 자리라 더 빨리 취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가 며칠 전 호감을 가지게 된 남자, 아니지 한 남자에 대한 나의 '호감'이 화제로 떠올랐다. 


우리 사이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지난 여름, 일 때문에 그를 만났고 어색하게 서로 일만 하다가 어려움에 처한 나를 그가 때마침 도와주게 되어 급격하게 친해졌다. 


서로 별명까지 만들어 부르며 격의 없이 지냈다. 얼마 전엔 내가 일을 그만두는 바람에 공적인 관계가 완전히 사적인 관계로 전환되기도 했다. 일주일에 3~4번은 함께 술을 마시고,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도 하고, 종종 전화도 하고, 메시지도 보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분명한 선이 있어 나도 그를 남자로 보지 않았고, 그도 나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일을 그만 두고, 정기적으로 만날 일이 없고 메신저로만 연락하다 보니 우리 관계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솔직히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우리 관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나?' 다시 사적으로 보게 된다면 조금 더 확실히 알 수 있었겠지만, 막상 일 아닌 다른 일로 그를 불러내기도 머쓱한 상황이었다. 


칭따오 한 모금을 삼키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내가 이런 맘을 갖게 된 게 한  3일쯤 됐거든. 나 이 사람 좋아하나?" 언니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대답했다. "응, 그런가 보지. 지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아... 난 여러 번 짝사랑을 감행했지만, 짝사랑보다 짝사랑을 빠르고 깔끔하게 정리하는 일에 더 큰 재주가 있었다. 솟아오르는 나의 감정을 잘도 억눌러왔다. 이번에도 우리가 이루어질 수 없는 여러 이유들을 떠올리며 묻지도 않은 언니에게 변명을 하고 있었다. 


"솔직히 그 사람이 날 여자로 봤으면 이런 행동을  했겠어?"라는 부질없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근데, 그 사람 이런 내 마음 알아차리고 착각하면 어떻게  해?"로 정점을 찍었다. 야무지게 양꼬치를 먹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언니가 맥주 한 모금으로 입안을 헹구더니 잔을 내려놓고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야! 너 누구를 제대로 좋아해 본 적은 있니? 그 사람이 착각을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앞서 고백했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것보다 사랑을 정리하는 일에 아니지 사랑을 발전시키지 않는 일에 조금 더 익숙한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내 마음을 혼자서만 간직하며 끙끙 앓다가 접어 버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지난 연애는 나를 좋아해주는 누군가와 했다. 확실하게 나에 대한 마음을 표출하는 그런 사람들과. 


"그 남자가 오해를 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좋아하는 마음은 네 맘인데. 어쩔 거야."


그렇다.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마음은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굉장히 단순한 사실인데 왜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근데 문제는 내가 그를 정말 좋아하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언니는 이런 나를 답답해했다. 나도 스스로가 무척 답답했다. 그렇지만 짚고 넘어갈 문제였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래, 네가 좋아하는 줄 알았고 그 사람이 그걸 알아버렸다고 치자. 근데 며칠 뒤에 네가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단순히 편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어. 그 사람은 계속 네가 그를 좋아한다고 오해를 해. 근데 어쩔 거냐고. 니 '맘'은 그게 아닌데. 어쩔 거야 그 사람이. 오해하는 그 사람 마음은 또 그 사람 건데." 


구구절절 맞는 말이었다. 그리고 난  그동안 숱하게 말 한 번 꺼내보지 못하고, 오해를 살까 봐 표현 한 번 하지 못하고 고이 접어 마음 한 켠에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마음들을 애도했다. 


얼마나 억눌렀으면 한 때 며칠 밤을 눈물로 지워냈던 사람의 이름 마저 기억나지 않을까. 언니의 말에 난 용기를 냈다.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고,  오해받을 걸  두려워하느라 표현을 숨기지 말고 즐기라는 언니의 조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막상 그렇게 하고 나니 더 확실하게 내 감정을 알게 되었다. 나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한 과정에서 그는 나의 마음을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저 여자가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래, 그랬었던 것도 같다. 우쭐해하는 말투가 다 느껴졌다. 


그렇지만 어쩔 거야. 일주일이 지나고 보니 한 없이 가벼운 그에 대한 내 마음의 무게를. 언니 말대로 오해를 하든 말든 내 마음은 내 것이고, 오해를 하는 그의 마음은 내가 어쩔 수 없는 그의 마음인 것을. 


난 이제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저 사람을 좋아하는지 아닌지 혼자 고민하다가 혹시라도 그에 대한 내 마음을 그에게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애써 마음을 부정하는 일 따위는 그만 두기로 했다. 난 사랑에 있어 좀 비겁한 사람이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고, 내 마음이 나의 것인 줄 확실히 알았으니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련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대의 마음 때문에 너무 아파하지도 않기로 했다. 



그래, 내 마음인데 어때? 
그래, 그 사람 마음인데 어쩔 거야?


마음이 홀가분하다. 혹시 주위의 시선 때문에 마음 한 번 표현해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내길 바란다. 오해를 하든 말든 좋아하는 마음은 '당신' 마음이고, 원하진 않았겠지만 오해를 해 버린 그의 마음은 '그'의 맘이 아닌가.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나의 마음에 집중해보자. 신이 난다. 사랑이 조금 쉬워진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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