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거절을 거절하는 너에게
너한테 정말 서운하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감기 때문인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과로 때문일 것이다. 돈을 버는 일도, 학교 일도 아닌데 다른 사람 등에 떠밀려 이런 저런 일을 맡았기 때문에 꽤 피곤한 한 주였다. 물론 생계형 알바도 학업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결국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기로 했다.
미안한 마음에 (이제와 생각해보면 대체 왜?) 최대한 할 수 있는 만큼 도움을 주었고, 도와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돌아온 상대의 반응은 '서.운.함' 뿐이었다.
지난 여름, 스트레스와 과로 때문에 쓰러진 적이 있다. 날 병원에 데려간 지인 말에 따르면 갑자기 얼굴이 하얘지고, 입술이 검게 변하더니 픽 쓰러져 버렸다고 했다. 한동안 숨을 쉬지 않아서 크게 놀랐다고 하는데, 난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수액을 맞으며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언제 마지막이 오는 줄도 모르고...' 쓰러진 이후 휴가를 병가처럼 쓰고, 주말마다 '요양'을 하며 지냈다. 직접적인 원인이 저혈압 쇼크였기 때문에 쓰러진 이후 몸이 계속 깔아지고, 쉽게 피로해졌다.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훅! 오곤 했다. 갑자기 컨디션이 안 좋아져 약속을 취소하는 경우도 잦아졌다. 돌아보면 몸이 아프고 난 뒤 내가 가장 많이 해야 하는 것은 '거절'이었고, 가장 감당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나의 거절을 거절하는 사람들의 태도였다.
아프고 난 뒤,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쌀을 씻어 밥을 지었다. 밥은 고슬고슬 잘 되었지만 반찬이 하나도 없었다. 그 흔한 김, 참치캔, 김치조차 없었다. 슈퍼에 가서 참치캔을 사다 한 끼를 해결했다. 찬찬히 방 안을 둘러보니 엉망이었다. 더럽진 않았지만 '생활'을 하는 공간 같아 보이진 않았다.
방바닥에는 책과 서류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가 널브러져 있었고, 냉장고는 텅 비어 있었다. 돌이켜보니 난 내 하루의 70% 이상을 타인의 일을 하는데 사용하고 있었다. 생계형 알바를 하고, 공부를 하는 것은 당연한 나의 일이었다. 이것만으로도 벅찬데, 공채 시즌이니 자소서를 좀 봐달라는 친구들의 부탁은 끊이질 않았다.
뿐만 아니라 각종 기획서, 면접 시나리오 작성 등 자잘하게 부탁받은 것이 참 많았다. 난 너무도 당연하게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다. 날 위해 밥을 짓는 시간을 아까워하고, 운동하는 시간을 아까워하면서 말이다.
쓰러지고 난 뒤 생각했다. 내가 사라진다면 회사는 나를 대체할 다른 사람을 구할 거고, 친구들은 다른 누군가에게 자소서를 부탁할 것이다. 혹은 돈을 내고 컨설팅을 받게 되겠지. 이런 부분에서 난 얼마든지 대체 가능한 인간이었다. 도대체 난 무엇 때문에 '나'의 생활을 지키지 못하고 '일'에 목을 매고 타인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을까. 거절하지 못한 나의 삶의 결론은 '엉망진창'이었다. 허무함이 밀려왔고, 곧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이기적인 삶을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도울 수 없는 일은 돕지 않기로 했다. 설령 도울 수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을 방해하는 일이라면 하지 않기로 했다.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지만, 거절도 열심히 했다. 몇몇 친구들은 내게 "서운하다."고 했다. 혹은 "그냥 좀 해주지."라며 비아냥거렸다.
예전 같으면 그 말이 너무 거슬리고 스스로를 힘들게 했겠지만, 이젠 오히려 홀가분하다. 그동안 이유 없이 부탁을 들어준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고, 난 '잘못된 습관'이라고 답했다.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 부탁했다는 타인에게, 나도 결코 쉽지 않았고, 무언가를 '그냥' 할 만큼 시간이 여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었다.
세상에. 거절을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은 정말 많이 달라졌다. 날 위해 밥을 짓고, 방을 청소하고, 운동을 했다. 훨씬 홀가분했고 스트레스도 완화되었다. 무엇보다 내게 '서운함'을 토로하는 친구들을 마주하는 일보다, 자유로워진 얼굴이 보기 좋다며 응원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진짜 친구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물론 도움을 주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 친구들도 많다. 심지어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웠고, 감사했다. 내가 도울 수 있어 기뻤던 친구들은 나의 도움을 정말 가치 있게 여겨주는 친구들이었다. 나의 거절을 서운하게 여기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의 도움을 그저 나에게 '당연히 받아야 할' 호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난 되도록이면 일에 있어 '대체 가능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뜻이 아니다. 나만의 색을 가지고, 실력을 인정받는 일은 가치 있는 일이다. 다만 '일'로써만 나의 삶을 채우는 것은 미련한 일이기에 일에 있어, 조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겠다는 것이다.
거절을 한다는 것은 내 삶에서 조금 더 가치 있는 일을 생각하고 집중하게 만드는 일이다. 부탁한 이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그 마음을 하찮게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거절을 염두해 둠으로써 '나'라는 사람의 기본적인 행복 권리를 지키고 삶의 우선순위를 끊임없이 확인하고자 하는 것이다.
거절을 하지 못해서 오늘도 꾸역꾸역 타인의 시간을 대신 살고 있는 당신에게 묻고 싶다. 부탁받은 일을 한다고 밥을 굶진 않았는지, 괜히 찝찝한 마음에 억지로 시간과 에너지를 쓰고 있진 않은지. 깍쟁이처럼 '나'의 일만 하라는 것이 아니다.
'거절'이라는 절차를 통해 당신의 내면을 좀 더 깊이 들여다 볼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당신은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맘에도 없는 일을 하면서 오늘 저녁을 보낼 것인지, 스스로에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오늘 저녁을 보낼 것인지 선택하는 것은 당신 몫이다.
부탁받은 일을 하는 것이 '가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세상에 당신 자신만큼 중요한 사람은 없다. 당신의 삶의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사람 또한 당신 '자신' 뿐이다. 그러니 거절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오늘도 난 거절을 했다. 과로 때문에 좀 쉬어야 하고, 감기 기운도 있는데 누구든 대체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피로를 누적시킬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네가 꼭 해야 하는 일이야. 너 밖에 할 사람 없어." 라며 일을 부탁한 그 사람은 피로로 엉망진창이 된 나의 얼굴을 보자마자 1분도 되지 않아 이를 더 잘 해줄 다른 사람을 찾아냈다. 그리고 아프다는 내게 메시지 하나 보내지 않았다.
온전히 날 위한 하루를 보내고 난 저녁, 아프다는 내 말에 친구가 병문안을 왔다. 몸보신엔 고기를 먹어야 한다며 고기를 사주고, 약을 챙겨 주었다. '나 밖에 할 사람이 없는 일'을 하지 않아도 별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친구에게 따듯한 '위로'를 받고, 그간의 밀린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이야 말로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나의 거절을 거절하는 사람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거절하지 못해 힘든 당신에게, 작은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