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와 나

by 낙낙

상업 소설에 절여진 내가 아주 오랜만에 정제된 순수함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언제나 있는 어지러운 기교를 떠나 딱 있을 것만 있는 아주 미니멀한 작품을 찾아다니는 순간이 온 것이다.


디테일이 많은 옷을 찾다가도 미니멀한 셔츠나 청바지를 입는 그런 시기.


너무나 맑고 투명해서 때론 내 마음이 비춰 보이는 동화가 내게는 미니멀 스타일이었다.


1.


동화를 전문적으로 배워볼만한 기회는... 아쉽게도 없었던 것 같다. 나름 선택 과목으로라도 수강을 해보려 했었던 것 같은데. 아쉽게도 내 학번의 수강 과목엔 동화책과 관련한 내용은 없었다.


그나마 스쳐 지나간 경험이라면 동화..아니 그림책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림과 글의 비중이나 역할에 따라 책을 분류한 강의였는데, 그림책의 그림이란 결국 이해를 돕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그림의 역할이라는 점은 제법 흥미롭게 다가왔다.


그 뒤로 실제 동화책 여러권을 살펴보며 과연 그림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었는지 나름대로 살펴보며 동화책을 읽었다.


배우면 다르게 보인다고, 처음으로 시어에 대해 배웠을 때처럼 그림책 속 그림이 사뭇 다르게 느껴졌다.


2.


문학을 즐기는 사람의 입장에서, 독서는 일종의 대화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작가가 말을 걸었고 독자인 나는 스스로 그 질문 구덩이 속에 들어가 질문, 혹은 사견을 떠올린다.


양방향도 아니고, 실시간도 아니지만. 작가들과 제법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내게 시란, 그래서 문학이었고. 그림책도 이제는 문학이다.


그림책, 동화 같은 책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간단해야하고 쉬워야하고 경우에 따라선 설명하고픈 내용까지 무겁지 않게 담아야하며, 명료하게 아이들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새로운 단어를 깨우치게 해줄 수 있어야한다.


그런 의미에서 책이 하는 일은 교사와 다르지 않다.


소설의 문학은 대담하고, 때론 공격적이고 때론 2줄의 문장에 1장이 넘어가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반면 동화의 질문은 친절하면서도 정겹다.


손을 잡고 이끌어주듯 친절하면서도 동시에 정답 만큼은 알려주지 않는다. 마치 무엇을 생각하든 네가 맞다는 것처럼 동화의 간단함은, 물론 내용적인 가벼움도 있겠지만.


한편 뻗어나갈 가지를 위한 공간임을 알게 되었다.


아, 동화도 그림책도 결국 문학이구나.


직업적인 이유도 있고해서 난 동화책이나 그림책을 제법 자주 찾아보게되었다.


그리고 동화책에서 배우게 된 점도 많다.


3.


동화는 아이들을 너무 잘 안다. 아이들이 뭘 읽고 싶어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가령 소방차 모양으로 책을 만들거나, 손가락 인형이 있다거나, 심지어는 가나다라의 모양을 몸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하며 교묘하게도 학습이란 것을 숨겼다.


흔히 교육과정을 녹여낸다는 말을 하곤 하는데, 동화의 구성 그 자체가 한편의 교육과정과 비슷했다.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생각하고, 이를 쪼개고 녹여내어 그림을 그리고, 글을 만들어 낸다.


주조의 과정은 모든 문학이 거치는 일이겠지만 동화책 만큼은 그 형태가 장난감과 비슷해 보인다.


정말 다양하게 만들어지는 요즘 동화책, 그림책을 보노라면 흥미롭기 그지 없다. 물론 흥미 위주로만 책을 꺼내어 보는게 아쉽긴 하지만.


동화책은 그래도 된다. 읽히는게 책의 목적이라면 이미 책을 꺼내준 순간부터 그 효용을 다한 것 아닐까.


덮여 있는 책보다야 펼쳐진 동화책이 아이들에겐 더 나을테니.


4.


최근 동화의 기능은 많은 부분이 영상 매체로 넘어간 것이 느껴진다. 찾아보기 전엔 몰랐는데 영상 교육 자료가 정말 많았다.


동화가 요구하는 대부분의 기능을 비롯해서 심지어는 글 읽는 연습까지 시켜줬다.


눈으로 활자를 쫓아가는게 더 중요하다 생각하는 나로서는 참 아쉬운 부분이다. 물론 디지털 네이티브로 태어난 신시대의 아이들에겐 책이란 단순히 구시대의 유물일지도 모르지만.


인형보다 게임기를 원하게 된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까.


그리고 최근 강세를 보이는 학습만화의 재미는 참.. 동화책을 지루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정도니.


이런 미디어 매체의 강세 속에서 동화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동심을 찾아 헤매는 나같은 어른에게만 수요가 생기는 것은 아닐까?


5.


물론. 그럼에도. 동화의 효용성은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활자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안에 작가의 생각이 담기는 한 동화는 여전히 아이들이 읽어야할 통과 의례가 될 것이다.


책이란 결국 단순한 지식 전달이 끝이 아니기에. 단순한 지식 전달로 끝이날 것이었다면 영상은 동화책의 위치를 완벽히 계승했을 것이다.


학생들이 나와 같은 관점에서 동화책을 읽기는 어렵겠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보석을 찾아낼 수는 있을 것이다.


참 아쉽지만, 국어라는 교과는 날이 갈수록 예술이 아니라 빠르게 읽고 내용을 찾아내는 방법을 학습하는 기술적인 교과가 되고 있다.


나조차도 글을 읽을 때 주제와 중심내용을 빠르고 쉽게 찾는 법을 알려주다보니 정작 문학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가 쉽지가 않다.


막상 알려주어도 나름대로의 깨달음은 학생들에겐 필요 없는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른다.


어느새 문학의 감성은 오그라드는 것으로 여겨져 서서히 사람들이 삭막해지고 있으니까.


세련된 모양을 갖추지 않으면, 정제되어 문학의 모양을 하지 않으면, 어쩌면 우리의 문학은 누군가의 비웃음 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동화를 간단한 것으로 여겼던 내가 하는 말이니 아마 맞을 것이다.


6.


동화는 아름답다. 아름답고 고매한 문학이다. 형식이 쉽고 문장이 간단하여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니.


말라가는 감성을 충전해줄 동화같은 글은 어쩌면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도 필요하지 않을까.


인형을 모으는 사람이나, 만화책을 모으는 사람을 보면서 나에게 동화책을 선뜻 건네주셨던 선배님이 떠오른다.


나이가 차니 뿌리가 마른 식물처럼 잎은 날카로워지고 햇빛에 적응하지 못해 온마음이 푸석해지고 있었는데.


선배님이 주셨던 그 동화책은 어쩌면 내 마음에 물을 채우고 가라는 진지한 조언이셨을지도 모른다.


그림책이던. 재미를 위한 팝업북이던. 내용이 얼마나 유치하던지.


조금씩 젖어드는 마음의 쉼터로서, 우리는 동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처럼 아침에 동화책을 한 권 읽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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