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되고 교복을 입으며 든 생각은 대체 이걸 왜 줄여 입을까?에 대한 제법 진지한 생각이었다.
자고로 옷이라 함은 신체를 보호하고 나를 나타내는 방법. 그 이상으로 옷에 무언가 다른 기능을 할 필요가 있을까.
옷이란 것으로 나의 개성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교복을 입고 나서 한참 후에야 깨닫게 됐다.
1.
옷을 사는 건 내겐 제법 어려운 일이었다. 지방 출신이기도 하고 브랜드도 많고 알고 있는 브랜드라곤 신고 있는 신발 정도뿐이던 내게 옷사기란 그저 일련의 귀찮은 과정이었을 뿐이다.
옷이란 교복의 다른 형태. 뭐... 조금 더 기능을 추가하자면 땀이 많이 흐르면 문제가 생길 테니 그런 땀을 좀 막아주는...뭐 그런 정도?
하지만 언젠가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에 나왔던 것처럼, 쓸만한 녀석들은 대부분 옷에 관심이 많았다. 한눈에 보기에도 나와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고 일상복도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이 어찌나 멋져 보이던지.
나는 고등학생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용돈으로 옷을 샀다.
2.
하지만 처음 옷을 산 내가 제대로 된 옷을 살 리가 없다. 이상하지만 않으면 오케이. 조금 애매한 옷도 들어가니 오케이. 내가 옷을 처음 살 때는 나에 대한 이해가 없었으니 사실 엄마가 사준 옷보다도 손이 가질 않았다. 애매한 동경과 꿈이 섞여 사실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옷을 못 입는다는 글에 들어가도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고, 유행하는 것들을 아무런 생각 없이 받아들이는 시기였다.
3.
그 뒤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점점 내가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많아졌고 처음으로 맞이한 겨울은 두렵기만 했다. 그때 당시 나는 겨울 옷이란 게 없었다. 그냥 티 하나에 플리스 하나. 그전까진 교복이란 든든한 물건이 있었고 따로 겨울 외출을 할 일이 없었으니....
난 그 흔한 후드티도 없었다. 선배들에게 밥을 얻어먹을 때 옷 좀 차려입고 오라는 말에 난 심각성을 인지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산 내 겨울옷. 북슬북슬한 기모가 든 맨투맨 2장. 원플러스원으로.
따뜻하고 뱃살도 가려주고 무난한 색감에 패딩이랑 입기도 좋고... 뭐 패션 별거 없네란 생각을 했던 시기다. 이 당시 유행 아이템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신발은 슈퍼스타. 바지는 까만 청바지인지 면바지인지. 패딩은 고등학생 때 입었던 등산용 아이템. 패션이란 게 인생에 없던 사람은 당시 저게 최선이었다.
4.
두 번째 변화의 시기라면... 역시 다이어트겠지. 난 고3 당시 96킬로그램 정도 나가는 헤비급 체형이었다. 좀 적나라하게 말하면 돼지였다.
허리는 36. 상의는 100에서 105. 이 가분수 체형을 벗어나려면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난 피나는 기간을 이겨내고 72킬로까지 살을 뺐다.
그 결과 얻은 보상은 100에서 95로 내려온 상의 사이즈. 줄어들지 않은 허벅지 탓에 32에서 33 정도 되는 허리 사이즈. 작아 보이지만 36과 33은 막대한 차이가 있다. 이건 벨트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급하게 살을 빼서 당장 여름옷이 없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무신사를 사용해 옷을 샀다. 까만 반바지, 베이지 반바지. 역시 원플러스 원. 하지만 당시 무신사 랭킹이 상당히 높은 바지였기에 유행 정도는 따라갔다고나 할까.
그리고 이때쯤부터 보세옷과 브랜드 옷을 구분하게 됐다. 당시 정말 애용하던 브랜드가 있었는데 운영을 중단하고 마음의 고향을 잃었던 기억이 난다.
5.
그리고 돈 없는 내게 유니클로는 그야말로 뭐랄까... 백화점이나 다름없었다. 싸고 품질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장점은 입어볼 수 있다는 점.
살을 빼고 난 유니클로를 참 많이 들락거렸다. 그렇게 내린 결과가 난 재킷이 안 어울려였지만 그래도 유니클로는 좋았다. 양말부터 목도리까지. 심지어 모자도 팔았다. 가끔은 그마저도 없어 보세를 쓰기도 했지만.
이 무렵부터 가성비 좋은 곳들을 많이 찾아다녔다. 그리고 그렇게 1년. 내 옷장은 트리플 에이, 챔피언, 등 각종 값싼 티셔츠들이 즐비했고 이 무렵부터 색상 조합이란 것에 열을 올린 것 같다.
체감이란 것은 중요한데 나는 이 무렵부턴 검은색 옷을 거의 사지 않았다. 어디나 잘 어울리는 옷. 약간 아집이지만 어디나 잘 어울리는 건 하나만 있으면 되지 않나란 생각이 강했다.
그 당시는 돈이 없었으니... 색상별로 하나만 사자란 생각이 있어 놀랍게도 여전히 내 옷장엔 그때 샀던 블랙진 하나뿐이다. 디자인 유나이티드였나. 요즘은 매장도 보이지 않는 블랙진.
이 당시엔 가짓수를 늘리기보단 좀 나중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을 사는 게 목표였다. 그리고 이쯤 해서 난 내가 갈 길을 하나 정했다.
6.
아메카지는 뭐랄까 아무것도 없었던 내 패션 세계에 초석을 닦아준 스타일이다. 기준점이라고나 할까. 난 아메카지룩을 입기 위해 리바이스 청바지를 사고 닥터마틴을 샀다.
덤으로 이때부터 내 옷장은 네이비 일색이 됐고 군복 역시 늘어났다. 패딩이 싫어서 산 덱재킷. 항공점퍼. 진청바지와 블랙진. 안감에 패딩이 들어간 데님재킷과 닥터마틴 부츠.
남들은 어떨지 몰라도 난 제법 패셔너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때 난 너무 딱딱하게 옷을 입었다. 무조건 아메카지! 이런 사상에 물이 들어서 딱딱한 색을 찾고 오히려 유행과는 조금 멀어졌다. 가장 큰 도전이 스트라이프 티였을 정도로.
멋 부릴 아이템뿐이니 내 신발은 항상 닥터마틴이 됐고 어쩐지 돌려 입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스타일이 점점 딱딱해졌고 뭔가 그러다가 대학 생활. 청춘이 끝났다.
그 뒤는 군대. 그 뒤는 더 암울한 직장인 생활뿐.
하지만 어쩐지 내 옷장은 점점 커지고, 색채도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양해지고 있다.
나는 대학 생활 내도록 노래를 불렀다. 밴드의 보컬이었고. 지금은 애석하게도 그냥 직장인이지만. 어쩌면 나는 밴드의 보컬로 뿜어냈던 나의 예술혼을 옷으로 다 뿜어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옷 입기와 노래하기.
결국 다 자신을 이해해야 가능한 것들이니까.
나이가 서른을 향해가지만 나는 이제야 막 나를 이해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내게 옷 입기란 더 이상 복잡한 과정이 아니다. 나를 찾는 즐거움이고 나에 대한 표현이며 너무나 즐거운 일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