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정리는 반년에 한 번 정도, 잠시 나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그래서 이 옷 계속 입을 거냐? 그것도 아니면 버려? 유행 따라 산 옷이라 이젠 필요 없지 않나?
자문하는 것도 모두 옷을 산 나의 자업자득이니 어려운 평가를 내리는 수밖에 없다.
1.
옷은 좋지만 공간을 차지하는 만큼 짐이 된다. 몇 차례 합리화의 과정을 거쳐 데이트할 때 입을 옷, 출근할 때 입을 옷, 운동할 때 입을 옷을 나누고 나면 같은 종류의 옷이 우르르 생겨나 처치곤란해지기도 하고.
퀄리티를 중요시하며 쇼핑을 한 이후에 산 옷들은 버리기도 애매한 경우가 많다. 그중 가장 아쉬운 건 역시 관리를 잘못해서 망가진 옷들인데 대게는 데님이나 햇빛에 취약한 면 소재들이다.
애초에 울이었다면 관리를 했을 테니 아쉽지도 않으련만. 튼튼한 면소재는 변색에도 강하겠지 싶어 막굴리던 옷들은 대체로 1년은 버티다가 3년쯤 되는 해에 망가졌다.
물결무늬가 예쁘던 셔츠는 햇빛에 빛바랜 셔츠가 되어버렸고 햇빛 워싱을 받은 샴브레이 셔츠는 그냥 하늘색 셔츠가 되기 일보직전이다.
자외선이란 이토록 무섭다. 선크림을 덕지덕지 바르면서도 이제야 뒤늦게 깨달아버렸다.
2.
옷장 한편에 걸려있는 기다란 코트들, 니트, 카디건. 이상하게 손이 가지 않으면서도 하나씩 쟁여두게 되는 것들. 직업적 이유를 뒤로 하고 슬슬 어리지 않은 사람이 되면서 격식을 차린 옷들이 필요해진다.
정리를 할까 싶으면서도, 또 언젠가 입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 최근 제법 잦았던 결혼식이나 경조사에 챙겨 입을 옷들만 남겨둘까 싶고...
머리를 긁적이다 결국 내버려 두지만. 이 망설임이 아직 내가 어른은 아니라고 말한다.
아버지라면 어떻게 했을까. 형이라면 어땠을까. 아직 나는 옷 정리를 할 때도 어른이 필요하다.
3.
얼추 정리가 된 옷들을 보고 남은 옷들을 살펴본다. 몇 차례 폭풍을 견뎌낸 옷도 있고 간신히 정리를 피한 옷도 있다. 모두 살 때는 설렘을 가지고 있었는데 막상 손에 들어오니 와닿지 않는 것도 참.
변덕이라기엔 살 때 고민을 많이 했고, 그냥 버렸다기엔 한 두어 번쯤 입었나. 세상일 다 그렇듯 옷 사는 것도 녹록지 않다.
물론, 이건 절대 버릴 수 없다며 꽁꽁 숨겨둔 옷도 있다. 한 번 입을 때 하나씩. 세탁도 아까워서 대체로 벗고 있는 옷들이다. 이런 녀석들을 살펴보면 여전한 설렘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딱히 정해두진 않았지만 스스로가 옷에게 무의식적인 소비기한을 정해둔 건 아닌지 생각했다.
겨울의 한철을 인내한 스웻팬츠.
90퍼센트쯤 세일을 받아 샀던 숏 피쉬테일 재킷.
입고 다닐 땐 평생 입을 줄 알았는데.
4.
옷 정리를 마치고 옷장을 살핀다. 여전히 가득 찬 옷들. 하지만 버릴 옷은 없다. 모든 옷들이 다 존재의 당위를 위풍당당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치노팬츠는 출근복이라고 그러고, 패딩은 달력을 가리키고, 청바지는 휴일을 가리킨다. 조용히 숨 죽이는 니트를 몇 개 들었다가 다시 내려놨다.
그래 오늘 이별은 이쯤 하자. 버릴 마음이 없는 걸 보니 아직 입을 날이 조금 남았겠지.
내가 버려놓고도 아쉽다. 세상에 잘못 산 옷이 어딨 는가. 다만 때론 손에 든 걸 놓아야 새로운 것을 쥘 수 있듯, 보낸 옷들보다 좋은 옷을 만나길 바라야지. 아마 내년 이맘때쯤 또 옷을 버릴 때면 나의 취향도 같이 변해있을 테다.
물론 어쩌면 날씨도.
온난화 덕에 9월 달에도 재킷 하나 걸치지 못하는 날씨다. 조금 더 지나면 패딩이 필요 없어지려나. 이번 패딩은 조금 얇은 걸 사볼까.
나의 세대에서 빙하기를 볼 일이 있을까 잠시 고민해 봤다. 설마 이만큼 더운 반동으로 겨울이 더 추워지진 않겠지.
쓸데없는 말이 많아지는 걸 보니 아직도 마음 한편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