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기

by 낙낙

부끄럽지만 나는 소심하다. 아니 소심한 것이 왜 부끄러운 일이겠는가. 나는 소심해서가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부끄러웠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걸기도 힘들었고 어쩌다 일이 풀리나 싶어도 중요할 때 도망을 갔다. 어찌어찌 스스로를 자평해 보자면 나는 아마 회피형의 사람인 것 같은데 이렇게 또 하나 나를 설명하는 간단한 단어가 추가 됐다.


회피형, infp, 또 어떤 것들이 있더라. 모아놓고 보면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천인공노할 사람이 되어 있다. 뭐 얼추 설명을 들으면 내 얘기가 맞긴 하는데, 괜히 싸잡아서 욕을 먹는 것 같아 구태여 찾아보진 않았다. 어라 이것도 회피형의 특징인가?


요즘 세상이 빠른 건 알고 있지만, 사람을 만나는 것도 효율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젠 아예 자기소개를 할 때 '안녕 난 회피형 인프피야'라고 어디 써붙이고 다녀야 할 판이다.


... 물론 난 소심해서 그런 말을 하고 다니진 않겠지만.


이렇게 소심한 나도 목소리를 크게 낼 때가 있다.


바로 노래할 때다. 이때만큼은 나도 회피형이 아니게 되고 인프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1.


중학생 무렵, 나는 아주 진한 홍대병에 걸려있었다. 아이돌들을 배척하고 빌보드를 찾아들으면서 주변의 수준 낮은 음치들과 나를 차별화하려고 노력했다.


그때는 다 그랬던 것 같다. 독창적이고, 유행에 따라가지 않는 줏대. 그래 나는 그 고집스러운 줏대에 빠져 있었다.


당연하지만 이런 놈들은 대체로 친구가 없다. 남들이 하는 걸 해야 친구가 늘 것 아닌가. 내가 졸업한 학교는 크게 공부를 열심히 하는 곳은 아니었으므로 내가 친구를 사귀기 위해선 남들이 다 하는 뭔가가 필요했다.


처음부터 그게 노래였던 건 아니다. 운동도 해보고, 뭐 나름 게임도 해보고, 축구도 하려고... 일단 시도만 해봤다. 그때 그런 것들이 잘 풀렸으면 그걸 했을 텐데 아쉽게도 운동을 잘하는 형과 달리 내 운동 신경은 기울기가 마이너스인 직선 그래프였다.


어째 지금도 꾸준히 운동 신경이 줄어드는 기분이다.


운동도 안되면 게임이라도 잘했어야 했는데 당시 내가 즐겨하는 게임은 일랜시아나 마비노기 같은 느긋한 알피지였던 데다가 이 지독한 3d 멀미로 기묘하게 유행하는 게임만 하면 잠이 쏟아졌다. 이대로 남들과 다르게 쭉 가야 하나 망설이던 찰나.


당시 다니던 공부방의 선생님이 내 노래를 듣고 칭찬해 주셨다. 노래를 잘 부른다. 목소리가 좋다. 그런 것도 아니고 박자를 정말 잘 맞춘다고.


그냥 많이 들어서 귀에 익었던 거였을 텐데. 나는 그때부터 노래가 좋아졌다.


2.


물론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건 달라서, 그 당시엔 그냥 되는 대로 노래를 불렀다. 노래를 부르는 방법론이란 게 있다고 생각조차 못했고 그냥 주변에서 잘 부른다는 녀석들 노래를 듣고 아 저게 잘 부르는 거구나... 혼자서 생각하는 정도.


우렁찬 소리를 내면 잘 부르다고 칭찬받았던 시기다. 거기에 하필이면 소몰이가 유행할 때라 낮은 톤의 목소리는 노래 실력에 가산점을 받았다.


그렇게 나는 노래를 잘하는 것이란.


1. 일단 낮은 목소리

2. 우렁차게 뻗어나가는 음량

3. 주변 인의 칭찬.


어라 이거 완전 퉁퉁이 아니냐.


3.


어쨌든 나도 나름 노래를 부르다 보니 애들과 노래방만큼은 놀러 갈 수 있었다. 다들 고만고만한 실력이고 어쩌다 한 번 목청이 터지면 그날은 축구 경기에서 슛을 넣은 것처럼 보낼 수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내게 노래는 그 정도였다. 남들과 어울리는 수단.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점은 내가 드디어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단 것.


고등학생이 되고 나는 기숙사에 들어가야 했다. 원한 일이었고 장래에 필요한 일이었지만 그게 쉽지는 않았다. 주말마다 친구들은 본가로 떠났고 나는 기숙사에 덩그러니 남겨져 있어야 했으니까.


말은 원래 적었으니 말을 못 해서 스트레스라기 보단 그냥 조용한 기숙사가 어색하고 심심해서 힘들었다. 집에 갈 여건이 되지 않는 스스로에 대한 자조도 조금 있었고.


마침 나는 기타를 칠 줄 알았다. 중학생 때 겉멋이 들어 아버지를 졸라서 산 기타였는데, 마침내 고등학생 때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렀다.


울적한 마음이 싫어 불렀던 Live forever, oasis.


내 목소리가 기숙사에 울려 퍼지는 게 제법 기분이 괜찮았다.


4.


노래는 내게 아주 작은 불씨쯤 되는 열정으로 시작했지만 내 우울증을 장작으로 열정이 커졌다. 아니 그걸 열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조금은 애매하지만 그때 나는 내 마음을 노래로 토해낼 수 있었다.


대부분은 우울함이었다. 우울할 땐 오아시스로.


가끔은 화가 났다. 화가 날 땐 린킨파크로.


아주 가끔 예술적 소양이 빛을 낼 때면 자미로콰이의 노래를 불렀다.


토해낸 게 쌓여서일까. 애들은 종종 내 노래를 들으러 왔는데 관객은 한 여섯 명쯤 되는 작은 공연을 하곤 했다. 2층 침대로 나름 vip석과 일반석이 나눠진 격식 있는 공연이었다


5.


열정이 타올라 내 심장까지 데우기 시작한 건 대학생 때였다. 초등 6년, 중고등 6년, 도합 12년을 조용한 놈으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보컬 동아리에 들어갈까, 아님 밴드에 들어갈까 하다가 아는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다.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난 밴드부에서도 당연히 보컬이었다. 보컬이 부족해 오디션도 없이 덜컥 들어간 밴드였는데 그 당시 신입생에다가 귀중한 보컬 자원이었던 나는 그야말로 칭찬양파였다.


혹시 이 녀석 수틀리면 나가진 않을까 해서였는지 선배들의 칭찬에 어깨가 올라갔고 나는 첫 공연을 아주 시원하게 날려먹었다. 장렬히 산화라도 했으면 멋진 불꽃이라도 칭찬이나 들었을 텐데.


내 첫 공연은 슈퍼노바였다. 시원하게 폭발하고 블랙홀이 됐다.


6.


한순간에 스타에서 구멍이 된 나는 밑천을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을 해야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발성을 공부하고 유튜브에 강의를 올렸던 사람 중 가장 유명했던 더크로스 김혁건 가수님의 강의를 찾아봤다.


거기에 내 키보드 동기가 음을 잡아주며 간신히 음악을 날려먹진 않을 정도로 실력이 올라갈 수 있었다. 정말. 이때를 생각하면 고3 무렵이 떠오를 정도로 열심히 노래를 불렀다.


물론 노래를 열심히 한 만큼 학점이 대신 슈퍼노바가 됐지만.


무엇보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보컬, 밴드부의 보컬이라면 무조건 잘해야 할 새내기 배움터 공연. 당시 인원 수가 턱 없이 적었던 우리 동아리는 한방, 강력한 한방이 필요했다.


놀랍게도 덕분에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소리를 낼 수 있게 됐다. 샤우팅이라고 하는 창법인데. 소심쟁이에 말도 잘 안 하던 녀석이 마이크를 잡더니 샤우팅을 하게 됐다.


말아먹은 공연도 많고 잘한 공연도 많고. 글쎄 내가 훌륭한 보컬이냐면 그건 좀 애매하지만 나는 적어도 큰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됐다.


7.


그 뒤로도 나는 노래를 계속한다. 샤우팅은 이어져 기어이 그로울링이나 스크리밍 같은 언클린 보컬까지 배우게 되며 처음 목표였던 친구 만들기는 이제 보이지도 않지만 목표가 보이지 않는 만큼 노래는 이제 나의 목표 그 자체가 되었다.


대략 고등학생 때부턴 노래를 했으니 거진 10년은 노래를 한 놈이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따르면 나는 슬슬 가수가 되어있어야 하는데... 어째 뜬금없이 선생님이 되긴 했다만.


다행히 이런 상황에도 노래는 나름 쓸모가 있다. 난 앞으로 1년 동안 볼 학생들에게 내 애착 유형이나 mbti를 말해주지 않는다.


대신에 나는 취미가 노래 부르기라고 말해준다. 그럼 이제 또 질문이 날아온다. 잘하냐. 어떤 노래 좋아하냐. 그럼 나는 또 시원한 샤우팅으로 대답을 해준다.


당황한 학생들이 껄껄 웃기도 하고 고개를 갸웃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게 좋은 것 같다.


회피형 infp보단, 노래를 좋아하고 가끔 샤우팅도 하는 선생님이 더 좋지 않은가?


나는 '아 이런 사람이구나'보다


'와 이 사람은 뭐지?'가 훨씬 좋다.


자고로 호기심이란 인간을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준 원동력이고 인간이 인간을 만날 때 전략을 짜는 것보단 호기심을 갖는 게 훨씬 긍정적이니까.


학생들이 나에 대해 궁금해하는 만큼. 나는 아직도 궁금하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노래하기가 질문에 완벽한 답은 아닐지라도 이젠 내 심장을 넘어 삶을 태우기 시작한 노래는 나의 호기심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오늘도 힘들었다. 귀갓길 막히는 도로 안에서 마저 한 곡조를 불러볼까나.

keyword
작가의 이전글문득 옷을 정리하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