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by 낙낙

작가가 되고 싶다. 솔직히 그건 내게 주제넘은 소망이긴 하다. 내가 원하는 작가는, 책을 출간하는 것을 넘어 글로써 다르게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유명하진 않지만 벽모의 묘라는 시가 있다. 자습실 한구석에 아무도 꺼내보지 않던 시집에 실린 시였는데 지금 읽어도 난해하다. 난해시라고 분류되어 있는 걸 보면 내 감상은 정확했고, 내 작가관에 큰 영향을 준 첫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글로 적어놓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의미가 없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으면 무시할 테지만, 발간까지 한 시에 의미가 없을 리도 없고 자습도 잊고 샘솟는 탐구욕이 한 때 내 시야를 가리고 문예창작과도 아닌 국어국문학이 나의 1 지망이 된 적도 있다.


그 뒤로 나는 나름 작가 행세를 해보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작가와 나라는 범부 사이엔 솜털처럼 성긴 공간이 있었다.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려면 갈 수는 있겠지만 일상을 살아가야 하는 내게, 전업 작가로 살 수 없는 나는 '작가'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1.


다양한 작가들이 존재하지만, 내게는 마음의 스승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 일본의 시인 '타와라 마치'는 내게 새로운 가능성을 알려준 사람이다.


나의 형이 좋아하던 '샐러드 기념일'이란 노래의 원작이 되는 한 줄의 시. 하이쿠라고 부르는 일본의 단가인데.


고작 한 줄. 형식에 맞게 적은 그 한 줄 안에는 드라마가 한 편 펼쳐지고 있었다.


연인이 줄 수 있는 특별함이 기념일이 된 것도 좋고, 하필 그 특별함이 샐러드인 것도 좋았고 네가 좋아했던 날을 기념일로 만든다는 이 일상적이면서도 평범한 행위가 내게 준 충격은 실로 대단했다.


사랑하면 샐러드 같은 것도 기념할 수 있지. 그래 삼겹살 데이도 있는걸. 하지만 샐러드 기념일은 내가 정한 날이니까. 한 줄로 시작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생각들.


타와라 마치는 왕자에게 상자를 그려준 조종사처럼. 나의 마음을 쥐락펴락 했다.


그리고 이 것이 내가 생각하는 작가다. 재밌는 글이든 슬픈 글이든, 결국 작가란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겠구나.


2


그렇게 영감을 얻어낸 담백한 한 줄, 나는 샐러드 기념일을 3권이나 사서 닳도록 밑줄을 긋고 포스트잇을 붙이고 필사하고 모방도 하며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려 했다.


누군가는 샐러드 기념일 같은 시가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별이 될 수 없다면 야광별이라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반드시 작가가 아니어도 된다.


작까도 좋고. 자까도 좋다.


3.


예전엔 글쓰기를 즐겼다. 국어 공부 핑계로 시집은 읽어도 맞지 않았고 졸리지도 않았으며 내 어지러운 마음을 정리하는 수단이기도 했으니까. 아무것도 없는 빈 공책을 시로 가득 채우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은 시보단 보고서를 많이 쓰고, 손으론 서명을 많이 한다. 작가가 되려고 한 것 같은데, 아니 하다못해 자까라도 하려고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거가 되어있다. 저거 있지 않은가. 그 어른 비슷한 덩치만 큰 꼰대. 시집보단 법령이나 지침을 읽는 그런 사람.


법령엔 딱히 이야기는 없다. 한국에서 손꼽히는 논리적인 글 중 하나답게.


물론 이 법령이 왜 생겼을까 고민하는 시간은 나름 즐겁지만 전공자도 아니고 법학이라곤 선택 과목 정도로 접한 게 전부이고, 살펴봐야 할 법령이 한두 개도 아닌 나는 진득하게 법령 하나만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법령 몇 가지를 겉핥기식으로 읽고 나면 감수성이 점점 옅어지는 게 느껴진다. 특히나 글을 쓸 때 무의식적으로 번호를 붙여 정리하는 나를 보면 체감도 된다.


다 죽어가는 내 엷은 감수성에 다시 불을 지필 시를 몇 편 읽어보긴 하나 가까스로 좁혀놨던 작가와의 거리가 멀어진 것을 느낄 뿐이었다.


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직업인이고 사회인이면서 작가일 수가 있을까. 정보전달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작가님들은 조사라고 한다 쳐도, 끊임없이 나를 내보여야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작가가 될까.


4.


스스로를 작가라고 여기진 않지만 학생들과 글을 쓰다 보면 느끼는 점이 많다. 어떨 땐 나를 감동시키기도 하고 어떨 땐 본문보다 내가 고쳐준 부분이 많기도 하고 뒤죽박죽일 때도 많지만 학생들의 글은 내게 호기심을 들게 한다.


어떤 의미로 이런 문장을 썼니?


이렇게 할 땐 어떤 생각이 들었어?


두 질문 만으로도 학생들이 내게 건네는 대답은 본문보다 길어질 때가 많다.


아 그래, 너희들이 시인이었구나.


읽어야 하기 때문에 읽고, 고쳐줘야 하기에 고쳐주지만 학생들의 작품은 의욕을 되새겨준 고마운 작품들이었다.


5.


하지만 이제 와서 내가 작법이나 시의 미학을 알려줄 수는 없다. 일단 모른다. 내가.


그래서 요즘엔 학생들이 글을 쓸 때 나도 같이 쓰며 예시처럼 내 글을 보여주려 노력한다. 교과서에서 갑자기 대하소설을 작성하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주제는 소박하게 앞에 서있는 나의 생각과 감정이 드러나게 글을 쓴다.


내가 글을 쓰자 학생들도 따라 쓴다.


아직 좋다, 나쁘다의 두 가지 감정뿐이고 3줄 정도 되는 짧은 글이지만 쓰지 못한 감정은 내게 설명하며 짓는 표정으로 대신한다.


6.


나는 여전히 샐러드 기념일을 좋아한다. 학생들에게도 구절을 읽어주며 어떤 내용인지 물어본다.


한 명씩 대답을 듣고 나의 생각도 들려준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 짧은 한 줄에 그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요?'


대게는 황당해하고 나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야, 한 줄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 작가지.'

'그럼 저희도 한 줄 쓰면 길게 설명할 수 있으니까 작가예요?'

'그렇지.'


다행히 어찌어찌 학생들의 머릿속에는 내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학생들 스스로도 자기들이 작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 누가 작가면 어떻냐. 글을 잘 쓰면 어, 그게 다 작가지 뭐.


내가 글을 잘 쓰냐고 하면...? 글쎄. 대체로 부정적이지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노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