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의 주요 기능 중 하나인데 신체를 보호하는 기능이 있다. 따가운 햇빛이나 영하의 추위라든지, 내가 군인일 때 입었던 작업복 등이 예시이지 싶은데 앞선 예시들은 정말 극단적인 예시들이고 현실적으로 도시에 사는 직장인이라면 내 신체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비나 눈, 흙이다.
1.
나는 비가 싫다. 옷이 젖는 것도 싫고 무엇보다 우산을 들고 다니는게 최악이다. 한 손엔 핸드폰, 다른 손엔 커피.
딱 보행 중 넘어지면 엉덩이 깨지기 좋은 자세가 시티보이의 기본 아니겠는가.
비는 내 시티보이 생활을 방해한다. 빨래를 해야하니 귀찮음까지.
비를 피하는 옷이 있다면 좋을텐데 그런 생각에 옷들을 찾아다니다가 당연한 수순으로 바버 자켓을 알게된다.
옷질을 즐긴다면 모를 수가 없는 자켓인데, 옷 표면에 왁스 코팅을 해서 방수 기능을 살린 자켓이다. 원산지가 영국이라 양복에 잘 어울리기도 하고 기능을 살린 기능성 옷이라는 점에서 어릴 때는 바버바켓을 내 버킷리스트에 넣기도 했다.
가격대 탓에 접근성도 나쁘고 무엇보다 입어볼 매장도 없어서 바버 자켓 구매는 차일피일 미뤄지기만 했지만.
그러다 우연히 아울렛에 들린 날, 바버자켓 할인 이벤트를 하는 매장을 찾을 수 있었다.
50퍼센트 정도를 할인하고 있었는데 매장 크긴 덕인지 제법 괜찮은 상품들이 많이 보였다.
바버자켓 중 짧은 기장의 스패이도 있었고 자세한 이름은 모르겠지만 나일론처럼 바스락 거리는 자켓도 있었다. 다만 구매는 하지 않았다.
2.
바버자켓의 진짜 적은 가격도 아니고, 매장도 아니고, 왁스 그 자체다.
왁스 자켓의 표면은 끈적하다. 만지면 턱턱 걸리는게 녹인 풀이 늘러붙은 촉감이다. 왜 이걸 생각 못했지, 왁스코팅을 했으니까 당연한 결과였을텐데.
무엇보다 그 왁스칠한 옷을 내 옷장에 가져다 두기엔 공간이 부족하다. 그냥 두면 왁스가 다른 옷에도 묻어날 것 같고, 리왁싱도 해줘야하고, 내가 가죽 부츠까진 어떻게 해보겠는데 도무지 이 자켓을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3.
감성과 간지를 버린 대가로 이제 나는 비를 피하기 위해 고어텍스 자켓 같은 방수 자켓을 알아보고 있다. 그런데 어째 이것들도 하나같이 비싸다.
그냥 우비나 뒤집어 쓸까 싶으면서도 그건 또 멋이 안나 싫고...
그냥 미친척하고 바버자켓을 사?
간지하나는 죽여줬는데.
그러다가도 결국 왁스코팅의 압박이 나를 멈춘다.
4.
바버의 장점이자 단점. 바버라는 브랜드가 여전히 멋지고 앞으로도 멋질 이유.
그렇기에 아마 앞으로도 끊임 없이 망설일 바버.
바버자켓은 마치 민트 아이스크림 같다. 세상 사람들의 온갖 질타를 받고, 치약을 먹을거면 왜 돈을 쓰냐는 말까지 들을 정도로 호불호가 극명한 간식.
물론 나는 굳이 민트만 찾아 먹을 정도로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이다. 바버자켓을 찾는 사람들도 그런 사람들이겠지.
사실 비올 때 입을 옷은 많다. 방수가 되는 원단도 많고 유명 등산복 브랜드, 요즘말로 아웃도어 브랜드만 찾아가도 빼어난 기술과 함께 방풍, 방수 기능은 기본 소양처럼 만들어둔 경우도 많아 굳이 비를 피할 때 입을 옷을 찾아야지 하고 옷을 찾지 않아도 될 정도다.
다만 바버를 찾는 사람들은 그래. 비오는 날에도 멋을 포기할 수 없는 진짜 멋진 사람들인거지. 방수 자켓인 주제에 결혼식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자켓이기도 하고.
나 역시 가장 최근 바버자켓을 입은 사람을 본게 결혼식에서 였으니까.
오늘처럼 유난히 비가 오는 날.
바버자켓을 입을 생각에 싱글벙글할 사람들을 떠올리며 내게 포기할 수 없는 멋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 근데 난 안되겠다. 옷이 비에 젖으면 마음이 좋지 않다. 에이 별 수 있나. 평소처럼 반바지에 클로그를 대충 신고 나가는거지.
비오는 날은 시티보이 휴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