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by 낙낙

요즘 교과서엔 만화책이나 애니메이션도 종종 등장한다. 새로운 매체라기엔 이미 등장한 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반항적이고 저항적인 느낌이 든다.


최근엔 바보상자라고 불렸던 텔레비전이 중장년층을 타깃으로 하고 있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라고나 할까. 언젠가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집중하는 사례가 등장하지 않을까.


1.


독서. 필연적으로 교사라면, 아마 지적인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관심이 가는 소재이고 최근엔 자기 관리의 영역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같다.


다만 솔직히 말해 독서가 자기 관리라는 데에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나는 독서가 지적허영심을 채워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잘난 척하기 좋은 수단이라는 거다.


2.


책은 늘 새롭고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해 주고 새로운 식견을 제시해 준다. 다만 요즘은 지식이라고 하는 틀 자체가 세분화되어 똑같은 사회를 다루더라도 누군가는 경제에, 또 누군가는 외교에, 또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한다.


당장 세상에 없던 MZ라는 말만 들어도, 대체 mz란 세대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책들이 필요한 걸까.


가장 두려운 건 mz를 위해 책을 한 권 읽고, mz를 이해했다 말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책을 읽은 뒤 채워지는 만족감과 보람은 엄청나다. 새로운 지식을 얻어낸 순간 나는 작은 학자가 된다. 나름대로 사안에 대해 고찰하고 나의 생각을 덧붙이며.


이게 또 죽여준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고 콧대가 올라가는 이 기분. 밋밋한 내 얼굴이 너드남처럼 보이기까지.


물론.


대체로 많은 전문가들은 책을 한 권 읽은 게 아니라 못해도 책 한 권을 발간한 사람들이기에 독자의 영역에서 끝나는 나와 같은 사람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 순간. 완독 한 그 순간이 위험하다.


3.


독서는 몸만들기와는 다르다. 겉보기 등급으로 초중고급을 나눌 수 있는 몸만들기와 달리 독서는 그 수준을 겉보기로 가늠할 수가 없다.


남이 보기에도 그렇지만, 스스로도 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왠지 독서를 한 나는 잘나 보이고 멋져 보이며 객관적인 판단이 되질 않으니 난 주관적으로 멋진 놈이 된다.


몇 차례 부족한 지식으로 된통 혼난 경험이 생긴다면 더닝 크루거 효과를 좀 더 빨리 알 수도 있었을 텐데.


무식하면 용감하다.


한 권만 읽은 놈이 무섭다.


한 분야에 대해 한 권만 읽은 놈은 무식하고 용감하다.


4.


학생들이 책을 읽는 걸 보면 대체로 만화책이다. 가끔 줄 글도 있긴 한데 대체로는 만화책이다. 질리지도 않는지 독서 시간엔 어림없이 만화책이다. 물론 학교 도서관에 재밌는 만화는 없다.


교육용 만화. 역사 만화. 권수도 장난 아니다. 가장 적은 게 8권 정도 되니 웬만한 끈기 가지곤 완독이 쉽지가 않다.


하나 놀라운 점은 학생들은 어찌어찌 그 긴 만화책들을 읽어나간다는 것이다.


줄글뿐이라면 쉽지 않았겠지만 만화책과 함께하니 어찌어찌 다독이 되고 있다.


줄글을 읽게 만들기 위해 만화책을 금지도 해보고 학급 문고에서 만화를 없애보기도 했지만 학생들의 지대한 관심은 줄글이 만화책을 이길 수 없었다.


5.


학생들은 왜 만화를 읽으면 좋지 않을까. 일종의 인지가 이동해 버리는 것인데, 좋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인 만화에 학생들의 인지가 집중되어버려 전달하고자 했던 내용이 휘발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만화를 읽는 학생들과 말해보면 등장인물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그 만화는 무슨 내용이야?라고 물어보면 만화의 제목을 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교과서에 만화를 다루는 단원에서 이걸 더 잘 가르쳐보자고 생각하게 됐다.


줄글보다 재밌는 만화를 정말 좋은 수단으로 사용하기 위해.


6.


요즘 학습 만화들을 살펴보면 제법 괜찮은 장면들이 많다. 불후의 명작 Why 시리즈부터 수 없이 많은 각종 과학 만화에 역사 만화까지.


사회 수업을 할 때 얼핏 얼핏 들었던 만화 내용이 곧잘 기억이 나는지 아는 체를 해주는 학생도 있었다.


원래 만화를 좋아하는 만큼 나도 따라서 몇 권 흥미를 가지고 읽어봤는데. 이야 이거 생각보다 내용이 괜찮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가 그런 세세한 디테일을 따질 정도로 지식이 있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제법이었다.


생각해 보면 요즘 역사 얘기를 할 만큼 흥행한 작품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내 세대야 대장금이 있었고, 왕건이 있었고, 뿌리 깊은 나무 같은 불후의 명작들이 즐비했으니 자연스럽게 역사에 관심을 가질 수가 있었는데...


최근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관심을 가질 만한 매체가 부족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극이라는 장르가 어느 정도 트렌드에서 물러난 영향도 있을 것이고 일단 퓨전 사극이 너무 많다.


역사는 무척 따분하다.


그럴 수밖에 상상도 가지 않는 옛날 물건들을 억지로 상상하려 해 봐야 이해도 가질 않고, 생활상을 모르니 등장인물에게 공감도 가지 않는다.


좋은 만화 한 편. 어쩌면 지금 세대에겐 우리의 사극 드라마 같은 미디어 매체가 절실한 순간인지도 모르겠다.


7.


물론 만화는 충분하지 않다. 그림이 주된 매체다 보니 놓치기다 쉽다. 시각적 정보도 많아 머리가 돌아가는 느낌도 덜하고, 같은 정보를 전달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처럼 지적허영심을 채워주는 느낌도 없고 어쩐지 보다 가볍다는 느낌도 준다. 한 권으론 부족한 맛이 있고 10권쯤 읽으면 슬슬 일어날 준비를 한다.


이게 중요하다. 만화책은 10권을 읽을 수도 있고, 나름 재미도 있고, 어 이거 기초 공사를 만화로 한다고 하면 제법 결실이 있겠는데?


8.


떠올려 보면 나도 어린 시절 책 대신 만화책을 읽었다. 삼국지를 읽고, 초한지를 읽고, 그러다 익숙해져 역사 소설을 읽고, 그러다가 역사서를 읽고, 최후에는 철학 서적까지 뒤적거렸으니.


물론 모든 사람이 다 나처럼 관심을 가질 순 없겠으나 무작정 피하기만 해서는 슬슬 힘든 시기가 오고 있다. 지금은 전례 없이 만화가 인기가 있는 시기.


나 때는 메이플스토리였지만 지금은 각종 일본 만화들이 자리를 잡고, 파급력을 뽐내고 있다. 긍정적인 현상이냐 하면... 판단은 조금 이를 수도 있지만.


교과서에까지 등장하는 만화를 언제까지고 저항적인 매체로 봐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 조차 만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계시다는 말이니까.


나는 무작정 보지 못하게 막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 만화라도 읽어라. 대신 좀 더 꼼꼼하게.


9.


어쩌다 독서는 자기 관리가 되었는가. 몸처럼 뽐내기도 쉽지 않은 지식의 쌓음이 어떻게 자랑거리가 될 수 있는 걸까.


지대넓얕 같은 지적여보일 수 있는 입문서 붐이 일어나고 주식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얕아 보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만화도 작품인데, 만화 많이 보는 것도 자랑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빠져들다 보면 좀 더 고차원적인 만화도 접하겠고 강철의 연금술사쯤 되는 작품을 살펴보면 길고 긴 철학 서적을 한 편 읽은 것 같은 여운이 남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사이에는 보이지 않게 묻혀있는 지뢰가 있을지언정, 그건 책도 마찬가지니까.


다만 뽐내지는 말지어다. 어딘가에서 만화를 보고 어설프게 아는 지식으로 아는 척했다가는 큰 코다 칠 수도 있으니.


10.


앞선 날 선 말을 보면 알겠지만 나는 독서가 자기 관리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물론 그렇게 말하는 것치곤 나는 여전히 시를 읽는다. 가끔 당기는 게 있으면 긴 글도 좀 읽고, 사색에 잠겨 커피 한 잔과 고통스러운 인지 발달의 과정을 겪기도 한다.


나는 이 과정을 애석하게도 내 교양 수준을 올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좋은 노래가 나왔으니 한 번 들어볼까?


그래 딱 이 정도의 느낌이다. 내 취향에 맞는 글이 나오면 계속 읽겠지. 문해력, 문장력, 등 책이 헬스도 아니고 자꾸 뭘 기르려고 읽어야 하나.


운동을 하면서 느끼지만 결국 운동처럼 힘든 일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해야 한다. 거기까지 다다르려면 나의 무의식이 운동하는 시간을 제법 긍정적인 일로 만드는 수준까지 가야겠지.


그 사이에 만화책이 껴있으면 어떨까. 처음엔 만화였다가 다음엔 판타지였다가 마지막엔 옛날 소설들을 읽으며 지금에 대해서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 걸리겠지.


한 10년쯤 걸리려나. 사람이 글자만 보고 살 수는 없으니.


그런데 책 읽는 게 운동도 아니고 독서한다고 돈 주는 것도 아닌데 거기서까지 효율을 따져야 하나.


하루에 나오는 영상이 수천 개는 훌쩍 넘길 것이다. 좋든 싫든, 접하는 콘텐츠가 다르고 노출된 문화가 다른데 어떻게 나와 지금의 아이들이 같은 세대일 수가 있을까.


이런 생각 때문에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한숨을 쉬려나.


이러다가도 언젠가는 생각이 바뀔지도 모른다.


아득바득 책을 읽히려 알 수도 있고, 효율성의 구덩이에 나를 던질지도 모르지.


아고 머리 아프다.


얘들아 그냥 만화책이라도 일단 많이 읽자.




keyword
작가의 이전글비와 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