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8일. 화
심정지 이후, 사람들이 내게 건네는 말들이 있다.
“오래 살겠네.”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이야.”
“덤으로 사는 인생이니까, 이제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좋은 일 하면서, 재밌게 살아.”
말은 고맙지만,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심장이 멈췄고, 임상적으로는 죽었다가 살아난 것이지만, 이상하리만치 충격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다. 경찰청에서 공개한 CCTV 영상 속 나는, 달리다 나무토막처럼 길바닥으로 쓰러졌다. 순식간이었고, 기억도 없다. 아내와 슈가에게 손을 흔들고 출발했던 아침과 다음 날 중환자실에서 눈을 떴던 순간. 그 사이의 시간은 통째로 비어 있다. 죽음이라기보다,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돌아온 기분이다. 블랙아웃 같은 1박 2일.
만약 그날 내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가족이 가장 슬퍼했겠지. 지인들은 장례식장에서 잠시 나를 떠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곧, 모두는 제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늘 그랬듯, 삶은 계속되고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굴러간다. 나도 그렇다. 가족이 아닌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수없이 참석했지만, 지금까지 가끔이라도 떠오르는 사람이 얼마나 되던가.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누군가는 떠나고, 남겨진 사람들은 곧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 흐름이 야속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죽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게, 보통 사람들의 삶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동안 어떻게 살 것인가. 예전엔 늘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며 살았다. 워커홀릭이라는 말도 종종 듣곤 했다. 일을 위해 오늘을 미뤘고, 준비와 투자라는 말로 많은 것을 보류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살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즐겁고 기분 좋게 사는 걸까, 삶의 의미와 목적을 충만하게 느끼는 걸까. 이제는,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내 삶을 위해 살고 싶다. 가족들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멀리보다는 가까이에서.
그리고, 다시 달리고 싶다. 심장이 뛰고, 숨이 차오르고, 땀이 흐르면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행복이 어쩌면 거창한 게 아니라 꾸준히 달려가는 중에 문득 느꼈던 그 감각 같은 것이라면, 나는 달리기에서 행복을 만난 셈이다.
새로운 삶은 몸에서 시작한다. 중환자실에서 깨어났을 때, 의사에게 가장 먼저 물은 것도 그것이었다. “제가 달리기를, 장거리 마라톤을 다시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은 새벽 운동을 쉬었다. 어젯밤 늦게까지 정읍 일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평생을 동학과 전봉준에 바쳐온 이광재 소설가가 정읍시에서 동학 대상을 받을 수 있도록, 사람들을 만나서 부탁을 드렸다. 다시 살아나,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참 고맙고,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