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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Aug 30. 2023

첫 운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십 대 초반에 면허를 딴다. 하지만 나는 생각이 좀 달랐다. 그렇게 빨리 딴 면허를 장롱에 보관하는 대신 국가에 좀 더 맡겨놓자는 주의였다. 어차피 안 쓸 거니까 말이다. 실제로 나는 일찌감치 차를 사고 싶다거나 여행을 가고 싶다는 욕심이 별로 없었다. 이십 대 후반까지도 그 생각은 바뀌지 않고 중고로도 차를 사는 일은 없었고, 여행을 갈 때에도 면허가 있는 친구들이 운전을 했기 때문에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었다(민폐인 것은 안다).

정말로 필요하게 된 때는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부터였다. 부서에 배치되면서 받은 여러 질문 중에 유일하게 막힌 것은 면허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아이스 브레이킹용 질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인수인계를 받으면서 곧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우리 팀의 주 업무는 지방에 흩어져 있는 물류 센터를 관리하고 운영에 차질이 없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관리 항목에는 컴퓨터뿐만 아니라 서버에 연결된 상태로 사용되는 다양한 장비들도 있었다. 그 말은 즉 장비에 문제가 생겨 네트워크가 끊기고 원격으로 처리할 수 없는 일이 생기면 팀원 중 누군가가 그곳으로 달려가 점검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뿐만 아니라 분기마다 정기 점검이라는 명목으로 가깝게는 고양부터 멀게는 여수, 창원, 심지어 제주도까지 지방 곳곳을 돌면서 모든 물류센터의 운영 현황과 장비 노후화 정도를 체크해야만 했다. IT 운영개발자로 들어간 내가 기대한 것은 마음은 조금 불편해도 몸은 편한 사무직이었는데 알고 보니 밥 먹듯이 출장을 가는 장돌뱅이 인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다행히 면허가 없다고 당장 일을 할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출장이 많다고는 하나 매일같이 가는 것도 아니었고, 가더라도 회사에서 KTX나 택시 등 교통비는 지원해 주었으므로 택시가 다니는 곳이면 이동하는 데 문제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산이나 마산처럼 멀고 후미진 곳은 주로 선배들이 갔고 나는 교통이 편리하고 가까운 성남이나 고양으로 다니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면허가 없어도 되겠지… 진짜 필요하면 따야겠다고 생각하고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는 상황이 찾아왔다.

팀은 내가 입사하기 전부터 다른 회사의 대형 프로젝트에 입찰을 한 상태였는데 우리가 낙찰받았다는 소식을 받았다. 그 회사도 우리처럼 지방의 물류센터에 뿌리를 두고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문제는 프로젝트의 내용이 그 물류센터들의 시스템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설루션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시스템을 전환한다는 것은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물류센터의 pc나 장비 같은 인프라부터 네트워크 연결망, 소프트웨어까지 전부 교체하는 것이므로 우리 팀 전체가 내려와서 장기간 작업을 해야 끝마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물류센터 주변에서 숙박하면서 차로 왔다 갔다 하며 일을 했다. 평소 출퇴근할 때에는 선배들이 운전대를 잡았지만 새벽이나 퇴근 후에 긴급하게 연락이 와서 다시 들어가 봐야 하는 일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처리하는 것은 막내인 내가 도맡아서 해야 했고 주로 어플로 택시를 잡아 들어갔다. 대부분은 택시가 잘 왔지만 밤이 깊었거나 타이밍이 맞지 않을 때면 몇 십분 동안 서서 기다리는 때도 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발생하자 부장님을 포함한 선배들도 넌지시 면허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말하기에 이르렀고 나는 곧바로 면허를 따야만 하는 부담감을 안고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학원은 신도림에 있었다. 서울 시민이면 알 수도 있지만, 이 일대는 일반 운전자들에게도 주행 난이도가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도로가 들쭉날쭉하며 위로는 마포대교가 있고, 이 주변이나 외곽에 살면서 출퇴근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아 평일이면 전쟁이 벌어졌다. 하지만 어차피 면허를 따고 운전을 할 거라면 이 정도는 통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으므로 오래 고민하지 않고 바로 2종 보통으로 신청했다.

며칠 뒤 학원에서 3시간짜리 필기 수업을 들었다. 수업 전에 선생님은 필기시험은 면허장에서 각자 신청해 치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수업을 진행했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처음 10분은 교통 신호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한문철 TV의 한 장면처럼 도로 위에서 겪었던 황당한 일들을 늘어놓더니 그 운전자를 막 욕하고는 다시 돌아와 수업을 하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시험장에 가는 길에 수업 때 들은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는 게 없었고 대신 유튜브 족집게 강의를 보고 합격했다.

그다음에는 장내 주행 교육을 며칠 받은 후 시험을 치렀다. 1종 보통의 난관이 오르막 구간이라면 2종 보통은 T주차인데, 교육 내내 연습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아서 결국 시험을 보는 중에 20점이나 깎이고 말았다. 그러자 장내에 서있던 안전 요원들이 죽어가는 시체를 발견한 하이에나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를 꽉 물고 집중력을 발휘해 그 뒤로 한 번도 실수하지 않으면서 합격할 수 있었다. 커트라인에 딱 맞춰서 통과한 것이 얼마나 통쾌했는지 뛸 듯이 접수실로 들어가 도로 주행 교육일을 예약했다. 지금까지 아주 순조로운 여정이었고 면허 취득까지 앞으로 남은 과제는 도로 주행뿐이었다. 그런데 이때 사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틀 동안 도로 주행 교육을 듣는 것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하필이면 시험을 예약한 날부터 회사 일이 바빠지면서 학원으로 시험을 치러 갈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심지어 일은 줄어들 기미도 없이 여름철 강물처럼 계속 불어나는 바람에 자그마치 두 달 가까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하며 시달려야 했다. 그래서 결국 첫 도로 주행 시험은 교육을 듣고 나서 두 달이 지난 다음에 보게 되었다.


시험 날에는 교육 때 들은 내용은 물론 코스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었다. 주변에서는 시험을 보기 전에 추가 비용을 내고 교육을 받는 게 어떻겠냐고 했지만, 나는 계획에 없던 추가 비용이 달갑지 않았거니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집중해서 한 번에 합격하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당당하게 시험장에 도착했다.

대기 번호를 받고 수험장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잠시 후 다른 두 명과 함께 호명되어 뒷좌석에 탔다. 나는 세 명 중에서 두 번째 응시자였다. 감독원은 조수석에 앉아 태블릿을 보면서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코스를 고르라고 했다. 응시자가 태블릿에 손가락을 대자 가장 쉬운 A 코스가 나왔다. 그는 차를 몰고 침착하게 코스를 밟아나갔고 뒷좌석에서 보고 있으면 운전이 그렇게 쉬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실수도 거의 없이 시험에 통과했고 내 순서가 돌아왔다. 나는 그다음으로 쉬운 B 코스였다. 긴장이 많이 됐지만 마음속으로 운이 좋았던 장내주행 시험 때를 떠올리며 기어를 바꾸고 출발했다. 그런데 천천히 속도를 내며 학원 밖으로 나가려던 차에, 감독원이 손짓을 하며 차를 돌리라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다. 아니면 먼저 지나가야 하는 차량이 있어서 잠시 대기해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원인은 나에게 있었다. 태블릿에서 위협적으로 삑삑 소리가 났다.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전벨트를 매어야지. 안 메면 탈락이야.” 

세상에. 나는 생각조차 못 하고 있었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안전벨트를 매야 했는데. 운전을 하도 오랜만에 하니 기억이 안 났던 것이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창피함과 수치심, 허탈함을 골고루 느끼며 차를 돌리고 있는 내게 감독원은 한술 더 뜨고 있었다. “그리고 출발하기 전에 양 옆에 살펴봐야지 그것도 안 하고…” 

이 정도로 처참하게 떨어졌으면 감독원의 배려 차원에서 먼저 보내줬으면 좋았을 텐데, 운전석에 앉은 단 몇 초만에 나는 다시 뒷좌석으로 돌아와 세 번째 응시자가 여유롭게 코스를 도는 것을 보고 있어야만 했다.

 재응시료 5만 원을 낸 후 절치부심해 다시 도전했다. 첫 회차에는 도로에 나가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자신감은 충분했다. 차에 타자마자 곧바로 안전벨트를 매고 감독자가 그만해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양옆을 노려보았다. 이번엔 무조건 합격하리라. 차를 천천히 몰면서 기세 반 설렘 반으로 학원을 나갔다. 결과는 또 탈락. 감독원은 한두 개만 실수를 덜 했어도... 하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좌회전이나 우회전을 해야 할 때는 150미터 전부터 깜빡이를 켜야 하는데, 나는 항상 회전하기 직전에 켠다는 것이었다. 슬쩍 태블릿을 보니 그 항목으로 3번이나 틀려서 20점 가까이 깎여있었다. 나머지는 정차할 때 중립 기어로 안 돌려놓았다거나 하는 이유로 자잘하게 깎여서 60점 후반 대였다. 감독원의 말대로 정말 한 두 개만 틀리지 않았더라도 합격했을 것이다. 그러면 뭐 하나. 결국 내려서 다시 접수실로 가야만 했다. 세 번째로 응시료를 낼 때는 정말 피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나오는 길에 어찌나 기분이 안 좋던지 기다리면 역까지 태워주는 셔틀버스가 오는데도 혼자 나와 터덜터덜 길을 걸었다. 터무니없는 짜증도 났다. 채점 항목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깜빡이 켜는 시간을 거리로 따지면 어떡하냐, 깜빡이 늦게 켜면 무슨 문제가 있냐. 좌회전 차선에 있으면 좌회전하는 거고 우회전 차선에 있으면 우회전하는 거지. 중립 기어는 무슨, 그냥 브레이크 꾹 밟고 있으면 되잖아. 혼자 구시렁거리다가 남에게 하소연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도로 주행 2회 탈락이라니 쪽팔려서 말할 수도 없었다. 한 번에 합격했어도 남자는 1종이지 무슨 2종 보통을 따고 있냐고 들을 판에.

 또 시간이 흘러 세 번째 시험날이 되었다. 두 번째 시험을 망친 지 2주가 지난 뒤였다. 시험장을 들어오면서 내 머릿속에는 단 두 가지뿐이었다. 150미터 알람이 뜨면 깜빡이 켜기, 정차하면 중립기어 놓기! 이 날은 사람이 별로 없어서 첫 번째로 시험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장기 수험생을 위한 특혜였을지도 모르겠다. 시험을 보는 내내 시종일관 깜빡이에만 집중했고 너무 집중하느라 이따금 긴장이 풀려서 중립 기어에 놓지 않는 일도 있었지만, 어쨌든 학원으로 무사히 돌아왔을 때 감독원은 수고했다며 합격 화면을 보여주었다. 세상에, 면허를 따다니! 남들 다 기본으로 따는 면허 시험이었지만 세 번을 꼬박 고생하다 보니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그날 곧바로 면허 시험장으로 가 데스크에 합격 종이를 내밀었다. 상처에 붙인 밴드처럼 재응시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종이가 위조 방지 문양이 영롱하게 빛나는 면허증으로 변해 손 안으로 떨어지는 순간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취득한 지 몇 년이 지나고 새것이었던 면허증은 서재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이제는 실물이 아니라 모바일 면허증으로도 무엇이든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느 분야든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운전은 특히 더 그렇다.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이 잘 보인다. 생애 처음 차를 렌트했을 때는 대단한 사람이 된 것처럼 운전하고 다녔고 마포대교, 한남대교부터 시작해서 강변북로, 서부간선도로 등 들으면 듣는 대로 잊어버렸던 것들이 이제는 삶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또 친구들과 그 돈이면 독 3사가 어쩌고, 이번 시즌에는 현기가 어쩌고 하며 떠드는 게 지겨운 레퍼토리의 일부가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상실했던 인류애를 끼어들기한 차가 창문 밖으로 보내준 하트로 대폭 충전하는 일도 있다. 비록 도로 위에서는 따뜻한 신호보다 성난 클랙슨 소리가 더 많이 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운전을 하면서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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