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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Sep 11. 2023

첫 중학교(1)

환경 미화

 눈을 감고 생각해보자. 시간을 거슬러 학창시절 한때로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딱 1년만 보내고 지금 이 생활로 돌아와야 한다면 어디로 갈 것인가. 과거의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바꿔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가까이에 있던 시절로 돌아가고픈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대와 이유는 달라도 떠올린 그곳은 한때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장소가 담겨있다. 내 여행지는 중학교를 입학하던 해 3월 초였다. 이유는 별것 없이 다시 그 시절을 만끽해보고 싶어서다. 12년 중 가장 행복했고 인생에서도 몇 손가락 안으로 꼽을 만한 중학교 1학년 시절.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다른 동네로 이사온 나는 같은 반 아이들이 모두 초면이었다. 재미있는 건 잠시 뒤 교실로 들어온 담임 선생님조차도 학원 교사를 그만두고 교직 생활을 막 시작한 초보였다는 것이다.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인상에 신입사원 같이 시원하게 자른 스포츠컷, 인중과 턱에는 새파란 면도 자국이 번들거렸던 선생님은 교탁에 올라 우리들과 첫 인사를 나눴다. 학원 교사를 하다가 학원생들과 성적으로 씨름하는 것에 회의를 느껴 학교로 오게 되었다고 했다. 지금과 달리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라 그런가보다고 흘려들었던 기억이 난다.

6년간 다녔던 초등학교와는 전혀 달랐던, 생애 처음 겪는 중학교 생활, 처음 만난 학우들과 다양한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매일이 새롭고 즐거웠다. ‘무언가를 배운다’ 는 감각을 처음 느껴보았고, 그것이 때로는 어렵더라도 해내야만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처음으로 쉬는 시간 종이 치고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가 보았다. 건물의 가장 바깥쪽에 위치한 교실은 바로 앞에 운동장과 매점이 연결된 출구가 있어서 우리들은 쉬는 시간마다 매일같이 뛰어나가 누구는 공을 차고, 누구는 매점을 가고, 또 누구는 은행나무 밑 벤치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이 모든 광경이 내게 낯섦과 동시에 설렘을 가져다주었다.

학기 초 선생님은 교실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에 기합이 들어가 있던 상태였다. 교내에서 무슨 행사를 하든 열심히 하려고 했고, 반 아이들과도 친해지려고 자주 농담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다. 그것이 처음 불타오른 것은 3월 중순 발표된 환경 미화 대회였다. 최근에는 많이 사라졌다고 하는 환경 미화 대회란 학급별로 담임 선생님과 학생들이 힘을 합쳐 교실을 꾸미고 청소한 뒤 다른 학급과 경쟁해 1등에게 상을 주는 대회였다. 선생님은 준비 기간 동안 손재주가 좋은 여자애들을 모아 학급 게시판과 시간표를 어떻게 꾸미는 게 좋을지 회의를 열었다. 물론 교실 청소와 창문 닦기는 남자애들 차지였다. 간혹 나처럼 청소를 하기 싫어 여자애들 주변을 기웃거리던 애들은 문방구로 심부름을 가기도 했다.

담임 선생님 덕분에 우리도 기운을 받았는지 방과후는 기본이고 주말에도 몇 명인가 나와 가위질을 하고 본드를 붙였다. 청소 쪽은 기름칠까진 아니어도 몇몇 과감한 애들이 창문 바깥쪽 유리를 닦겠다고 2층 높이에서 몸을 반 넘게 내밀고 걸레질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학교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사먹고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등교해서 다시 준비를 이어갔다.

마침내 준비 기간이 끝나고 1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심사를 했다. 결과는 우리 반의 압도적인 1등이었다. 우리는 엄청나게 기뻐했고 선생님도 진심으로 뿌듯해했다. 우리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그래,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받아야지” 하고 떠들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때만큼은 자기 방 청소하는 것보다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칠판 옆 공간에 상장이 엄숙하게 걸렸고 다른 반 선생님들은 한 번씩 우리 교실에 들어와 이게 무슨 일이냐, 열심히 했다, 고생했다 등 칭찬을 한다발 남기고 갔다. 담임 선생님은 그때마다 입구에서 손님을 맞는 신랑처럼 입꼬리가 귀에 걸려서 연신 감사하다고 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30만원 정도의 상금을 받았던 것 같고, 즉시 엄중한 회의를 거쳐 방과후에 삼겹살을 사와 운동장에 버너를 켜고 구워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날이 어두워져서 서로가 안 보일 때까지 먹고 떠들다 한밤중이 돼서야 나왔는데 이 또한 귀중한 경험이다.

 지금은 왜 그렇게 주말까지 나와가면서 열심히 했는지는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깟 대회 1등 한다고 내신에 도움이 되지도 않고, 학생부에 한 줄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다만 기억과 함께 떠오르는 감정은 그때 아주 재미있었다는 것, 한가한 주말 낮에 아무도 없는 교실에서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면서 부직포를 자르고 붙이고 했던 것이 재미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생활에 치이지 않던 그 시절 자체도 있지만, 현재의 자신이 현대의 가치로는 따지기 어려운 것들을 그때의 나와 사람들은 마음껏 향유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던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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