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로 나갈 땐 조금 구름이 끼고 서늘한 바람이 불고 있었는데 작업을 하다 보니 창 밖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을 하나 끝내고 나서 고개를 들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먼지 낀 창문 밖으로 본 세상은 더 어둑어둑하고 음침해 보였다. 떨어지는 빗줄기를 자세히 보다, 문득 이 풍경을 그리고 싶어져 이젤 앞에 앉았다. 새 도화지를 꺼내고, 팔레트에 물감을 한 술씩 덜고 막 떠온 샘물을 섞어 살근살근 개어 본다. 잘 익은 터키색을 머금은 붓이 통통하니 살이 올랐다. 첫 획이 중요하다. 마음속으로 수를 세고 도화지 위쪽부터 문지르기 시작한다. 다 칠한 뒤에는 다시, 이전보다는 조금 옅게 머금어 색을 입혀 내려간다. 본래 회백색인 건물은 흑갈색으로 벽을 칠한다. 흐린 창문 밑으로 지나가는 차들의 정수리와 바닥이 안 보일 만큼 가득 덮은 우산도 알록달록 번지게 채운다. 대강 그리고 나서 스트레칭을 하고 커피도 내릴 겸 일어났다. 창밖으로 비는 아직 내리고 있었다. 이제 집에 어떻게 가나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