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열리고 눈이 마주친다. 코트는 입다 말고 머리는 헝클어진 채 고개를 홱 돌린다. 네가 지나치기 전에 재빨리 꽃다발을 내밀었다. 이거, 주고 싶었어. 너 좋아하잖아. 걸음이 멈췄다. 한숨과 뭐 이런 놈이 다 있냐는 표정.
곧 너는 거칠게 팔을 밀어내고 걸었다. 뒤따라가며 미안해. 다신 안 그럴게 애원했다. 마침 신호등이 빨간색으로 바뀐 참이었다. 진짜 미안해. 믿어주면 안 될까? 너는 급기야 눈을 감았고, 나는 더 두려워졌다.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학원 가는 길이겠지. 네가 무슨 요일 몇 시에 어딜 가는지, 뭘 하는지 전부 안다. 귀찮게 할 생각은 없고 그저 붙잡고 싶을 뿐인데. 늘어뜨린 손에 꽃다발을 쥐어주려 하자 금방이라도 휘두를 것처럼 주먹을 꽉 쥐었다. 네가 핸드폰을 만지는 동안 일부러 딴 곳을 쳐다보았다. 매달리는 처지에 핸드폰까지 훔쳐보면 얼마나 한심해 보일지. 빵처럼 부푼 구름이 참 부질없다.
동네 골목에서 만났다. 여전히 말은 없었고 찌푸린 얼굴이 정겹기도 했다. 나도 무작정 널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면 문제가 전부 해결될 것처럼. 아니 어쩌면 난 그 얼굴마저 사랑하게 됐다. 밀린 숙제를 하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 다시 해보면 안 될까? 이대로 못 끝내겠어. 너는 고개를 돌렸다.
얼굴을 씻으려는데 나도 모르게 왼손 손가락을 만졌다가 몇 분을 가만히 서있었다. 침대에 누웠더니 별이 떠있었다. 기념일 선물로 피크닉 의자와 선글라스를 주고 싶었다. 서울숲 광장에서 의자를 펴고 누워 실없는 수다를 떨다 밤이 되면 나이트 스카이를 이정표 삼아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며칠 뒤 네가 자주 다니던 카페에 갔다. 네가 제일 좋아하는 화이트 초코 잔을 홀짝이며, 네모난 창이 열려 경의선 숲길이 잘 보이는 자리에 함께 앉아있는 상상을 한다. 테이블에 한쪽 팔꿈치를 대고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린 채 글을 쓰고 있는 너, 빼꼼 들어온 바람이 머리카락을 흔들고 오렌지빛 햇살이 안개처럼 내려앉았던 그날, 커피를 가지러 갔다 오는 길에 그 모습을 하염없이 보고 있었다.
문득, 앉아있던 사람이 무언가 기다리는 듯이 고개를 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