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을 주선하다 있었던 일이다. 여자인 친구 A가 아는 친구에게 소개시켜줄 사람 없냐고 물어봤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B를 떠올리고 냉큼 그래주겠다고 했다. B는 사회 생활을 시작한 뒤 오랫동안 연애를 쉬기도 했고 평소에 외로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이런 기회가 필요할 것 같아서였다. 여자 쪽에서 요구하는 것도 별로 없었다. 술은 적게 먹었으면 좋겠고, 비흡연자면 좋겠고, 키는 175보다 컸으면 하는 정도. B에게 말해주면서 일단 만나보라고 했다. 이야기는 빠르게 진행됐다. A에게 번호를 받아 B에게 건네주었다. 누구에게나 깍듯하고 예의바른 친구니까 알아서 잘하겠거니 했다.
그런데 그 후 몇 시간이 지났을 때 B에게 이상한 메시지가 왔다.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서 상대가 갑자기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친구 쪽에서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낸 시간을 보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안좋은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바빠서 깜빡했을 수도 있으니 한번 더 보내보라고 했다. 그러자 여자는 ‘죄송해요. 이 시간에 일이 몰려서요…’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시간 뒤에 다시 보낸 카톡에도 ‘읽씹’ 을 할 뿐 묵묵부답이었다. 무언의 거절이었을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죄책감에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B도 거절당했다는 것보다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혼란스러워했다. 다음날 A에게 사정을 최대한 돌려서 말했다. 네 친구가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읽씹하고 잠수를 탔더라. 무슨 일 있는 거 아니냐고. 곧 답장이 왔다. 친구가 일 때문에 여유가 없다고 했다. 자기가 너무 섣부르게 소개팅을 추진했다고, 미안하다고 말했다. 혼란스러운 감정은 여전했다. 무례를 저지른 사람은 없고 왜 미안한 사람이 따로 있는지, 정작 사과받아야 할 사람은 왜 당사자 대신 몇 다리씩 건너서 사과를 들어야 하는 건지.
SNS에서 연락한 사람들이나 어플을 이용해 만난 사람들끼리는 이런 일이 빈번할지도 모른다.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만남들이니까. 그런데 이건 주선자들의 얼굴이 있지 않은가. 모두 한 다리만 건너면 알게 되는 사람들인데 어떻게 눈감고 뒤돌면 없어지는 일처럼 유아적으로 행동하는 건지. 만약 내 친구가 그런 무례를 저질렀다면, 이전에 어떤 사이였든 앞으로는 잘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얼마나 부끄러운가?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을 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표현 방식, ‘나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서’ 상대방에게 모든 책임과 판단을 떠넘기고 회피하는 행동은 인간으로서 비참하기조차 하다. 그렇게 상황을 모면하는 순간 누구보다 나쁜 사람이 되어있는 걸 자신만 모른다.
이런 문화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읽씹’ 을 침묵의 일종이라고 본다면 그 역사가 오래되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침묵은 공백이다. 사람 사이에 아무것도 오가지 않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고, 어떤 장소의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또 그것은 면접 자리처럼 부자연스럽고 불편한, 채워야 하는 강박적인 것일 수도 있고 침실에서 연인이 각자 할 일을 하는 것 같이 편안하고 평화로운 것일 수도 있다. 침묵은 대화에서 하나의 기호로 활용되기도 한다. 말을 꺼내기 전 감정을 추스리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거나 상대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도 있으며 통보성 텍스트, 대답이 필요 없거나 요구되지 않는 말에도 사용한다(이런 상황에 우리는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좋아요’ 라는 훌륭한 기능을 만들었다). 그러나 앞선 상황에서 명확한 대답이 필요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가 대답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는 것을 보면서, 남자와 여자가 침묵이라는 도구를 인식하고 사용하는 방식이 다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만추』에서 주연을 맡은 현빈과 탕웨이가 처음 대본을 받아보았을 때, 현빈은 많은 물음표가 떠올랐다고 했으며 탕웨이는 대본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다고 한다. 작중에서 남자는 여자의 의중을 알 수가 없다. 여자의 시선은 공허하고 항상 다른 곳을 향해있다. 말과 몸짓에도 감정이 없이 무감각하다. 같은 곳에 있고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녀의 영혼은 붕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에 사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비록 감옥에서의 오랜 생활이 그녀를 움직이는 톱니바퀴들을 녹슬게 할 수는 있었겠지만, 어쨌든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러다 감옥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헤어질 때 그녀는 고맙다는 말과 함께 그를 살짝 안아준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색하게 같이 안아준다. 남자는 며칠 새 침묵에서 그녀의 감정을 얼마나 읽을 수 있었을까?
우리는 이런 차이를 영원히 이해할 수 없고 극복할 수 없을 것이다. 남자는 영원히 내밀하게 숨겨진 의중을 탐색하고 알아내고 입맛대로 바꾸려 들것이고 여자는 놀랍도록 이성적으로 침묵을 활용할 것이다. 이것은 누군가 부정할 수도 금지할 수도 없는 생태다. 다만 예의는 지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무책임하고 짧은 생각은 남녀 차이를 떠나 인간으로서 실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