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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Jan 04. 2024

만약에 말이야

먼 훗날 우리

 강렬한 사랑의 기억은 마치 한여름의 태양을 내리쬐는 것 같다. 고개를 올려다보면 번쩍이며 쏟아지는 백금빛 세례처럼, 처음 눈이 맞았을 때부터 튀었던 불꽃. 두 번째에는 이미 몇 발짝 앞으로 걸어간 뒤, 그리고 그다음에는 서로가 덜컥 발끝을 마주 대고 서있는 그런 사랑. 부딪혀 확인한 다음에는 한시도 떨어지기 싫어 낮에는 손을, 밤에는 핸드폰을 잡고 날을 지새우는, 감긴 눈과 붉은 입술로 영원을 되뇌는. 

그러나 타올랐던 불꽃이 사그라들고 연기가 걷히면 비로소 깨닫는 것들이 있다. 줄곧 상대를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는 것. 상대가 바란다고 생각해 노력했던 것이 사실은 아니었던 것을 알게 된 순간, 허무함과 배신감마저 느낀다. 서로가 쌓아 올린 높은 건물은 오만과 오해로 인해 쉽게 허물어지고 이별의 순간이 찾아온다.


 그녀를 만난 것은 어느 사교 모임에서였다. 봄꽃이 하나둘 필 무렵 관악산을 오르기로 하고서 예닐곱 명이 둘레길에 모여 함께 걸었다. 개중에는 구면인 사람도 있었고 나처럼 처음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말을 거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성격이어서 길을 오르며 속도가 비슷한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안녕하세요. 처음 나오셨어요? 아,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그녀는 나보다 한참 더 앞에서 올라가고 있었기 때문에 정상에 도착해서야 말을 걸 수 있었다. 연주대 바위에서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처럼 의례적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그녀가 대뜸 하는 말이 저는 사십 대에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모자와 마스크에 가려 언뜻 보이는 눈매에 이십 대겠거니 짐작하고 있던 나는 생각지도 못한 대답에 눈을 마주쳤다. 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사십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할 말이 없어서 아, 그러세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녀는 농담이라며 내 당황한 얼굴을 보고 깔깔거렸다. 그날 우리는 저녁까지 술을 마시면서 번호를 교환했다.

 며칠 뒤 그녀가 영화를 추천해 주었다. 『먼 훗날 우리』? 응, 봐봐. 재밌어. 당시 나는 지금처럼 영화나 책에 관심이 많던 시기가 아니었다. 천만 영화 같은 유명하고 재밌다는 것들 중에서도 취향에 맞는 것만 골라서 봤다. 당연히 중국 영화는 관심 목록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와 한 마디라도 더 하고 싶어서 그날 밤 영화를 봤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감정이 넘쳐흘러서 전화를 걸었다. 영문도 모르고 전화를 받은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그래, 엄청 슬프지. 나도 울었어.라고 말해주었다. 

 그 뒤로 연락하는 주기는 점점 짧아졌다. 퇴근하는 길에 전화를 하기도 하고, 밤에 영상 통화가 하고 싶다고 해서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방으로 들어오신 그녀의 어머니와 인사를 나누기도 했다. 어느 날은 새벽 내내 핸드폰을 붙잡고 있었다. 할 말이 떨어져서 슬슬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그녀는 근데 말이야, 라며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나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대답해 주면서도 설레서 침대 위를 뒹굴거렸다. 결국 창문 넘어가 밝아올 때가 돼서야 조금이라도 자자고 이야기하고 끊었다.

 청량리역에서 만나기로 한 날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우리는 한 우산을 쓰고 걸었다. 그녀가 좋아한다는 찜닭 집에서 밥을 먹고 한참을 걸어서 안암역의 전통 술집으로 갔다. 투명한 술잔과 투명한 각얼음이 달빛을 받아 푸르게 빛났다. 자정이 가까워서야 우리는 밖으로 나왔다. 반짝이는 길을 걸으며 나는 그녀에게 한번 만나보자고 했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이었고 혼란스러운 말을 중얼거렸다. 그리고 우리는 곧 사귀었다. 

여름으로 건너가는 다리에서 우리는 서로에게 힘썼다. 회사 프로젝트로 서울을 떠나 동해에 장기 출장을 다니던 내게 그녀는 뜨거운 태양빛 사이 선선한 바닷바람 같은 존재였고 덕분에 외로운 지방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종종 일이 힘들단 말을 많이 했다. 다른 회사로 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업무에 필요한 것들을 익히고 분위기를 따라가느라 바빴고 퇴근 뒤에 전화를 걸면 힘이 쭉 빠진 목소리로 오늘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나는 주말이 되면 기차를 타고 올라왔고 우리는 성수, 이태원과 서울 곳곳을 거닐며 사랑을 속삭였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막차가 올 때까지 대학로 거리를 전전했던 날 밤, 자정이 넘어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그리고 힘든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우리 방금 전까지 좋았는데 왜. 그녀는 말했다. 나는 내 모든 것의 우선순위가 오빠가 됐는데, 계속 만나면서 오빠는 아닌 것 같다. 아니라고 생각하려고 해도 자꾸만 안 좋은 생각이 든다. 만나면 잠시 좋다가도 헤어지면 걱정된다. 자꾸 불안해서 평소에 아무것도 못하게 된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소홀하지 않았다. 나는 늘 하는 그대로, 여자친구에게 내가 해주던 그대로를 해주었지만 그녀는 어딘지 모르는 곳에서 갈증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일단 붙잡으려고 했고, 그날은 새벽 4시까지 통화하고서야 겨우 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계속되었다. 나는 이전보다 더 신경 쓰려고 노력했지만 내 안에도 한계점이 있었고 심장을 도려내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그녀는 더 못하겠다며 우리는 끊어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밤, 나는 싱가포르 여행을 마치고 공항 안 24시간 운영하는 카페에서 내일 아침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는 길에 폭우가 쏟아져 하나뿐인 충전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핸드폰과 노트북은 거의 방전 상태였고 나는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나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긴급 시 사용하려고 가져왔던 업무용 노트북은 피해가 없어 여행 중 처음으로 꺼내게 되었다. 내일까지 뭘 하면서 시간을 때울까 고민하다가 영화가 생각났다. 이국의 공항에서 밤을 지새우며 영화를 본다니 괜찮은 생각이었다. 넷플릭스를 켜서 뭘 보면 좋을지 살펴보다가 불현듯 그 영화가 떠올랐다. 한번 본 영화는 여간해서 다시 보지 않았지만 꼭 지금 다시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곧 익숙한 배경음악과 익숙한 폰트, 익숙한 도입부가 펼쳐졌다.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의 파도가 천천히 나를 적셨고 나아가 그녀와 관련된 기억들까지도 뭍 위로 끌어올렸다. 장면들이 흘러가는 동안 온갖 감정들이 몸 안에서 휘몰아쳤다. 어느 장면에서는 몸을 떨면서 슬픔을 삭이기도 했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고개를 옆으로 늘어뜨리고 아름다운 추억을 감상하는 것처럼 넋을 놓고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우리가 저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많이 닮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특히 여자를 똑 닮은 외모에 천진난만한 성격이었고, 1년 전의 나도 비슷한 외모에 꽁한 성격, 컴퓨터 개발자라는 직업도 비슷했다. 그리고 우리도 저들처럼 똑같이 사랑했고 또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기에 싸웠고, 마지막에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해 헤어졌다. 우리도 먼 훗날, 10년 뒤 우연히 마주친다면 어떤 말을 할까? 마주 앉아 만약의 궁전을 쌓아올리며 덤덤히 그 시절을 말할까? 우리들 중 누군가는 ‘i miss you’, 내가 널 놓쳤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용기 내지 못한 그때의 우리를 후회할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나는 우두커니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이 까매지고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엔딩 크레디트가 모두 올라간 뒤에는 그녀와의 채팅방을 들춰보았다. 옛날에 나눴던 대화들이 마치 방금 전에 나눈 것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처럼 그대로 남아있었다. 글자를 읽으면 그때의 분위기와 장소, 그리고 어디쯤 와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한없이 스크롤을 내렸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는 지금 어디냐는 말과, 청량리역이라는 말. 리는 헤어진 날에도 여전히 전화기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끊은 다음 나는 캐리어와 가방을 들고, 너는 외투를 고쳐 입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나는 이제 허리를 펴고 꼿꼿하게 서서 네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 네 덕분에 그동안 즐거웠어.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 그녀가 일찍 일어나 출근하는 길에 아침 인사를 해주었던 여섯 시, 그녀도 대답해 주었다. 오빠, 잘 지내지. 오빠도 행복하게 잘 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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