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듯 잠에서 깼다. 새벽 4시였다. 심장이 뛰는 것이 불편하고 더부룩했고 머리는 깨질 것처럼 아팠다. 별안간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어떻게 해서 광활하다는 표현조차 부족할 정도로 넓은 우주의 한복판에서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확률을 넘어서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유일하게 생명체가 살고 있는 지구에, 그중에서도 대한민국 서울의 부모님의 뱃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는가.
화성이나 금성에서 태어났더라면 미생물에 불과했을 것이고 살아있다는 인지도 할 수 없이 극한의 환경에 노출되어 사라졌을 것이고, 가자 지구에 태어났더라면 전쟁에 휘말려 죽거나 불구가 되어 고통스럽게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미국 슬럼가의 트레일러 파크에서 세상을 혐오하며 얼굴도 이름도 없이 스러질 수도 있었으나 선진국의 안전한 수도에서 태어나 고등 교육을 받고 삼십 년 이상을 살면서 하고 싶은 것과 마음 먹은 것들을 어렵지 않게 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나는 막연히 영혼이라는 것을 믿는데, 만약 영혼이 존재하고 육체에 잠시 들렀다 떠나는 것이라면 컨베이어 벨트에 수많은 영혼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고 모든 생명체들의 잉태의 시점에 영혼들이 차례로 들어가고 있는 광경을 그려본다(인도 불교 신자라면 전생의 업보와 공덕에 의해 차등을 두는 복잡한 컨베이어 벨트가 그려졌을 것이다). 앞이나 뒤로 한 칸만 순서가 바뀌었더라도 나는 플랑크톤이 되었을 수도 있고 물고기로 태어났을 수도 있고 심지어 내 몸을 이루는 하나의 세포가 되었을 수도 있었다. 그 모든 가능성을 뒤엎고 내가 나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감사한 기적이라기보다는 불가능하고 불가불한 현상으로까지 보인다.
이 지독한 전염병은 탄생에서 죽음으로 옮겨간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좋아하는 사람과 그림과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 어두운 방에서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지 못한다는 것, 풍요롭고 아름다운 광경을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두렵다. 육체가 움직이는 것과 사고하는 것이 정지하고 깊은 잠에 빠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종전에는 기독교에서 행복과 즐거움만이 존재하는 천국에서 영생을 누릴 수 있다 하여 위로가 된 적도 있으나 과연 그게 행복한 일인지는 몇 년뒤에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몇 년 정도는 행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치고 늙고 병든 모습에서 삶의 가장 아름다운 때로 돌아가 현세의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기쁘고 즐겁기만 한다면 말이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첫날은 늦잠을 자고 정오쯤 일어나 점심에 블랙 커피와 브런치를 먹고 저녁에는 고급 와인과 스테이크를 썰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칠리 크랩이나 오향장육을 먹고 마당에 있는 풀밭에 누워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고단함에 지쳐 버킷 리스트에만 들어있던 것들에 손을 대볼 수도 있을 것이다. 배낭을 메고 홀로 여행을 떠난다든지 영어를 배워본다든지 철학을 공부해본다든지 하는 취미 활동 말이다. 만나보지 못했던 사람들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다른 세대의 사람들도 함께 사는 곳이라면 하루는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강연을 들어볼 수도 있고 또 다른 날은 대학에서 아인슈타인의 수업을 듣거나 서점에서 프랑수아즈 사강의 신간을 읽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런 것들을 전부 다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도대체 뭐가 남을까? 3년, 5년 동안을 배우고 익히고 즐기고 나서도 우리가 여전히 아침이 되면 눈을 뜨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면 우리는 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제야 유튜브와 넷플릭스와 디즈니 플러스로 눈을 돌려야 할까? 그로부터 500년이 지나면 어떨까? 그때도 우리의 삶이 지구에 발붙이고 사는 지금처럼 하루하루 재미있고 즐거울까? 애초에 행복하기만 하다는 것은 존재하지도 않는 허무맹랑한 생각 아닌가? 그래서 나는 영생에도 더이상 희망을 잡아맬 수가 없게 되었다.
열 살 무렵부터 어렴풋하게 시작된 이 생각은 이제 지우려면 무던히도 노력을 해야 한다. 눈을 감고 고개를 양옆으로 휘휘 젓고 내일 할 일을 정리해보거나 즐거웠던 어젯밤 기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황급히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켜 가장 무의미하고 쓸데없고 이미 수 번이나 봐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줄줄 외는 영상을 틀든지 컴퓨터 게임으로 충분한 시간을 낭비해야만 한다. 그 와중에도 뇌는 언젠가 해결되어야 할 숙제를 또 한번 미루고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한다. 해가 뜨고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냐는듯 쥐죽은듯이 사라지지만 그뿐이다.
아마 삶이 끝날 때까지 이 악몽은 해결되지 않고 해결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도리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두려움만 늘어 몸집이 커져서 이따금 권태와 고독과 함께 자정이 넘은 밤 불쑥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처럼 잠에서 깨 혼란스럽고 괴로워할 것이다. 그동안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 이유도 연고도 없이 세계 각지에서 죽어간 이들, 그들은 생의 마지막 순간 혹은 다가오는 죽음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은 끝없는 무기력과 공허함만이 그 대답을 해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