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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nokno May 02. 2024

사강, 내 자랑

프랑수아즈 사강을 만나러 가기 전에

 그녀를 읽기 전에 나는 책을 잘 읽지 않으면서 글만 썼다. 근근히 젊은 문학상이나 신춘문예와 같은 한국 소설을 읽었는데 큰 흥미를 못 느꼈다. 당시 썼던 글들은 대개 자기 세계에만 골몰해 미로 같고 현학적인 것뿐으로, 글을 쓴 뒤에 그것에 한껏 도취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평가가 두려워 밖으로 내보이지 않았다.

독서나 글쓰기 모임을 가면 종종 가장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없었다. 차례가 오면 없다고 하기는 민망하고 베스트셀러 가판대에서 한두 권 들춰보았던 김애란 작가나 김초엽 작가를 입에 올렸다. 당연히 롤모델도, 배우고 따라하고 싶은 작가도 없었다. 내게 롤모델이란 어떤 작품이나 퍼포먼스를 보면서 “내가 노력하면 이 사람만큼 멋지게 해낼 수 있을까?” 라는 생각과 함께 압도감이 섞인 무력감을 느끼게 하는 거장을 의미하는데, 오귀스트 르누아르, 알바로 시자, 우디 앨런이 그랬고 작가는 없었다.

그래서 한때는 누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면 글쓰기라고 답을 하면서도 과연 이것이 내 적성에 맞는가란 생각이 들곤 했다. 글을 쓰려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없다니.


 작년에는 고전 소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밀란 쿤데라와 에밀 졸라, 브론테 자매까지. 그무렵 제일 강렬하게 빠져들었던 작품이 폭풍의 언덕이었는데 어쩐지 나는 여성 작가들과 잘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서 작년 말 어느 모임에서 ’패배의 신호‘ 를 읽었고 나는 즉시 그녀에게 빠져들었다. 매혹적인 서사, 사랑의 덧없음, 기조에 흐르는 허무함, 공허함이 나를 단단히 붙잡았다. 많은 작품에서 그녀는 마치 현실에서 목격한 현상과 상상으로 엮은 허상으로 연애 문제를 실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3년이라는 말처럼 글 속에서 버둥거리며 사랑하는 인물들을 조롱하고 스스로에게도 조소를 머금는 것 같았다.


 ‘슬픔이여 안녕’ 을 읽으며 처음으로 롤모델에게 느끼는 감정을 느꼈고 ‘신기한 구름’ 을 읽었을 때는 그녀를 배우고 따라하고 싶었다. 만약 사강이 살아있었다면, 유년 시절의 안도 타다오가 르코르뷔지에를 만나러 파리로 갔던 것처럼 그녀를 만나서 책과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언젠가 내가 쓴 책을 들고 파리로 떠나는 날이 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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