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스에서 아침을
아침 8시, 문틈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깨는 것은 최상의 사치 중 하나다. 잠이 덜 깬 채로 침대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열었을 때 유럽식 아침 식사와 샴 고양이가 맞아준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반가운 미소로 손을 건넨 주인 아주머니는 어제 방에 잘 들어가서 쉬었냐고 물으시고는 아침을 먹겠느냐고 물어보았다. 나는 열쇠를 찾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대답하고는 식사를 하겠다고 했다. 그동안 고양이 두 마리가 조심스럽게 다가와 눈인사를 건넨다. 나는 쿠션이 깔린 의자에 푹 눌러앉아 고요를 즐겼다. 모든 것이 평화로웠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가끔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커다란 쟁반에 음식과 음료를 가득 담아서 가져왔다. 막 구운 바게트 빵과 다양한 맛 잼, 포도와 사과알, 오렌지 주스, 커피까지 먹음직스러운 한상이었다. 프랑스에서 관광객으로서가 아니라 생활적인 향취를 느끼며 녹아들고 싶었던 내게 첫 식사로 완벽했다.
느리고 완벽한 식사를 마친 뒤 아주머니가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몇 개의 도시를 거쳐 파리에서 여행을 마칠 계획이고, 이곳에서는 르누아르와 샤갈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왔다고 하자 놀란 눈으로 잘 왔다고, 그곳도 매우 훌륭하지만 니스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나 해변도 꼭 구경하고 가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제 사지 못한 유심 카드가 생각나서 물어보았고,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핸드폰 지도에 표시된 Tabac이라는 가게를 보여주었다.
프랑스에서는 우리나라의 편의점 같이 작게는 담배와 음료수, 과자부터 장난감, 심 카드, 복권을 파는 곳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Tabac이라는 이름은 특정 가게명이 아니라 고유명사인 듯했다. 다만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내부가 깔끔한 흰색 기조에 쾌적하고 진열대에 정돈이 잘 되어있다기보다는 말 그대로 사람들이 찾는 건 이것저것 다 떼다 파는 잡화점의 느낌이 강하다. 나는 주변 도로를 둘러볼 겸 이곳을 떠나기 전에 그 가게로 향했다.
하늘은 숨막히게 파랬고 햇살은 따사로웠다. 바람이 내 몸을 한바퀴 돌고 지나갔다. 길 위로 아주머니가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고 있었고, 담배를 피며 운전하는 남자가 횡단보도 앞에서 내게 손짓했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이곳에 내가 드디어 왔구나. 아파트 입구의 화단에는 노란색과 주황색 란타나와 열대 야자나무 꽃이 피어 있었고, 다양한 색으로 장식된 아파트는 햇빛을 받아 찬란하게 빛났다. 가게가 있는 길로 접어들자 마침 도로변에 작은 장이 서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테이블을 가져와서 그릇이나 옷가지를 올려놓고 팔았다. 음식점 앞 길가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잔뜩 깔려 있었고, 장이 선 덕분인지 인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도로까지 넘어가 있었다. 우리나라였으면 공유지를 마음대로 점거한다고 난리가 났을지도 모르지만, 유럽의 식문화 중 부러운 점이다. 바깥에서 햇볕을 쬐고 바람을 맞으면서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모른다.
나는 아주머니가 알려준 가게로 가서 줄을 섰다. 손님들은 대개 나이가 있는 아저씨나 아주머니들이었는데, 그들은 주로 담배나 복권 아니면 음료수를 샀다. 하지만 주인 아주머니는 (어쩌면 당연하게도)영어를 할 줄 몰랐고, 나는 “30기가! 30기가!” 를 외치고 그 뒤로도 한참 주인 아주머니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 뒤에야 유심 카드를 사들고 돌아왔다.
하지만 내가 산 유심 카드는 공항에서 정해진 요금제를 미리 구입하는 방식의 유심이 아니라 심 카드를 휴대폰에 넣은 뒤에 웹사이트를 들어가서 구입을 해야 하는 일종의 알뜰 통신사 유심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유심 카드를 넣으면 웹사이트에서 번호를 등록하면서 데이터를 구입할 수 있도록 미리 약간의 데이터를 이용량을 주는데, 나는 그것을 개통되었다고 생각하고 말았다. 유일한 걱정거리가 사라졌다고 생각한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숙소에서 조금 더 쉬다가 짐을 챙겨서 아주머니와 인사했다. 아주머니는 좋은 여행이 되기를 빌어주며 대문까지 배웅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