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화가가 머문 곳으로
숙소에서 걸어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언덕에 위치한 르누아르 미술관은, 인상파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가족들과 말년을 보내면서 그림을 그렸던 넓은 집과 정원에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여행 가방을 끌고 여유를 즐기며 걸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정오의 불볕더위가 시작될 즈음이지만, 이곳은 같은 항구도시인 부산 날씨와 비슷한 점이 많다. 습기가 비교적 적고 바람이 많이 불어 온도는 비슷하더라도 체감되는 온도가 훨씬 낮아서 걸어 다니기에 쾌적했다. 지도 앱은 도로 구획이 깔끔한 번화가 대신, 구불구불하지만 평화롭고 운치가 있는 주택 골목을 알려주어서 가는 내내 동화 속 풍경을 걷는 기분이었다. 조금 후회한 점은 길이 평탄하지 않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는 탓에 도착할 무렵에는 목이 마르고 지쳤다.
돌담을 따라 무지막지한 오르막길을 오른 끝에 미술관 앞에 도착했을 때, 오른쪽에는 Musée Renoir라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았던 곳을 실제로 찾아갔을 때, 그곳이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거나 상상 속의 허구가 아니라 내 인생에 들어왔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그곳은 그가 세상에서 떠난 뒤로 백 년이 넘는 세월이 지났음에도, 지금 그곳의 풍경은 당시 그가 보고 그렸던 집 주변의 모습과 그리 달라지지 않은 듯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다. 입구에서 사진을 한 장 찍은 뒤 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철창문 뒤에서 팔짱을 낀 채 지키고 있는 경비원이 팔을 번쩍 내밀어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 여행 가방을 끌고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알고 보니 미술관에서는 안으로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물품이 정해져 있고, 특히 여행 가방같이 부피가 큰 물품은 어렵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도 생각해 보면 그럴 것 같았다. 사실 아무도 여행 가방을 들고 미술관을 오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곳에 너무나도 가고 싶었기 때문에 여행 가방이 무겁든 말든 억지로 끌고 왔지만. 어쨌든 엎질러진 물이었고 나는 다시 내리막을 한참 걸어가 급하게 주변에 있는 호텔에 가방을 가져다 놓은 뒤 다시 돌아왔다. 내가 자유로워진 양손을 펼쳐 보이며 어깨를 으쓱하자 경비원은 인사하며 좋은 하루를 보내라고 대답해 주었다.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이곳은 르누아르가 실제로 살면서 그림을 그렸던 곳이다. 그래서 그가 사용했던 침실과 커다란 벽난로가 있는 화실부터 노년의 그를 지지해 주었던 나무 휠체어와 붓과 물감, 그 재료까지 잘 보존된 상태로 전시되고 있었다. 또 가족들이 묵었던 방에는 자식들과 아내의 연보도 함께 쓰여져 있었다. 특히 20세기 프랑스 영화를 대표하기도 하는 그의 아들 장 르누아르가 어린 시절 남긴 조각품의 흔적도 남아 있어서 흥미로웠다.
매표소에 들어가자 직원이 오늘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는 날이라고 했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는데 자세히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미술관 표가 공짜인지도 모른다. 뒷문으로 나가 계단을 걸어 올라가자 옆으로 넓게 펼쳐진 풀밭이 보였다. 이 집의 정원이지만 엄청나게 넓어서 들판으로 보였다. 그리고 눈앞에는 장정 댓 명이 와도 안기 어려울 만큼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그늘 아래 앉아 있는 할아버지가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고는 부드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국의 여행자에게 여기에 온 걸 환영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도 미소로 대답한 뒤 그 앞에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아버지와 같이 온 듯한 할머니는 캔버스에 눈앞의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노부부가 자리한 공간에는 잠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그들은 무언가 감상하기 위해서나 찾아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발걸음한 끝에 이 풍경의 일부가 된 것 같았다.
길을 조금 더 올라가자 도슨트가 관객들 앞에서 손짓을 하며 설명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거의 나이가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었고 가끔 젊은 한두 커플이 보였다. 나는 불어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녀가 손으로 가리키는 팻말에 그려진 그림 속 나무가 눈앞의 나무를 모티브로 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와 가까이 있던 두 할머니가 이곳의 유일한 동양인인 나를 신기하다는 듯이 보다가 말을 걸었고, 이곳과 주변 동네에 관한 시시콜콜한 내용을 수다스럽고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었다.
도슨트는 더 안으로 걸어들어가면서 야외에 걸려 있는 작품에 대해서 소개해주거나 온통 유리벽으로 이루어진 화실에 들어가서 이곳 정원의 역사와 옛날 모습에 대해, 사용하던 물감은 무엇이었는지 소개해 주었다. 그 다음은 실제로 르누아르가 살았던 거대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정오의 태양이 쏟아져 들어오는 창가 가까이 있는 커다란 식탁과 거실은 매우 아름다웠고, 그곳에서 멀리 보이는 니스의 바다 풍경은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귀중한 것이었다.
르누아르의 화실은 다른 방보다도 훨씬 컸고 커다란 벽난로가 있어서 응접실 같은 분위기도 났다. 벽난로 앞에는 그림을 그리다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간이 침대가 있었고 그 위에 그가 애용한 것 같은 중절모와 양산이 놓여 있었다. 떠나간 사람이 언젠가 다시 돌아오면 쓸 요량으로 고이 두고 간 것 같아서 마음에 한줄기 서글픈 감정이 스쳐지나갔다. 또 나무 휠체어와 이젤이 보였다. 벽에는 지금 휠체어가 놓인 자리에서 그렸을 것 같은 풍경의 그림이 한 점 걸려 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백 년 전 이곳에서, 똑같은 건물 안 똑같은 방 안에서 언젠가 한 노인이 그림을 그렸고, 백 년이 지나 태어난 내가 그의 그림을 좋아해서 이곳에 오게 되다니. 이십 대에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만약 우리가 모르는 새 내쉬고 있는 이 숨들이 계속해서 지구 안을 떠돈다면, 옛날 옛적 사람들이 내쉰 숨도 지금 어딘가에서 유유히 흐르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혹시 그가 그림을 그리며 내쉬었던 숨도 아직까지 이 방 어딘가 한 점 남아 있지 않을까. 그리하여 세월을 뛰어넘어 한 예술가의 영혼이 나의 삶 동안 함께하기를 바라본다.
창밖으로 정원의 작은 숲속 길목을 신나서 뛰어들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부모님들이 마주보고 웃으면서 뒤따라 숲속으로 들어간다. 별것 아닌데도 기분이 좋았다. 나는 이런 이유로 미술관을 좋아한다. 미술관에서는 누구나 세상살이에 관한 염려를 잠시 그만두고, 순수한 열망과 관심으로 주변에 보이는 것들에 감격을 느낀다. 동시에 차분한 마음으로 비로소 그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와 어디로 향하는지를 시선에 담을 수 있게 된다. 그리하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고, 그들과 함께 이 세상을 한걸음 한걸음 살아가고 있다는 유대감과 함께 용기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