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니스역으로

항구도시 니스에 도착하며

by knok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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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 역 가는 길에


다음 날 일정은 니스역으로 가는 일이었다. 나는 호텔 조식을 든든하게 먹은 뒤, 여행 가방을 끌고 카뉴-쉬르-메르 역으로 향했다. 역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었다. 매표소로 들어가자 주황색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친절하게 용무를 물어보았고, 니스 역으로 가고 싶다고 하자 매표창구로 안내해 주었다. 이미 내 앞에는 세 명이 서 있었는데, 맨 앞 사람이 주야장천 직원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차츰 초조해졌다. 안내 모니터에는 내가 탈 기차가 5분 뒤면 도착하고 그다음 기차는 30분 뒤에나 올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앞의 두 사람은 다른 방향으로 가는지, 아니면 태평한 건지 잘만 서 있었고, 나만 슬슬 옆으로 몸을 빼고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지켜보았다. 3분, 2분… 그렇게 시간이 덧없이 가고 기차는 제시간에 도착한 뒤 바로 떠나버렸다. 한국에서였으면 대체 뭘 하는 건지 앞으로 걸어가서 들어보고 싶은데, 여행이니까… 그리고 이참에 이곳 사람들의 태평함과 배려심을 배우기로 했다. 실제로 이곳 사람들은 주변의 사람들을 많이 배려하며 생활하는 편이다. 한국에서와 달리 보행자가 건널목 앞에서 건너고 싶은 눈치만 주면 흔쾌히 멈추고(열이면 아홉이 기꺼이 차를 세운다), 누군가 도움이 필요한 것 같으면 주변 사람들이 즉시 도움을 제안한다. 한국 사람들은 혹시 자기 행동이 지나친 관심일까 봐, 또는 실제로 상대가 도움을 원치 않을까 봐 지나치게 많이 생각하느라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니스의 태양만큼이나 따뜻한 마음 안에는 나 혼자 삶을 사는 게 아니라는 것, 주변 사람들과 나눌 줄 아는 사고방식이 자연스럽게 내재해 있다. 어쨌든 기차는 지나갔고, 나는 짐짓 여유로운 척하면서 앞의 세 명을 모두 보낸 다음에야 표를 샀다. 직원은 15분 뒤에 기차가 온다고 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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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뉴-쉬르-메르 역


승강장으로 들어갈 때 개찰구를 지났는데, 우리나라처럼 진입할 수 있는 개찰구에만 초록 불이 떠 있었지만 막상 지나갈 때는 표를 찍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었다. 고장났는데 모르는 걸까, 아니면 그러려니 하는 걸까?(기차 내부에서 가끔 검사를 하기 때문에 내 생각은 후자에 더 기운 상태다) 승강장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은 시간이 잠시 멈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멀리 보이는 도로에는 이따금 차가 하나 둘 지나갈 뿐이고, 그밖에 어느 것도 움직이거나 어디론가 향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멈추어 있다. 날쌘 바람만이 정오의 태양에 의해 순순해진 채로 불고 지나갔다.

기차는 한국의 새마을 호 정도로 쾌적하고 2층까지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나는 여행 가방이 거추장스럽기도 하고 몇 정거장 안 가서 내려야 하므로 출입문 근처에 마련된 좌석을 아래로 내려 앉았다. 출입문 공간 안쪽으로 들어가면, 양쪽에 괜찮은 쿠션이 깔린 좌석 네 개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놓여 있고 벽 쪽에는 도시의 광경을 볼 수 있는 커다란 창문을 냈다. 2층을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올라가는 계단에는 해변의 도시답게 넘실거리는 파도의 이미지를 그려놓았다.

창가로 푸른 잎새들과 밭, 목가적 주택부터 2, 3층 크기의 건물과 아파트까지 다양한 건물들이 보인다. 나는 문득 이곳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면서 살까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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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역 승강장 풍경


나는 약 이십 분 뒤에 니스 역에 도착했고, 기대감에 벅차 내렸다. 순간 시간대가 직전보다 조금 더 현대에 이르렀다는 것을, 또 내가 지금까지 알던 것보다 더 아름다운 방향으로 흘렀음을 느꼈다. 정교한 철골 형태로 구성된 돔형 건물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천장의 불투명한 유리로 햇빛이 비쳐들어왔으며, 승강장 너머 건물 바깥으로 선명한 하늘이 이어져 있었다. 승강장의 바닥을 따라 띄엄띄엄 세운 기둥에 켜켜이 쌓인 먼지들이 명암 역할을 하면서 건물을 더 현실성 있게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주로 유럽이나 미국 어딘가에서 온 여행객 같았고,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나처럼 기대에 부풀어 출구로 향했다. 몇 명은 동료나 아니면 약속을 기다리는지 아니면 가만히 시간을 죽이고 있는지 바닥이나 벤치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거대한 문을 지나자 개찰구와 그 너머로 태양이 장악하고 있는 광장이 보였다. 나는 바깥으로 나갔다. 그리고 동화 속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말 그대로 순수하고 아름답고 동글동글한 그림과, 부드러운 색깔과 살결에 닿는 부드러움, 성급하거나 주춤하는 것 없이 느리고 여유가 있는 소리가 있는 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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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스역 주변 풍경


한국의 아파트며 빌라에 빨래를 널고 물건을 보관하며 보온에 도움을 주는 등 기능적으로 존재하는 베란다와 달리 발코니에는 닳고닳은 단어 ‘낭만’ 을 기꺼이 붙일 수 있는 자격이 있다. 얼마나 매력적인 장소인가. 그것이 특히 지난날의 양식과 자신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매력적이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끓이고, 두 손으로 세로로 긴 창문을 활짝 열고 나뭇잎이나 꽃이 그려진 난간에 기대 커피를 마시며 도시를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일까? 마치 하버드 도서관에 견학을 왔을 때 이곳에서 공부하면 단숨에 학위를 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거리를 거니는 줄리엣을 발견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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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깜빡한 것이 하나 있다. 나는 뒤돌아서 니스역을 쳐다보았다. 방금 느낀 감동이 다시 한번 끼쳐들어온다. 지붕 위에 꽂혀 있는 프랑스 국기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힘차게 휘날리고 중앙에 걸린 아기자기한 시계가 고전 건축 양식의 백미로 자리잡고 있었다. 건물은 불과 몇 년 전에 지어졌다고 해도 믿을 정도로 낡거나 시대착오적이지 않았다. 프랑스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역사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근처 여행 가방 보관소에 짐을 맡긴 뒤 매혹된 것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건물들은 체감하기 어려운 오랜 시간 동안 뜨고 지는 태양빛을 쬐면서 그중에 한 가지 색을 골라 제각각 입은 것 같았다. 침착한 노년의 부부, 기대감에 부푼 커플, 장난스런 말을 주고받는 친구 무리, 신난 아이들을 붙잡는 부모들. 그늘에 서서 바라보고 있으면 그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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