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샤갈 미술관으로

꿈, 그리움, 애정

by knok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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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리고 향한 곳은 샤갈 미술관이었다. 니스 역에서 걸어서 20분 정도 평지와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높게 드리운 하늘 아래 미술관이 보인다. 가는 길은 평범하고 작은 마을의 골목길을 걷는 느낌이어서, 니스 역의 화려하고 잘 닦인 대로와는 다른 고즈넉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화려하거나 광활하거나 시원스러운 느낌은 없지만 골목을 돌면 어떤 비밀이 숨어있거나, 은밀한 일들이 일어날 것 같은 기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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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가는 동안 제각기 다른 세대에 지어진 건물들을 마주쳤고, 마치 건축사 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니스의 첫인상에 관해 말할 때도 그랬지만, 이곳의 건물들은 현대의 모더니즘 건축물에서는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색과 정교한 디테일을 가지고 있다. 환한 버터 색의 한 건물은 파사드가 일정한 간격으로 굴곡을 이루고 있어, 그 사이마다 생긴 명암 덕분에 보다 입체적으로 보였다. 또 어느 창은 직사각형 모양을, 다른 창은 위쪽이 동그랗게 꺾인 돔 형으로 나 있는데다 그 주변으로 정성스럽고 아름다운 부조가 그려져 있어 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발코니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최근에 읽은 소설책에 발코니에 대해 인물들이 짧게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때까지도 이 장소에 대해 별 생각이 없다가 지금 다시 사진을 들춰보자 여행 갔을 때 길에 서서 경탄하면서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나무 줄기, 잎사귀, 월계관 등 다양한 모양으로 장식되어 있는 철제 난간은 금방이라도 창문이나 커튼을 열고 신사나 여인이 나와 몸을 기대고 거리를 내려다보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전화를 받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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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어느 골목길에는 비교적 현대 양식인 우리나라의 구축 아파트 모양 건물이 줄지어 서 있다. 이 건물들은 우리나라의 구축 아파트들보다 지어진 지 더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세월의 흔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대신 투박함과 정겨운 분위기를 풍겼다. 거기에는 길가에 늘어선 야자수와 색색깔의 현수막이 주는 이국적인 풍경도 영향이 있겠지만, 지속적인 보수와 건물 관리가 건물을 아름답게 낡도록 하는 데 더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의 건물들도 새것을 짓기에만 열을 올리지 말고 꾸준한 관리와 관심 속에서 함께 세월을 보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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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는 종종 ‘Musée marc chagall’ 라고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미술관 입구 앞 가로등에는 샤갈의 그림 일부와 함께 전시 기간이 적힌 현수막이 나풀거렸다. 일요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엄청 붐볐다. 또 르누아르 미술관 때는 관객 대부분이 나이를 지긋이 먹은 어르신들이었는데 이곳에는 젊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아오는 듯하다. 이곳에도 역시 짐을 맡기고 들어가야 한다. 입구에 들어가면 양쪽에서 직원이 짐을 받고 번호표를 준다. 나는 백팩을 맡기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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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입구와 정경. 관람이 끝난 뒤에는 정원에서 식사와 커피를 마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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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맞이해준 그림은 샤갈의 ‘청색’ 이었다. 아예 연대기에 청색 시대라고 이름 붙은 파블로 피카소에 비할 만큼, 몽환적이고 매혹적인 청색을 즐겨 사용한 작은 그림들이 벽을 장식했다. 깨진 도자기를 이용해 모자이크화로 그려진 물고기와 닭, 하느님도 등장했다. 조금 더 걸어가면 온갖 색채가 흩뿌려지는 그림들이 줄을 잇고, 그 다음에는 거대한 크기의 캔버스들이 벽을 따라 걸려 있는 웅장하고 넓은 공간이 나온다. 그에게 니스는 어떤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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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샤갈의 그림에서 특히 염소와 닭을 눈여겨본다. 부드럽고 아련한 구석이 있는 맑은 눈을 가진 염소. 그 눈으로 목을 구부려 자기의 몸통을 살펴보거나 그림 밖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짐승들. 샤갈은 유년 시절을 보냈던 러시아 제국의 작은 도시 비텝스크를 평생 그리워했다. 집과 시장, 교회와 결혼식, 가축과 음악이 뒤섞인 세계. 도처에 아름답고 소박한 일이 일어나는 작고 편안한 공간. 그들의 눈빛은 아마 반대로 샤갈을 그리워하는 도시를 형상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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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은 종교적인 장면을 다룬 그림도 많이 그렸다. 제일 유명한 것은 105점의 동판화로 이루어진 성경 삽화집이지만, 그 외에 유화 작품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아담과 이브의 탄생 이야기부터 이삭의 희생, 야곱이 천사와 씨름하는 장면들에서 그는 그것들을 성스럽고 신화적으로만 그리지 않고 인간적인 감정을 담아 그렸다. 하느님은 편안한 자세로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고, 하늘에 떠 있는 천사들은 웃을듯 말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IMG_0631.jpeg 샤갈이 직접 남긴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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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함께 있었던 장면을 그린 그림들

미술관의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둥근 공간에 아내를 그린 붉은 그림이 다섯 점 걸려 있다. 첫 번째 그림 옆에 조그만 쪽지에는 “바라, 나의 아내이자 나의 기쁨, 나의 환희.” 라고 손수 쓴 듯한 글자가 쓰여져 있다. 그림 속에서 부부는 말을 타고 날아다니고, 결혼식장에서 경건한 표정을 짓고, 형형색색의 사람들, 음악 소리와 태양 가운데 둘러싸여 있다. 그의 그림은 처음 보았을 때는 비현실적인 요소들에 멈칫하다가도 마음을 놓고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에 묻어난 감정들이 천천히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림을 보면서 나도 이런 사랑을, 이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생각한다. 예전에는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일생 동안 이런 사람과 인연이 되어 결실을 맺는 것은 선뜻 다른 것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크나큰 축복이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을 나와 왔던 길로 다시 걸었다. 기억 속의 그림들을 다시 되새겨 본다. 처음 샤갈을 보았던 때는 성경 시리즈를 전시했던 마이아트뮤지엄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신자가 아니므로 성서 속 내용이나 샤갈의 독실함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인상주의를 좋아하고 구상화에 익숙했던 때에 샤갈의 비현실적이고 몽환적인 그림들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여러 사람들이 좋아하는 '도시 위에서' 라는 작품 앞에서 오랫동안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더 현대 여의도점에서 주최한 '서양미술 800년展' 에서 우연히 샤갈의 작품을 보고, 전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 지저분하고 선명하지도 않지만 마음을 울리는 색깔과 꿈속의 장면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마음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가, 오늘날에야 이곳으로 이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태양은 따사롭고 선선한 바람이 분다. 어디선가 환호성이 메아리쳐 들린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 하나, 태평하게 생각한다. 니스 역 주변은 숙소 가격이 조금 비싼 편이어서, 4명이서 함께 쓰는 호스텔을 구했다. 며칠 동안 호텔에서 몸 편히 지냈으니 이런 데서도 한번 자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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