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장소와 아름답지 못했던 나
마세나 광장은 니스의 시끌벅적한 장소 중 하나여서, 여행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거쳐가는 곳이다. 광장으로 가는 길은 일자로 뻗어 있고 마치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화려하다. 라파예트 백화점을 비롯해 성당과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서 있다. 가운데에는 기찻길이 있어 양쪽에서 기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친다. 사람들은 모두 활기에 차 있고, 미소를 띠고, 아이들은 개구쟁이처럼 뛰어다닌다. 광장에 다다르면 문득 눈앞이 넓게 트이고 체스판 같은 바닥이 깔린다. 좌우로 신고전주의 건물들이 늘어서고, 가운데에는 아폴론 석상이 우뚝 선 태양의 분수가 아름다움을 뽐낸다.
나는 가는 길에 위치한 호스텔에 짐을 내려놓고 나왔다. 어느새 해가 지고 하늘이 야청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커다란 카페의 테라스에는 저녁 시간을 오래 즐기고 싶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장난감 병정 같은 건물 앞에는 어떤 남자가 피아노를 치고 있었고, 지나치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었다. 연인들은 팔로 상대를 끌어안으며, 엄마와 아빠는 아이의 손을 잡고 음악을 들었다. 곡이 끝나자 관객들은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쳐주었다. 어느 한 관객은 가까이 다가와서 어깨를 쳐주며 뭐라고 말했고, 그 말을 들은 피아니스트가 미소를 지은 얼굴을 끄덕였다. 아름다운 밤이었다. 나는 차단봉에 걸터앉아 광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만끽했다.
나는 맞은편에 있는 골목을 향해 걸었다. 츄러스 가게, 아이스크림 가게가 사람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불빛은 줄어들었고, 반쯤 어둠에 싸인 야자수 무리와 두런두런 흐르는 이야깃소리에 마음이 풀어졌다. 길을 걷다 성당을 발견하고 잠시 망설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어떤 종교도 없고 신을 믿지도 않지만, 오래된 성당에는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궁금하게 하는 마력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치 인류의 역사와 까마득하게 오래된 신화를 마주한 듯한,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 말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나는 곧바로 그 분위기에 압도되었고 겸손해졌다. 정교하게 조각된 건물의 양식과 극적으로 그려진 성경의 장면들, 거대한 샹들리에에 달린 수많은 촛불들이 나를 굽어보고 있었다.
앞으로 나온 신부님이 미사를 시작했고, 사람들은 신부님의 말에 따라 일어나서 기도하고 성호를 그었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많은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고 몇몇은 서서 미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바란다. 성취하고 싶은 미래, 혹은 누군가의 건강, 확신이나 의지 같은 것들. 그들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비록 신자가 아니지만 그들 틈에 끼어, 주님의 관대함에 빌어 작은 소원을 말해본다. 하느님,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
나는 신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곧 자리를 떴다. 잠깐이었지만 그들과 한 마음으로 바랐던 시간은 내게 소중했다. 이 글을 빌려 모든 신자들이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기를 바란다.
성당을 나와 외곽으로 조금 더 걸으면 자크 쉬라크 광장이 나오고 수많은 음식점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길 위에 깔린 수많은 테라스 좌석들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앉아 있고, 그 사이에 난 길로 아코디언 연주자가 귀에 익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구릿빛 피부를 지닌 사람들이 여럿 나타나 차력쇼를 벌이고 불 사이로 뛰어드는 묘기를 부리며 사람들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들기도 했다.
나는 걸어오는 길에 눈여겨보았던 음식점에 들어갔다. 유쾌한 흑인 웨이터가 테라스 좌석을 안내해 주었다. 메뉴를 모두 고른 뒤 두 손을 모은 채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 보였다. 사실 나는 속으로 조금 불안하고 긴장되었다. 왜냐하면 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앉아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기소침해지고 바보 같아 보였다. 아까 지나친 마트에서 먹을 걸 사서 숙소에서 먹을걸 하는 후회도 했다. 그 동안 자리를 안내해 주었던 웨이터는 오지 않았고, 나는 슬슬 그가 나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혼자 온 동양인 손님을 무시하는 건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불안과 방어기제가 극에 다다를 때쯤에 나는 견디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아까 보았던 아코디언 연주자가 나를 제지했다. 신기하게도 그는 내가 하려는 행동을 알아차렸던 것 같다. 다시 자리에 앉으라고 했지만, 나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음식점 안으로 들어가 매니저로 보이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웨이터가 오지 않는다, 주문을 받아달라고 말했다. 그녀는 알겠다고 말하고 자리로 돌아가 있으라고 대답했다.
나는 자리로 돌아가면서 내가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보았던 책인지 영상에서 본 내용이 불현듯 기억났던 것이다. 프랑스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메뉴를 정한 뒤에 메뉴판을 접고 기다리라고, 테이블을 담당하는 웨이터가 자기 일을 순서대로 처리하고 있으니 곧 주문을 받을 거라고 하는 내용이었다. 흑인 웨이터는 곧 자리로 와서 미소 띤 얼굴로 주문을 받아주었다. 나는 미안한 감정이 솟았고 겨우 뇨끼와 화이트 와인을 주문했다. 바싼 구운 베이컨이 올려진 뇨끼는 아주 맛있었고 와인도 훌륭했지만, 나는 복잡한 심정을 털어낼 수 없었고 빨리 먹고 자리를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매니저가 웨이터에게 안좋은 말을 했을지 걱정되기도 했고, 프랑스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무례하게 굴어 한국인들의 이미지를 나쁘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도 들었다.
음식점 바로 뒤쪽에는 지중해와 접한 해변이 있었고, 나는 그 길을 걸었다. 와인바에서는 어떤 몸집이 있는 남자가 The Kid LAROI의 ’Stay’ 를 부르고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한손에 유리잔을 들고 홀린 듯 몸을 들썩이고 있었다. 2층의 발코니 좌석에 있는 사람들은 마치 구름 위에 있는 것처럼 느긋한 표정으로 해변을 바라보았다.
숙소로 돌아와 씻고 잠자리에 누웠다. 문득 타지에 홀로 지내는 외로움이 물씬 느껴졌다. 낮과 달리 밤의 어둠과 불빛들, 사람들의 그림자, 작은 이야깃소리 혹은 정적은 적적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다. 나는 빨리 내일 아침이 오길 바라며 잠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