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란다 타워를 내려와 Colline du Château를 넘어 동쪽으로 걸어가면 니스 항구가 나온다. 배와 요트가 물이 보일 틈도 없이 빽빽하게 정박해 있지만, 장난감 블록처럼 네모나고 색색깔의 예쁜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광경이 아름답다. 늦은 오후여서 거리를 뛰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인다. 내리막길을 따라 늘어선 식당에도 슬슬 자리가 채워진다. 한쪽 공터에는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다.
항구 앞에는 Lympia라는 이름의 트램 역이 있다. 빨간색 옷을 입은 트램이 근처의 석조 계단과 잘 어울린다. 역사 속에 현대성이 자연스레 스며든 것 같다. 나는 골목으로 더 들어가서 조금 헤맨 끝에 에어비앤비 숙소를 찾을 수 있었다. 오늘 잘 곳은 호스트가 직접 살고 있는 집 안에 있는 빈방이었다. 유럽 사람들은 하숙과 비슷한 느낌으로 남는 방을 관광객들에게 빌려주는 식으로 부업을 하는 일이 흔한 듯했다. 나는 이제까지 주인이 묵는 곳에서 방 하나를 빌려 써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갔을 때 누군가 있다는 것에 놀라면서도 은연중에 긴장이 되었다. 문을 열자 녹색 티 테이블이 보였다. 테이블의 한 귀퉁이는 직선으로 길게 이어져 벽에 붙어 있었고, 고전주의 양식의 발러스터가 그것을 받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구조물이 마냥 신기했다. 안쪽에는 조그만 거실이 있었고, 벽에 달린 TV와 소파가 있었다. 구석에는 안마 의자도 있었다. 더 안쪽으로 통하는 복도에 들어서자 닫힌 방문 너머로 작은 인기척이 들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정체는 호스트의 아들이었는데, 그 애도 역시 마주치고 싶지는 않은지 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연고도 모르는 외국인이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서 빈방을 쓴다니, 어린아이가 아니더라도 겁을 먹을 만하다.
내가 짐을 풀고 잠시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있을 때, 멋있는 수염을 가진 호스트가 들어와 인사했다. 그리고 집 이곳저곳을 소개해 주었다. 여기는 화장실, 거실에서는 TV를 보거나 싱크대에 있는 컵으로 커피를 따라 마실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저녁을 먹으러 가기 전에 집과 방을 느긋하게 둘러보았다. 내 방의 문에는 아르테미스라고 적힌 팻말이 걸려 있었고, 옆에 있는 닫힌 방문의 팻말에는 아폴론이라고 적힌 걸로 보아 이 집의 아이들은 남매인 것 같았다. 내 방 안에는 침대 머리맡이 있는 벽에 야자수와 푸른 하늘이 그려진 커다란 패브릭 포스터가 걸려 있었고, 창가에는 푸른색과 붉은색 커튼이 겹겹이 걸려 있었다. 기하학적인 무늬가 그려진 베개 커버도 눈에 들어왔다. 우아하고 예쁘다기보다는 키치하고 앙증맞은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방이었다. 호스트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프랑스인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눠 보고 싶기도 했지만 이 날은 너무나 피곤했나 보다. 잠깐 침대에 누워 쉰다는 게 곯아떨어져서 다음 날까지 하나도 먹지 않고 잤다. 다음 날에도 열한 시가 되어서야 눈을 떴고, 호스트는 이미 집에 없었다. 나는 씻은 뒤에 짐을 챙기고 집을 나왔다. 잘 묵었다는 말을 문자 메시지로 대신 전했다.
이날도 변함없이 날씨가 좋았다. 수면도, 건물들도, 그 뒤로 드리운 작은 언덕과 나무들도 모두 선명하게 보였다. 관광객인지 주민인지 모를 옷차림의 사람들이 오갔다. 첫 번째로 향한 곳은 트램 역사 근처에 있는 마리아 성당이었다. 이 성당은 니스에서 머물면서 마주쳤던 대성당들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너비가 작고 장식이 거의 없어 소박하고 정갈한 느낌을 주면서도 고전주의 신전처럼 거대한 기둥들이 나란히 서 있어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정면 위쪽에 커다란 글씨로 'MARIA SINE LABE CONCEPTA O.P.N.(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신성함 때문일까, 아니면 신전 양식의 위용에 이끌린 탓일까, 나는 짐을 끌고 계단을 올라 안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나무문을 지나자 장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고, 양옆으로 돌기둥이 기도하는 듯 고요히 서 있었다. 맞은편 끝에는 마리아 동상이 서 있었다. 그녀는 거대한 촛대와 작은 최후의 만찬 그림 너머에서 천사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이곳에 들어온 것만으로도 은총을 받은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기둥 너머에는 역사에 길이 남을 성자들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었다. 잔 다르크, 테레사 수녀, 정면 한켠에는 예수님의 동상도 있었다. 한 여자가 맨 앞쪽 의자에 앉아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고 기도하는 행위에 대해 어떤 고찰도 해본 적 없지만, 그 순간 절대자에게 머리 숙여 바라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자기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곤경에 처했을 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떤 곤경에 처해 있고, 어떤 것을 바라고 기도하고 있을까.
p.s 이 글을 쓰고 있을 즈음에 테레사 수녀에 관한 어두운 면과 잊혀진 이야기들을 들었다. 종교, 특히 가톨릭에 대한 신성함과 경외감은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종교가 태어난 이래 늘 권력과 결탁하고, 자본을 필요로 하는 구조에 대해서는 결국 이렇게 될 수밖에는 없는 건지란 생각이 든다.
테레사 수녀가 칼리가트를 설립하고 운영하는 동안 받은 천문학적인 후원금들이 정작 구호에는 쓰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곳에서 생활했던 빈민들은 건강이 악화되거나 새로운 병을 얻었다는 점, 그녀가 가난은 신이 내린 축복이라고 말하면서 실질적인 도움보다 영적인 행위에만 기댔다는 점들은 어릴 때 배웠던 '성인' 이라는 카테고리에는 들어갈 수 없는 행동들이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만 보면 그녀는 충분히 신성하고 성인일 것이다. 모든 것을 신에게 맡기고 헌신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물리적 영역에 있다. 몸이 아프면 약을 먹고, 편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휴식을 취해야 한다. 다소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그녀는 종교에 깊이 심취해 있던 것 같다.
한편으로 그 많은 돈을 취한 교황청과 종교 재단들은 도대체 어떻게 굴러갔던 것일까? 정말로 그들은 자본단체란 말일까? 이런 행태를 보면 진실로 종교를 믿는 자들은 교황청이니 지사 같은 곳에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전세계의 수십억 일반 신자들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