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프롬나드 데 장글레와 생폴드벙스에서 하룻밤(1)

by knokno
스크린샷 2026-04-10 오후 12.32.00.png 트램 안에서 만난 형제

성당을 나온 뒤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역에서 트램을 기다렸다. 본래는 니스 옆에 있는 도시인 앙티브로 향해 피카소 미술관을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트램을 타고 가는 사이, 파도와 해변, 그리고 태양빛이 눈길을 잡아끌었고 나는 홀연히 니스 공항 역에서 내리고 말았다. 날씨는 화창했고 모든 것이 완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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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마트에서 먹을 것을 조금 샀다. 바게트 빵과 오리고기로 만든 햄, 오렌지 한 망, 요거트가 든 봉지를 들고 터덜터덜 해변으로 걸었다. 가는 길에 어떤 이탈리아 남자가 말을 걸었다. 척 봐도 몰골이 좋지 않아 노숙자 같다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있었고, 헤진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어디에서 왔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는 내게 적선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며칠 전 성당에서 하느님을 보았다고 하며, 자신에게 적선을 하면 교회에 헌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떠들었다.

공교롭게도 그런 수법은 이미 한국에도 넘쳐난 지 오래다. 아주 오래 전에, 신촌 역 근처에서 마음가짐에 관한 여론조사를 하는 척하면서 자신에게 커피를 사 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거절했고 우리는 쿨하게 헤어졌다. 뒤돌아 걸으면서, 내심 그가 쫓아와 해코지를 할까봐 무서웠지만(캐리어를 끌고 있었으니 더 그랬다), 다행히 그는 따라오지 않았다.



IMG_1653.jpeg 훌륭한 조합

조금 더 걷자 해변으로 향하는 길이 나타났다. 걸어가는 동안 길 옆으로 벤치와 작은 풀 언덕이 보였다. 사람들은 그늘진 곳에 자리를 펴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갈매기들이 멀찍이 서서 두리번거리며 그들 주변에 떨어진 부스러기를 노리고 있었다. 나는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걸음을 멈추고 풀밭에 돗자리를 폈다.

먼저 바게트 빵의 포장을 벗겨 한 입 베어물고, 그 뒤에 오리 고기를 한 점 먹었다. 맛이 매우 훌륭했다. 한국에서 잠봉뵈르를 몇 번 먹어본 적이 있는데, (당연하겠지만)버터를 빼면 비슷한 맛이 났다. 다른 건 몰라도 프랑스의 크루아상과 바게트는 한국에서 파는 것과 다른 차원에 있다고 자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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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샷 2026-04-10 오후 12.31.10.png 수평선 위 낮게 깔린 구름들이 마치 남극의 얼음층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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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을 제공해주는 키 큰 야자수들은 이곳에 낙원이 있음을 알리는 깃발 같았다. 나는 이곳에 누워 책을 읽고, 노래를 듣고,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바다는 신비로운 푸른색으로 일렁였다. 수평선 위 낮게 깔린 구름들이 마치 남극의 얼음층 같았다. 빵을 다 먹고 텀블러에 담은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아이들이 탄 요트 무리가 해안으로 들어왔다. 요트가 질서정연하게 방향을 180도 바꾸어 속도를 늦추고, 배에서 내린 아이들이 힘을 모아 한 척씩 육지로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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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_1946.jpeg 노을 지는 해변의 풍경

그늘진 곳이 점점 추워지자 나는 짐을 싸서 해변으로 걸어갔다. 모래사장은 여전히 뜨거웠고 좋은 냄새가 났다.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은 몸을 태양볕에 몸을 맡기고 있었다. 성의 언덕이 있는 구릉에서 계속해서 비행기가 날아와 바다 위를 맴돌았다. 해변에 취해 있는 사이, 시간은 금방 흘러갔고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나는 갈팡질팡하다가 어쩔 수 없이 니스에서 하루 더 묵기로 했다. 내가 정한 곳은 생폴드벙스의 구릉 어딘가에 있는 넓은 숙소였다. 지금 있는 곳에서 조금 멀긴 했지만, 내일 아침에 주변에 있는 매그트 재단을 들린다면 나쁘지 않았다. 나는 생전 처음으로 우버를 불렀다. 기사님은 매우 친절했다. 그는 숙소까지 가는 동안 이곳에 어떻게 여행을 오게 되었는지, 어디서 왔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택시 기사로 인접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의 가족과 아들 이야기와 여행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었다. 목적지에 도착해 그가 짐을 내려주었고 우리는 악수를 한 뒤 헤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택시 기사들이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콜택시를 부를 때 ‘불필요한 대화 자제’ 항목을 선택할 수 있으며 카카오택시 기사들은 처음부터 필요 이상의 대화를 하지 않도록 회사에서 교육받는다. 어렸을 때는 기사님들과 같이 탄 부모님이나 어른이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지도 앱은커녕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이니 가는 방향부터 시작해서 무슨 일로 가느냐, 기사님이 겪은 이야기, 자식 자랑과 정치 이야기(사실 이 두 개가 제일 크다)등으로 심하면 내릴 때까지 대화를 했다. 극단적인 접촉 거부와 단절에 이르게 된 데에는 분명 기사들의 잘못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렇게까지 감정의 골이 깊어진 데에는 기사들이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다다다 하거나,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거나(특히 여성 등 약자에게), 무례하게 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단절이라는 현상만 보았을 때, 그리고 이국에서 정반대의 즐거운 경험을 하고난 뒤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여행과 일상이라는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우리 사회는 경직되어 있고 무언가로부터 공격받을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더 지나고, 사회가 안정되고 사람들이 건강한 의식 수준을 갖추면 나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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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방스풍 마을의 밤거리 풍경. 사진으로 보면 따뜻하고 낭만적이지만, 당시 거리에 있을 때는 내심 불안하고 무서웠다.

숙소에 도착할 즈음에는 하늘이 캄캄해진 뒤였다. 길거리는 마치 20세기 범죄 영화의 배경처럼 시간이 멈춘 듯했다. 박석이 깔린 길 위에 프로방스식 주택이 일렬로 서 있었고, 가로등이 탁한 주황색 불빛을 내뿜고 있었다. 택시 기사가 짐을 내려주고 떠나갔을 때 나는 돌연 불안감을 느꼈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끔찍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쥐도새도 모르게 지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숙소도 마찬가지로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고, 현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고요한 공기를 뚫고 커다랗게 울려퍼지는 바람에 소스라치게 놀라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좁은 복도 한쪽에 놓인 거울이 달린 테이블과 모자걸이를 보고 마음이 조금 침착해졌고 영화 속 세계에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내 방은 3층에 있었고 문앞에 ‘la suite familie’ 라고 적힌 팻말이 보였다. 문을 열자 바로 앞에 침대가 있었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부엌과 또다른 침대가 있는 넓은 방이 나왔다. 호스트가 예약한 방보다 더 좋은 곳으로 준 듯했다. 하지만 곧 이곳에 음산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기분은 기분 나쁠 정도로 완벽한 정적 때문일까, 방의 모든 벽을 정신병동처럼 흰색으로 페인트칠을 해서일까, 아니면 화장실의 문틈 사이로 물이 졸졸 새는 소리가 들려서일까, 혹은 창문에 창살이 없어서 마음만 먹으면 누군가 올라올 수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나는 핸드폰의 소리를 있는 대로 키워놓고 유튜브 영상을 틀어놓고 사온 스테이크를 구웠다. 와인을 마시면서 깔깔거리다가도 돌연 음산한 정적을 느끼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열한 시가 되었을 때는 바깥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경고하듯 여러 번 울렸다. 그때 나는 왜 몇 세기 전 시계와 달력이 없던 시절 교회가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었는지 깨달았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부터 잠자리에 드는 것까지, 모든 일과에 해당하는 시간을 명확한 수치로 알 수가 없으니 교회의 종소리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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