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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누리누리 Nov 15. 2024

그 방

2024. 10. 19




당분간 친구가 내어준 집에서 지내기 위해 본가에서 짐을 싸고 있던 아침,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엄마가 들어왔다. 아까 일찍 문을 열고 나가던 소리를 듣고 출근한 줄 알았는데. 오늘은 출근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도 놀랐고, 엄마도 이삿짐 상자와 캐리어 따위가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는 거실을 보고 놀랐다.


어디 가? 라고 엄마가 물었다. 이사 가는 거야?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뜸을 들였다. 응. 곧 갈 거야. 근데 이번엔 곧 돌아올 거야.


어디로 가는데?


그냥…… 친구네.


작년 초봄에 전주로 돌아오고, 여름이 가까워질 무렵부터 엄마와 나는 서로의 목적지를 공유하지 않기 시작했다. 엄마는 교회에 나갈 때 그랬고, 나는 전주가 아닌 타지로 돌아다닐 때 주로 그랬다. 그러니까 서로가 좋아하지 않는 목적지로 향할 때, 더 이상 서로에게 간섭하기를 포기하는 대신 침묵을 선택했다.


점점 더 많은 요일을 교회에 할애하고, 새벽이고 아침이고 낮이고 저녁이고 자정이 넘어가는 늦은 밤까지 하루의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교회에 쏟아붓는 엄마에게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성경 구절을 읽거나 찬송가를 틀어두고 몇 시간씩 따라 부르는 엄마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는 나대로 방안에 처박혀 있거나 엄마가 잠들 무렵까지 집 밖에 나가 있기를 선택한다.


그럼, 엄마는 엄마대로 나의 잦은 외출을 못마땅해하겠지. 엄마는 내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에서 나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고교 졸업을 앞두고 전주를 떠나려 서울권 대학을 고민하던 때 전주 지역 대학교나 등록금이 덜 드는 국공립대에 보내려 했고, 몇 년간 장학금을 모아 유럽 항공권을 끊었을 때는 별안간 자기가 병에 걸려 올해까지만 살 수 있으니 여행을 취소하라는 거짓말을 했다. 엄마가 기꺼이 허락하는 나의 여정은 단 하나. 내가 우리나라 곳곳을 돌아다니며 찬양하고 전도하는 사역자가 되기를 바랐다. 그게 자기의 꿈이라고. 그래서 전주로 돌아온 어느 날, 엄마가 정년 퇴임한 뒤에는 혼자 살고 싶으니 내게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고 신경질적으로 요구했을 때, 슬펐지만 웃겼다. 그렇네. 정말로 나랑 살고 싶어서 나를 붙들어두려던 건 아니구나. 다시금 깨달았다. 엄만 그저 내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곳에서,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쓰는 돈을 싫어하는구나. 엄마는 더 많은 돈을 교회에 바치고자 하니까.


엄마의 퇴임까지 어느덧 석 달도 남지 않았다. 나는 내년의 거주지를 점점 더 구체화하고 있다. 엄마에게 나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이 무렵만을 기다려왔다. 더 빨리 나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돈을 모아야 했고, 모아야 했고, 모아야 했고…… 는 다 변명이다. 물론 그 이유도 있지만, 남은 시간 동안 상황이 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내가 본가로 돌아온 큰 이유 중 하나는 원가족과의 화해였으니까. 아빠가 외롭다니까. 아빠를 외롭게 만든 동생과 엄마도 각자 외롭게 지내니까. 그나마 우리 중 서로 간의 대화에 가장 능한 사람은 나니까. 서로의 징검다리로 있는 사람도 나니까. 내가 중심을 지키며 딱 일 년만 같이 지내면 조금은 회복되리라 믿었다. 그럼 그렇게 후련해진 마음으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빌어먹을. 나도 더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상담에서 수없이 고백한다. 제가 와서 모든 걸 망쳤어요. 제가 더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어요. 이젠 진짜 희망이 없어요. 제가 나가야 해요. 전부 제 탓이에요. 관계의 공은 한쪽에만 있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괜히 돌아와서 모든 걸 부숴버렸다.


그래서. 떠나겠다는데. 엄마는 내가 짐을 싸는 내내 옆에서 서성거렸다. 한동안 집안에 오래 같이 있었던 적이 없으니, 엄마가 그렇게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묻고 싶었는데 물을 자신이 없었다. 뭐가 또 엄마를 저렇게 만드는 걸까. 원하는 대로 나가겠다는데. 왜 저런 표정을 짓고 있을까. 그간 내년에는 떠나겠다고 종종 말했는데, 내가 정말로 그럴 줄은 몰랐다는 사람처럼. 어딜 가냐는 것처럼.


그렇게 어색하게 엄마를 등지고 친구의 집으로 옮겨왔다. 시간이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본가로 되돌아갈 날까지 보름이 남았다. 그동안 마음이 꽤 많이 편안해졌다. 어려웠던 마감 하나를 넘긴 덕분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자유를 느끼며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의 자유. 집안에서 언제 어디로든 맘껏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자유. 원가족이 있는 시간대와 공간을 피하여 방 안에 처박혀 있지 않아도 될 자유.


그러다 며칠 전, 친구의 작은 옷방에서 머리를 말리다가 갑자기 숨이 가빠졌다.


그 방에서, 다른 방의 기억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하얗게 잊고 있던 기억이 불쑥 찾아왔다.


그 방. 친구의 옷방과 위치도, 크기도 같은 방. 다만 다른 점이라면, 언제나 어두웠던 방. 주로 늦은 저녁이나 밤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런데도 불을 켤 수 없었던 방. 깜깜한 채로 오래오래 갇혀 있었던 방.


엄마는 우리를, 혹은 나를 그 방으로 불렀다. 안에 들어가고 나면 문이 닫혔고, 혹은 서로의 표정만 보일 만큼의 빛이 들어올 정도로 문틈을 살짝 열어둔 채, 엄마는 몇 시간씩 하소연을 시작했다. 레퍼토리는 늘 같았고, 정해진 결론으로 돌아왔다. 너희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거야. 너희가 내 삶을 망쳤어. 너희는 죄인이야. 너희는 속죄해야 해. 속죄해야 구원받을 수 있어. 함께 구원받아 천국에 가야 해.


그러고 나면 속죄가 시작되었다. 동생은 자주 얼어붙어 입도 열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으니까, 그 모든 속죄는 주로 나의 몫이 되었다. 나는 엄마의 화가 풀릴 때까지, 엄마의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끊임없이 잘못했다고 빌었다. 나의 잘못을 꺼냈다. 내가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잘못을 뒤집어 까서 설명했다. 그러다 보면 자주 거짓말도 하게 되었다. 없는 잘못도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그게 나았다. 잘못이 없다고 하면 그 방을 나갈 수 없었으니까. 하루빨리 그 방을 벗어나고 싶었고, 그러려면 더 적극적으로, 더 끔찍한 죄인이 되어야 했다. 나라는 존재가 잘못이 되어야 했다. 나는 잘못 태어난 사람.


태어나서 미안해, 엄마. 내가 엄마의 딸이어서 미안해.


어디까지가 진심이었고, 어디까지가 꾸며낸 말이었을까. 적어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다시는 그 방으로 돌아올 일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도 어김없이 그 방이 활짝 문을 열어젖힐 때마다 신을 원망했다. 오늘은 또 뭐 때문에? 도대체 당신은 엄마에게 무슨 얘기를 지껄이고 있어요? 간혹 나를 교회에 데려가서, 옆에 앉혀두고 랄랄랄랄랄랄 몇십 분씩 방언을 외는 엄마가 궁금했다. 엄마, 지금 신의 목소리를 듣고 있어? 걔가 뭐래? 언제까지 걔 말만 들을 거야? 신의 말보다, 아니 신의 말만큼 내 말도 들어주면 안 돼?


그를 죽도록 질투했다. 죽도록 원망했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엄마가 나에 대해 뭔가를 궁금해하며 진심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상황은 하나뿐이니까.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남겼거나, 내가 다른 일정으로 집에 없어서, 만들어둔 음식이 그대로 있을 때. 별안간 전화가 와서 받으면, 집요하게 이유를 캐묻는다. 왜 안 먹었어? 맛이 없어? 엄마는 그것이 당신이 줄 수 있는 사랑이라고 믿지만, 나는 안 받고 싶다. 그건 혼자서만 안심하고 만족하기 위한 사랑이잖아.


평생 엄마가 따르는 신을 미워하며 살았다. 엄마가 나도 좀 더 믿어주기를 바랐다. 엄마의 믿음을 받고 싶었다. 엄마의 믿음을 미워하기 싫었다. 엄마의 뒤틀린 믿음을 물려받아, 믿음을 믿지 않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를 살린 것도, 지금껏 살게 만든 것도 결국 믿음인데. 모든 믿음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친구의 집에 있으면서, 나를 믿어준 이들을 떠올린다. 나를 믿고 한 달씩 집을 내어주는 마음 같은 거.


사람들이 누리 씨를 싫어한다면 누리 씨에게 집까지 주겠어요?


누리 씨 잘못이 아니에요. 누리 씨가 잘못한 게 아니에요. 정신 차려요. 정신 차려.


나를 호되게 혼내던 상담 선생님의 목소리를 되새기며, 이 집을 들여다본다.


이 집은 그때 그 집과 평수도 구조도 거의 같다. 베란다 너머로 뒷산이 펼쳐져 있는 풍경도 닮았다.


다른 점도 있다. 할머니가 쓰던 큰방과 비슷한 방에서, 이제 나는 운동을 한다. 학창 시절까지 그 방에서 맞은 매일 밤도 무서웠다. 거기 사는 동안 그 방에서 할머니와 잤는데, 엄마가 교회에서 돌아올 때까지 밤새도록 온갖 사나운 말로 엄마를 욕하는 당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내가 울면 엄마가 욕을 들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기 때문에, 하루하루 소리 죽여 울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자정을 훨씬 넘겨 엄마가 돌아오면, 집안의 것들을 집어 던지며 싸우는 어른들의 목소리를 듣다가 잠들었다. 하루빨리 내 방이 생기기만 기다렸다. 동생과 내 책상을 둔 다른 작은 방이 있었지만, 이부자리를 깔 공간은 없었다. 그리고 그때의 책상 방과 비슷한 방을, 친구는 침대만 덩그러니 놓은 침실로 쓴다. 나는 요즘 거기서 잠든다. 캄캄해지는 게 무서워 창밖으로 이어진 베란다 불빛을 켜두면, 창을 가려둔 커튼이 빛난다. 싱그러운 초록 숲이 펼쳐진 커튼을 보다가 잠든다. 악몽을 꾸다가 깼던 밤에도 그 커튼을 보고 금방 진정할 수 있었다.


그 방. 그 방들. 그 집에는 이제 다른 이들이 살고 있고, 나는 지금 그 집을 닮은 여기서 지내고 있다.


이 집에서 지내며, 뜻밖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과 자꾸 만나게 된다.


그러게. 아직 잊지 못한 것도 잘못일까?


이제껏 그때를 기억한다는 게 잘못이라면. 글쎄, 엄마. 나는 더 최선을 다해 잘못하고 싶어.


할머니가 왜 그렇게 엄마를 싫어했는지, 엄마가 그럴수록 왜 더 신에게 매달려야 했을지 알겠으면서도


여전히 누구도 용서할 수 없어서. 용서하고 싶지 않아서.


계속 잘못하며 살 거 같아. 그 잘못의 자리에 나만 있었던 게 아니라는 걸, 자꾸만 또 잊고 싶지 않아.


잊지 않을 거다. 기억해야만 한다. 받아들여야 한다. 잘못이 되어버린 나를 유일하게 용서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그 방에서 살아남은 어른이 되어, 언제까지고 숨어 있지만 말고 나와 살아가려면.






* 신여성 작업실 글쓰기 워크숍 <소리내어 글쓰기 : 마음의 누수> 에서 함께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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