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서 30명이 영도에 모였다. 웹툰 작가, 도시설계 전공자, 화가, 독서강사, 사업가, 인플루언서 등 직업도 다양하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는 것이 임무다. 모두 7월 한 달 영도문화도시센터에서 운영하는 '변방의 항해자'라는 워케이션 프로그램에서 만났다.
지금도 하는 일이 많아 추가로 프로젝트를 할 수 있을지 시작부터 걱정이었다. 필수 참여 프로그램을 들으려면 하루에 육지와 영도를 두 번 왔다갔다 해야하는 날도 있었다. 학교 수업을 조정할까 머리 굴려보고 육지에서 자는 날과 영도에서 자는 날을 계산하기도 하다가 포기했다. 그냥 흐름에 맡기기로.
첫 날 오리엔테이션 이후 프로젝트 계획을 돕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김월식 작가의 '실수를 위한 워크숍'이었다. 작가님은 시장 활성화 사업으로 시장마다 지붕이 생기고 잘 팔리는 물건들만 팔게 되어 각 시장들이 개성을 잃었다는 얘기를 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우리에게도 영도를 위해 일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런 관념이 상상을 제한할 수 있다는 의미다.)각자 재미를 쫓고, 그것이 합쳐지면 다양성이 된다고. 그 말을 들으니 마음이 한층 가벼워졌다.
처음엔 해녀를 조사하는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다. 워낙 바다를 좋아해 해녀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꼈고, 바다오염실태를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의미도 있고.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해녀들의 이야기를 듣기에 한 달은 짧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다루기엔 조금 큰 주제는 아닐까 싶기도 하다. 김월식 작가님 말씀에 힘입어 내가 좋아하는 아주 작은 주제로 수정하려 한다.
화요일에는 카페 영도일보를 운영하는 손음 시인을 만났다. 그 분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직업이 돈을 버는 시대라고 하며 예술하는 즐거움, 공간운영하는 일을 즐거움에 대해 말씀하셨다. 영도에는 공익에 대한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이 있어 영도가 더욱 매력적이라 했다.
공간운영하는 것에 대한 애정, 인생에서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저항에 대한 생각까지 평소 내 생각과 비슷했다. 내가 시인분 연배가 되면 저렇게 살고 있겠구나 싶어 기뻤다. 시인분을 또 다시 만나고 싶어 이번 일요일 오후에 기타를 들고 다시 영도일보에서 뵙기로 약속했다. 어쩌면 그분과 함께 음악을 만들게 될지도?
좀 전에 우리 동네(망미동) 수영장 등록을 취소하고 왔다. 월-목은 오후에 학교 수업도 나가야하니 아침마다 수영하러 가야겠다 했는데 오늘 바다수영을 다녀오고 나니 수영장 생각이 사라졌다.
지난 달에 수트를 구입해놓고 동호회 가입도 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아직 시도를 못하던 차였다. 항해자들 가운데 바다수영을 자주하는 작가님이 계셔서 도움을 받았다.
수트 덕에 몸은 잘 뜨는데 바닥이 발에 닿이지 않아서 무서웠다. 작가님은 벌써 저 멀리 갔는데 나는 무서워서 엉금엉금갔다.
"오리발도 했는데 왜 이렇게 느려요?"
"처음해봐서 좀 겁나서요"
"아니면 관광수영해도 되요‘
"아니에요! 저 도전하고 싶어요"
관광수영한다고 하면 바다에 내버려두고 가실까봐 힘을 냈다. 다행히 점차 적응이 되어 나중에는 다들 쉴때 혼자 수영하면서 바다를 한껏 누렸다. 수영을 마치고 함께한 분들과 자갈밭에서 수다떨고 커피까지 마셨는데 아직 오전 10시반이었다. 버스타고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수트 널어놓고 낮잠도 한숨자고 일어났는데 12시... 하루가 이렇게 길다니!! 기운이 새로 충전되어 마음이 가벼워졌다. 수영장 수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자연휴양힐링의 맛을 느껴버렸다!!
거처를 옮기고 틈틈이 충전되는 활동을 하니까 에너지가 새로 생겼다. 영감을 주는 사람을 만나고, 바다수영을 가는 것도 평소엔 마음을 먹고 시간을 내야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지 일주일 만에 기회가 왔다. 환경이 중요하다는 말이 이런 건가?
노트북 하나를 들고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사는 삶을 늘 꿈꿨다. 지금 당장은 장비도 많고, 악기도 많고. 거처를 한 곳에 두고 일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아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영도 한 달 살이를 시작해보니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늘 시간에 쫓기며 산다고 생각해서 가장 효율적으로 동선을 짜고, 스케쥴을 빡빡하게 세우며 지냈다. 어떤 일을 할때 최적의 시간, 최적의 컨디션을 고려해 나름 체계적으로 계획했다. 그런데 영도에 가며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따지는 게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계획을 내려놓았고, 그날 그날 해야되는 일을 미루지않고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주일 정도 보냈는데 현재까진 일상과 영도생활 둘 다 큰 문제없이 굴러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제까지 시간이 많아서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아서 계획할 여지가 있었고, 그러다보니 데드라인 끝까지 미루게 되었던 것 같다. 작은 일들에 걱정할 여유가 있었고, 불안함에 스트레스 받고 있었던 것 같다. 영도와 육지 두 집 살림을 하는 지금은 매일 매일 현재에 집중할 뿐이다.
이 글을 마무리짓고 음악작업을 한 시간 정도 한 후 다시 영도로 넘어간다. 영도로 가는 길은 멀지만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는 기분이다. 흐름에 몸을 맡기며 매일 도전하는 노마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