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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Aug 15. 2023

[영도 한달살이3] 보따리 장수의 어깨 빠지는 두집살림

https://brunch.co.kr/@knoonssup/112

세상에는 각양각색의 가방들이 있지만 나는 언제나 커다란 백팩을 메고 다닌다. 아침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에 챙기다보면 한 보따리. 가방 안에는 기본적으로 아이패드, 키보드, 일기장, 안경, 충전기, 화장품, 얇은 외투 등이 있다. 수영장 갈때는 수영복과 세면도구까지 들어가고, 기타를 챙겨야 할 때는 한쪽 어깨에 짐이 추가된다. 평생 이렇게 봇짐을 지고 살아야하는 운명인건가. 줄이고 싶어도 마땅히 뺄만한 품목이 없다. 가방메고 이동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생활반경은 최소화한다. 그런데도 늘 어께는 무겁고, 시간은 부족했다.


영도 항해자캠프 시작 전에 기쁨보다 걱정이 앞섰다. 영도와 수영구를 오가는 생활이 너무 힘들지 않을까? 그런데 내년에는 더 일이 많아질 것이고 올해가 아니면 다시 참여하기 힘들 것 같았다. 이왕 기회가 왔으니 제대로 즐기자고 마음먹고 캠프참가확정 문자 답장을 했다.




월-목 낮에는 학교 수업하러 망미동에 가야해서 오전을 알차게 보냈다. 7시쯤 일어나 30분간 동네 구경 겸 한 바퀴 뛰었다. 샤워하고 카페에 가서 일기쓰고 서류작업 하고나면 11시쯤. 점심먹고 출근하면 여유있게 시간이 맞았다.

조깅을 하지 않는 날은 바다수영을 했다. 수영 자체도 좋지만 물기를 대충 닦아내고 몸과 마음이 이완된 상태로 마시는 커피는 세상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커피까지 마시고 해산해도 오전 11시. 다른 특별한 일이 없어도 하루를 잘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장은 지워지고 머리는 젖은 채 맨발로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 포근했다.

7월 마지막 주는 영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는 한편, <큐티 앤 더티> 공연 준비로 할 일이 많았다. 홍보영상을 찍어놨는데 도저히 맥북 앞에 앉아서 작업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기본 컷 편집까지 맥북으로 하고 헤어지니 새벽 1시였다. 다음날 10시까지 또 영도로 가야했다. 미루면 또 언제 편집하게 될지 몰라 아침에 지하철타고 가는 길에 했다. 책상 앞에 앉았으면 편집하다 딴짓하다 3시간은 걸렸을텐데 이동 중에 하니까 1시간만에 끝났다. 보도자료도 쓰려면 원래는 큰 맘먹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운동 마치고 아이패드로 술술 써버렸다. 작업장소가 계속 바뀌니까 생각이 신선하게 유지되면서 속도도 빨라졌다.




영도 항해자 캠프 결과물로 노래를 만들어 뮤비를 제작하기로 했다. 이번에 만든 곡은 '할머니가 될래요' 이다. 주석님이 도서관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에 대해 쓴 시를 이어받아 노래로 만들었다. 작업할 때는 최소한 노트북, 스피커, 마이크,악기가 필요하다. 장비를 영도로 전부 가져와야할지, 소음 걱정 없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게 작업실을 왔다갔다하는 게 나을까 갈등했다.


고민의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시간은 없고, 날은 더워 망미동까지 왔다갔다하는 건 무리였다. 영도에는 '연결공간'이라는 사업이 있다. 영도구 내 유휴공간을 문화예술인과 지역 주민이 교류하는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업으로, 30여개 공간이 참여하고 있다.

https://www.notion.so/a1e35e90efe24e82bee06c064e1395e4

리스트 중에 '영도 콘서트하우스'가 있다. 사진을 보니 내가 꾸민 공간이라고 해도 믿을것 같은, 나와 감성이 비슷한 곳이었다. 공간을 사용하려면 2주 전에 말해야한다고 적혀있는데 나는 당장 필요했다. 공간 주인이신 김유화 작가님과 이전에 인사한 적이 있어 혹시나 하고 인스타그램 메시지로 부탁드렸더니 편하게 사용해도 된다는 답이 왔다. 영도 속 유럽같은 작가님의 공간에서 즐겁게 놀았다.


고마운 마음에 꼭 보답을 하고싶었다. 영도문화도시에 문의하니 김유화 작가님은 꽃을 좋아하신다고 했다. 연습 마치고 남항시장에 가서 꽃다발을 사와 삼다수 물병에다 담아두었다. 선물하는 기쁨이 넘실넘실 웃으며 공간을 나섰다. 다음 날도 이어서 공간을 빌렸다. 거실엔 미리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고, 꽃다발은 꽃병에 옮겨져 있었다. 테이블엔 간식과 음료수까지 가득이었다. 와 이게 작가님의 환대스킬이구나. 또 한번 감동했다. 8월에 망미동에 돌아가면 퍼플문을 좀 더 가꾸고 방문하는 친구들을 위해 마음을 써야겠다 느꼈다.

공간은 해결되었지만 장비 문제는 아직이었다. 음질 좋게 녹음하려면 아무래도 망미동에 한 번은 가야지 싶었지만 우선 곡부터 만들었다. 기본 토대는 기타로 만들고, 아이패드 어플인 개러지밴드로 간단한 녹음을 했다. 영상은 항해자 동료들과 찍고 싶어 단톡방에 '함께 노래 만들고 노실 분'하고 글을 올렸다. 주석, 가영, 다온, 화정, 하람. 총 5명이 손을 들어주었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코러스와 리듬악기가 포함된 완벽한 데모버전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개러지밴드는 소리가 너무 작게 녹음되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만남 직전까지 아이패드를 붙들고 있었지만 완성하지 못했다.


만나면 어떻게든 하겠지하는 심정으로 맞이했다. 걱정했던 것보다 친구들이 음악을 금방 익혔다. 기타 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를 서 너번 부르니 곧 멜로디를 따라하는 것이었다.  즐기면서 하니 표정도 좋고, 리듬악기 연주도 센스 있었다. 음질에 대한 고민은 금방 잊어버렸다. 작업이 2시간 넘게 걸릴 것으로 예상했는데 1시간 만에  끝났다.


기타와 소악기로 간단하게 만든 이 곡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결과 공유회에는 <큐티 앤 더티> 공연 현장감독을 해야해서 참석하지 못했지만 다온이가 찍어준 현장 스케치에서 눈물을 꾹 참는 사람들의 모습이 예뻐서 여러번 돌려봤다.

https://youtu.be/VNqaepLaaKw?si=Ws8ZQZv1HxOMPw-h

주석님이 만든 시 '할머니가 될래요'를 음악으로 만들었어요. 항해자캠프에서 히트한 곡^^

두 살배기 아들을 키우는 희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기가 생기며 자는 시간이 줄었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늘어났다고. 영도에서 생활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오전에는 바다가고, 오후에는 일하며 놀이와 일 모두 충분히 즐기는 일상. 공유공간을 사용해 이동시간 부담은 덜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기회.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기대보다 더욱 멋진 작품을 만드는 것. 흘러가는 대로 충실히 사는 것만으로도 생각하지 못했던 좋은 것들이 왔다.


큰 가방에 수많은 물건을 챙겨다니는 마음은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었고, 좀 더 깊이는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동안 어깨를 짓누르는 짐을 꾸리면서 놓쳐버린 보석같은 순간들이 많지 않았을까. 삶에서 특별한 이벤트는 마음을 열어놓고 무심히 걸으면 만날 수 있다. 영도에서 보낸 7월 동안 내가 어디에 있든 여행자로 살면 그리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욕심을 내려놓고, 조금 더 움직이고, 우연을 기다리며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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