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째 공간과 함께한 성장기
퍼플문을 계약한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오가며 즐거운 추억이 많이 쌓였다.
작업실 알아볼 당시 마땅한 공간을 구하는 게 참 어려웠다. 소음에 구애받지 않는 곳을 찾다보니 지하가 많았고, 크기가 너무 좁거나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쌌다. 커뮤니티 공간은 포기하고 개인 작업실을 알아봐야할까하는 차에 이 곳을 발견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 아래층은 식당이고 대로변에 접해 있어 소음이 문제되지 않는 곳. 방은 세 개, 거실과 화장실, 부엌까지 크게 있는 곳! 거기다 테라스와 옥상까지 있다. 사실 처음 이 공간은 넌내꿈씨가 먼저 발견한 곳이지만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해서 양보를 해주었다. 여기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무럭무럭 자랐다.
내 마음대로 꾸미고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이 설레기도 했지만 혼자 사용하기엔 엄두가 안났다. 그래서 작업실을 셰어할 친구를 구했다. 첫 메이트는 대학때 같이 밴드를 했던 지옹이. 지옹이는 깔끔하고 솔선수범하는 성격이라 옆방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했다. 지옹이는 미술작업을 하는데 종이나 물감, 섬유재료들을 놓을 여유공간이 필요해 큰 방을 사용했다. 나는 창이 벽 두 면에 나 있는 중간 사이즈 방을 사용했다. 벽 한 쪽이 테라스 쪽에 나있었는데, 테라스에 식물을 키우면서 꾸며놓고 구경해야지 상상했다.
작업실 청소하는 날 도우러 친구들이 우르르 왔다. 창문도 닦고, 청소기도 밀며 광을 냈다. 앞으로도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내가 가진 걸 도로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기원했다.
1년 정도 함께한 지옹이가 작업실을 빼게 되면서 새로운 메이트를 구했다. 스타작가 반달이가 두번째 메이트로 들어왔고, 이어서 반달이 친구 네티가 들어왔다. 이번엔 나도 큰 방을 써볼까 생각했지만 두 사람 다 다른 방들은 크기가 애매하다고해서 나는 거실이랑 왔다갔다하지 뭐 하고 큰 방을 내어줬다.
지옹이가 작업실을 빼기 몇 달 동안 개인사정으로 작업실에 많이 나오지 못해서 거의 나 혼자 작업실을 사용했다. 일도 없고 춥고 외롭던 겨울이 지나고 새로운 메이트들이 왔을때 많은 자극을 받았다. 두 사람은 작업 양도 많고, 속도도 빨랐다. 반달이의 경우 출근은 내가 먼저해도 퇴근은 보통 반달이가 먼저했다. 머리 뜯고 괴로워하는 것은 잠깐 퇴근 시간이 다가오면 어느새 미친듯이 자판을 두드렸다. 그녀는 야근하는 법도 없이 그날의 작업양을 다 채우고 유유히 베드민턴을 하러 떠났다. 네티는 출근하고 책상에 앉으면 여섯 시간이고 일곱 시간이고 계속 그림을 그렸다. 네티를 보고 있으면 시간모르고 그림그리기에 푹 빠졌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그 둘의 에너지를 받으며 나도 작업을 잘하는 방법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두 달 전에 반달이와 네티도 작업실을 뺐다. 두 사람이 짐을 정리하는 기간에 부산에 폭우가 내렸다. 어느 날 중간방에 문을 열었더니 바닥에 물이 흥건했다. 살다보면 별일이 생기기 마련이지만 당황스러워서 다리가 풀렸다. 나의 아담하고 따뜻한 아지트가 갑자기 바다가 되다니... 천장에 붙은 등기구를 여니 물이 와르르 쏟아졌고, 물이 고여있는지 계속 떨어졌다. 자세히 보니 벽지에 곰팡이도 슬어있었다.
다음날엔 네티가 연락와 큰 방도 물바다가 되어있다고 했다. 급한대로 중간 방에 있던 컴퓨터랑 악기, 장비 전부다 큰 방에 옮겼는데...머리가 하얘졌다. 다행히 물건들에 문제는 없었지만 속이 쓰렸다. 작업실 수리를 다 마치는데는 한 달 정도 걸렸다.
친구들은 나가고 휑하지, 물건들은 정리가 안되서 엉망이지. 홧김에 여기 접고 새로운 공간을 알아볼까 생각했다. 퍼플문은 공연하기에도 애매하고, 접지가 안 되어 있어 노이즈가 잘 안 잡히고. 주택가라 활력도 떨어지고. 작은 아쉬움이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구멍난 천장처럼 바람 숭숭 들어오는 마음으로 서울에 공연을 다녀왔다. 뭔가 새로운 기회를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가지고. 서울 클럽의 인상은 부산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일에는 생각보다 관객이 많지 않았고, 공연하고자 하는 아티스트는 매일매일 쏟아졌다. 그러다보니 한 명 한 명 주목받기가 부산보다 더 어려울 것 같았다. 한 두 달에 한 번 서울 클럽에서 공연하는 것보다 부산에서 작업을 열심히 해서 음원을 자주 발표하는 게 더 빠르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그러면서 퍼플문에서 하는 기획들이 나에게도, 다른 아티스트들에게도 꽤 매력적이구나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퍼플문은 아티스트 한 명 한 명의 매력을 깊이 보여줄 수 있는 작지만 매운 기획을 하고 있으니까!
부산에 돌아와 공간을 대대적으로 손봤다. 우선 작업실 들어오는 길목에 지저분하게 쌓여있던 예전 사장님이 버리고 간 물건들을 다 치웠다. 큰 방은 음악 작업실, 중간방은 방문자 대기실, 작은방은 게스트룸으로 만들었다. 큰 거울과 에어컨, 서랍장도 구입했다. 화장실에는 방문객을 위한 손수건과 핸드크림을 놓았다. 가장 큰 변화는 거실에 업라이트 피아노가 생겼다는 것! 외할아버지가 20년전에 사주신 피아노를 본가에서 옮겨왔다. 퍼플문이 이제서야 완성된 느낌이 든다.
내 작업실이지만 이제까지는 얹혀사는 것 처럼 눈치를 봤던 것 같다. 충분히 즐거워하는 사람들에게 괜히 공간이 작아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큰 방도 3년 만에 처음 사용해본다. 그동안은 언제든 마음을 접을 수 있게 음악 작업실을 작은방 ~ 중간방 정도로만 할당하려고 했던 것 같다. 이제 좀 더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실감하니 참 기특하다. '즐길 수 있는만큼 한다'는 바이브는 계속 유지하겠지만 이젠 좀 더 당당하고 신나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초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작지만 매운 퍼플문 & 크고 매운 권눈썹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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