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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눈썹 Jan 31. 2024

옷장 털어내기

1월엔 정리정돈을 하며 보냈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물건들을 제자리에 놓았다. 묵은 물건을 버리고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다.


옷장 정리를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주로 입는 옷은 정해져있는데 안 입는 옷들 사이에 끼여서 어디있는지 찾으려면 한참 걸렸다. 물건을 잘 못 버리는 편이라 10년도 더 된 옷도 많다. 옷 취향이 비슷한 친구가 '이 옷 빈티지에요?' 물어봤는데 '아니오. 20대 때 백화점 가서 산 거에요' 했다가 10년 지나면 빈티지구나 싶어 아차했던 적이 있다.


엄마가 입다가 물려받은 자켓도 애용한다. (사실 이 옷은 원래 사촌언니가 입던 옷인데 버리려해서 엄마가 받아왔다고 한다.) 초등학생때부터 봤던 옷이니까 못해도 20년은 됐겠다. 재질도 좋고 예쁜데 단추가 촌스러워서 작년부터 손이 잘 안 가기 시작했다. 몇달 전부터 단추를 새로 달아야지 싶었는데 언제 단추 사러 가고 언제 달고 앉아있겠나 싶어 미루고 미뤘다. 바빠지기 전에 해치우리라하고 드디어 진시장에 갔다.  2층에는 부자재 가게가 줄지어 있는데 센스 좋은 사장님께 추천받아 옷과 비슷한 색상의 깔끔한 단추를 구입했다. 집에 돌아와 설레는 마음으로 단추다는 법을 유튜브에 검색해 후다닥 달았다. 단추를 달고나니 새 옷처럼 깔끔해졌다.

사촌언니 > 엄마 > 나 순으로 찾아와 단추 바뀌고 젊어진 자켓

수선할 옷은 더 안보이고 이제 버려야할 시간이었다. 독자적으로 옷장을 꾸려온 지 어언 십수 년. 옷 취향도 여러 번 바뀌었는데 혹시나 하고 가지고 있는 옷들을 꺼냈다. 20대 초반에는 멋내고 싶은 날엔 언제나 꽃무늬 원피스만 입었는데 최근 3년 사이에는 입은 적이 손에 꼽는다.  무늬보다는 실루엣이나 색상, 재질에 더 관심이 생겼다. 마침 동네에서 플리마켓이 열린다해서 아끼던 옷을 보내기로 했다.

눈썹 옷장 코디제안은 이렇게~ 옷들과 마지막 기념사진 찰칵

한때 빈티지 쇼핑을 너무 좋아해서 빈티지 매장을 운영하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 있다. 남포동 구제골목에 장사 잘하는 사장님들은 만원짜리 옷 하나를 사도 어떻게 코디하는지 알려주신다. 젊은 사장님들은 착용샷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한다. 옷만 볼때는 별 생각 없다가 착샷을 보고 옷에 관심이 생기기도 한다. 예전의 꿈을 이뤄본다는 기분으로 플리마켓 출점 준비를 했다. 옷 하나 하나 입고 착용샷을 찍어봤다. 이제 더 이상 입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애틋하고, 이렇게라도 마지막 모습을 남기니 좋았다. 처음 소개팅 나갈 때 입었던 옷, 한 눈에 반해서 덜컥 사버린 10만원 넘는 원피스, 살까 말까 고민하다 다음 날 다시 매장에 가서 구입한 옷 등. 저마다 가진 추억이 떠올랐다. 오랜만에 입어보니 또 느낌이 괜찮아서 팔지말까했다가. 어떤 옷은 아무리 해도 태가 안나서 아 이래서 안 입었구나 깨닫기도 했다.

눈썹 옷장 현장. 옷 구입시 포토카드도 가져가셔야해욧!

이번에 나간 플리마켓 이름은 '쑥장'. 전에 동네에 있었던 제로웨이스트 샵 '쑥'의 이름을 딴 마켓인 데, 쑥 사장님과 바소랩 윤주님이 주축이 되어 매 달 운영 중이다. 1월 쑥장은 퍼플문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는 친환경공간 0606에서 열렸다. 지난 달에 이진이 할 때 놀러갔다가 셀러들끼리 도란도란 이야기 주고받는 모습이 편해보여서 나도 부담없이 참여해야겠다 싶었다. 캐리어에 가득 챙긴 옷을 걸어놓고, 앵두전구도 달고. 옷 구매하신 분들에게 선물할 자잘한 문구와 액세서리도 챙겼다.


셀러들 모두들 제로웨이스트, 빈티지, 환경에 공통적으로 관심이 있어서 함께 있기만 해도 마음이 편안했다. 함께 온 강아지들과 놀고. 지치면 자리에 앉아 잠깐 책도 읽었다. 점심시간에 킹롤에 커피도 곁들이며 각자 작업도 구경했다. '이걸 대체 왜 산거에요?' 농담도 던지며 각자의 취향을 가늠해보는 게 재미있었다.

유부와 두부너겟, 맛있는 오이고추가 들어간 킹롤...! 너무 맛있고 배불렀다.

필요했던 물건들도 저렴하게 구입했다. 심혈을 기울여서 국수볼 2개, 후드티 1개, 맨투맨 1개, 머리핀 2개, 엽서 2장, 앞치마 1개를 골라서 총 3만원 들었다.(띠용..!!!!!) 마스킹 테이프 2개와 오색 스티커를 나눔받았다. 마켓 구경하러 왔을때는 공간이 좁기도 하고, 뭔가 사야만할 것 같아 물건을 자세히 살펴보기 힘들었는데 이틀 동안 셀러들과 인사도 하고 물건도 이리저리 파악한 후에 구입하니 후회없이 쇼핑했다. 기껏 물건 줄이려고 나왔는데 100원짜리 물건이라도 사놓고 짐이 되는 게 싫어 신중에 신중을 거듭했다. 다들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 여러 번 재고하는 일도 양해해주실 것 같아 안심됐다. 옷 입어보고 어떠냐고 물어봤을때 모두들 진심어리게 평가해주었다. '뒷모습은 멋진데 앞모습에 어께가 너무 크네요.' 라든가. '색이 잘 어울려요. 그런데 옷이 좀 작네요' 하고. 필요없는 물건을 늘리지 않게 서로 열심히 도왔다. 다른 분들도 매대에 있는 목도리를 걸쳤다가 풀었다하며 마칠 때까지 고민을 했다.


복잡하게 물건과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곳에 다녀와 지칠 법도 한데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고 피로가 가셨다. 다음 플리마켓에도 참여하려면 이번엔 책상을 털어야하나...


쑥장 소식은 여기!

https://www.instagram.com/ssuk_inyour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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